샤칼 찰라흐

by 필리소



짧은 시간 이었지만 아직까지도 줄리안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혼란과 현실 사이.

줄리안은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마지막 기억은 차가운 비를 피하려 건물 밖 처마 아래 웅크린 채 잠시 눈을 감았던 것.

그런데 깨어난 곳은 건물 안이었고 처음보는 이상한 사람들 앞이었다.

자신이 눈을 떴을 때 어둠 속에서 세 명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감은 마치 다른 차원에서 온 것 같았다. 특히 여자는 달빛처럼 차갑고 신비로웠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시간을 초월한 듯한 울림이 있었다.

이상하다.

줄리안 자신은 아무 말도 한게 없는데 이들은 자신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그레이스 선생님과 션 선생님을 어떻게 아는걸까?


남자는 자신들은 이제 이만 가 봐야 한다고 줄리안에게 말을 하면서 뒤돌아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 여자가 갑자기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줄리안 쪽으로 돌아섰다.


"줄리안... 이라고 했지?"

여자가 돌아섰을 때, 그녀의 눈동자에서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마치 시간이 자신을 붙들어 놓은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줄리안은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죽지 마."


여자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나온 말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었다. 마치 운명을 바꾸는 주문과도 같았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줄리안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힘이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읽어낸 것처럼, 그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꼬마야. 죽음을 생각 하기에 넌 아직 너무 어려. 지금 상황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몇개나 되니? 그 얼마 되지 않는 선택지들 중에서도 죽음은 제일 허무하고 의미 없는 선택이야."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둠 속의 빛처럼 줄리안의 마음에 새겨졌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그녀의 존재는, 마치 운명의 여신이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줄리안은 레아의 예상치 못한 말에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꿰뚫어 본 것 같은 레아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레아는 줄리안의 반응을 지켜보며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죽지 마. 살아 봐. 조금만 더 버텨봐."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이가 있었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있는 줄리안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숙인 레아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반짝이는 듯한 명함을 줄리안의 떨리는 손에 조심스럽게 쥐여주었다.


“줄리안, 버텨내라.”

여자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나을꺼야. 살다보면 의미 있는 시간들이 쌓여 갈꺼야. 그리고 네 인생에는 좋은 날들이 더 많을꺼야. 그래.. 그래도 힘이 드는 날들이 있겠지. 그렇더라도 버티고 살아 봐. 그러다가도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든 일이 생기면, 그땐 이 번호로 연락해."

명함에는 단순하게 'L. L.'이라는 이니셜과 전화번호만이 새겨져 있었다.


에이든은 삐딱하게 서서 레아의 돌발적인 행동을 바라봤다.

‘레아가 개인 번호를?’


뚜벅 뚜벅.

뭔가를 생각하던 에이든이 줄리안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꼬마. 이건 내 선물이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남자는 한쪽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 지긋이 눌렀다.


“샤칼.. 찰라흐”


“네? 무슨.. 헛!”


남자가 주문 같은 말을 외쳤을때 짧은 순간 이지만 줄리안의 머리에 뜨거운 기운이 확 올랐다. 그리고는 잠시 머리에서 머물던 뜨거운 기운이 몸 안으로 옮겨지면서 뜨거움에 휘감기는것을 느꼈다.


잠시 줄리안의 온몸을 감쌌던 그 기운은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줄리안의 몸에는 다시 한기가 몰려왔다.


“소년. 너는 네가 의지를 가지고 하는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해낼 수 있게 될꺼야.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의지를 놓지 않는다면 잘 헤쳐 나아갈 수 있게 될꺼야. 내가 방금 한 말을 기억해. 의지를 놓지마.”


샤칼 찰라흐..


남자는 다시한번 주문과 같은 알수 없는 말을 하며 줄리안의 눈을 깊게 바라봤다.


멀리서 아련하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어나 벽에 기대어 있는 일행들 쪽으로 돌아갔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곧이어 건물 외벽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경찰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밖에서 줄리안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줄리안, 줄리안 그 안에 있니?”


밖에서 들리는 소리와 함께 레아는 순간적으로 공간을 열어 피터와 에이든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의 마지막 속삭임만이 공기 중에 맴돌았다.

'힘 내라.'


[다시 뉴욕, 에이든의 사무실]


황금빛 석양이 마천루 사이로 스며들어 사무실 내부를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에이든과 일행이 돌아오자 카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엔 호기심과 약간의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어이~ 우리의 스타들이 귀환하셨군! 도대체 모두들 모여서 우루루 어디를 다녀온거야?" 카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에이든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카이, 왔구나. 잘 지냈어?"


카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아니, 내 질문에 대답 좀 해봐. 셋이서 한꺼번에 사라졌잖아. 네 비서한테 물어보니까 국제무역 회의도 급하게 끝내고 서둘러 나갔다던데... 무슨 일이야?"


에이든은 카이의 질문을 무시한 채 레아를 향해 걸어갔다.

‘이걸 안물어보고 넘어갈 수는 없지.’


그때 에이든의 머릿속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피터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레아님, 혹시... 그 꼬마에게 개인 번호를 주고 오신 겁니까?"


이때다 싶었던 에이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나도 봤어."


카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잠깐, 뭐라고? 레아가 누구한테 번호를 줬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카이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에이든이 레아에게 물었다.

"웬일이야?"


레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 넌? 아까 그 소년에게 무슨 말을 했어?"


에이든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피터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레아님, 그 소년을 우리가 데려왔어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레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레아님," 피터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정 마음에 걸리신다면 다시 가서 데려와도 됩니다. 디아나와 이모-조카로 지냈을 정도면 줄리안의 양부모가 디아나와 친분이 있었겠죠. 우리가 줄리안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레아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아니,"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데려오지 않아도 돼."


그녀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그 아이가 그날 밤 그대로 거리에 있었다면…또 때마침 우리가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어짜피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 아이는 이미 충분히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레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우리가 목숨은 구해줬잖아. 죽지 말라고 했어. 적어도 스스로 죽지는 말라고 당부했어."


그녀의 말에 사무실 안이 잠시 고요해졌다.


"혹시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겠지," 레아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내 번호는 그래서 준거야.”


레아의 말에 에이든이 덧붙혔다.

“무엇보다 줄리안이 어른들에 대한 적개심이 너무 컸어.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 어디로 데려갈줄 알고 따라 나서겠어? 그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너무 깊어서…”


카이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에서 이 대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레아와 에이든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내심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피터는 레아의 반응을 지켜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레아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레아님. 제가 종종 몰래 가서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피터의 따뜻한 제안에 레아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 대답했다.


"음, 그게 좋겠어.“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묻어났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줄리안을 돌봐주겠다는 피터의 배려가 고마웠다. 레아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맴돌았다.


'정말... 그 아이를 데려왔어야 했나?'


사무실 안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에이든과 피터, 그리고 레아 모두 줄리안이라는 소년의 운명에 대해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다가서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한 소년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때로는 작은 친절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줄리안이 과연 에이든이 준 선물을 활용하는 법을 깨닫게 될지.. 레아의 연락처를 어떻게 사용하게 될런지. 피터는 어린 줄리안이 과연 이런 큰 선물을 활용할 수 있기나 할런지 내심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때, 카이의 격앙된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야!! 내 말이 안 들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잖아! 그 '소년'이라는 꼬맹이는 도대체 누구이며, 레아는 왜 그 애한테 개인 연락처를 준 거야? 그리고 도대체 다들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닌 거냐고 묻고 있잖아! 그리고. 달고 온 저건 뭐야??"


카이는 피터 뒤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쭈그리고 앉아있는 처음 보는 생명체를 가리켰다.

”고블린이야?“


고블린이라는 말을 듣자 기죽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생명체는 벌떡 일어났다.

”고블린 이라니! 그딴거 아냐!!“

”아니야?”

피터가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난… 도깨비야.”


“도..깨비??”


에이든은 자신을 고블린이 아닌 도깨비라고 하는 생명체의 외관을 자세히 들여다 봤다.

사실 아까는 여유가 없었다.

랭캐스터 창고에서 피터가 줄리안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줄리안 뒤를 노려보길래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인지를 확장해서 공간을 스캔 해보니 창고 구석에 자신들 말고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앉아있는게 아닌가.


요정 출신인 피터의 눈에 제일 먼저 띄였으리라.

줄리안의 눈에 보이지 않게 묶어서 뉴욕까지 끌고 왔다.

랭캐스터 에서와는 달리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 ‘도깨비‘ 라는 존재는 실재로 고블린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체구는 작았지만 괴팍하고 날카로와 보이는 인상의 고블린과는 달리 어쩐지.. 사랑.. 스럽다 .. 랄까?


’손에 쥐고 있는 저 뿔난 방망이 같은건 또 뭐람.’

에이든은 도깨비의 외관을 자세히 뜯어봤다.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인 외관이다. 눈도 까맣고.

전체적으로 조금 .. 아니 조금 많이 ..

하찮아 보인다.

요물은 요물일텐데… 저렇게 하잖아 보이는 요물은 한번도 만나 본 적 없는 부류이다.


여전히 아무도 자신의 말에 대꾸를 안하자 카이는 폭발해 버렸다.

“내 말 안들려? 이 요물은 뭐고, 도대체 어디를 갔다 왔냐고 묻잖아!”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카이를 잠시 바라보던 레아가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정해, 카이. 타락한 시간 여행자의 흔적을 발견했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움직인 거야."


레아의 말에 카이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빛났다. 굳게 다물린 그의 입술이 간신히 움직였다.

"...그 놈들, 찾았나?"


더 이상 그의 얼굴에서는 특유의 장난기 넘치던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에는 능글거리는 모습만 보이던 카이였지만, 그는 시간 수호자로서의 숭고한 책임을 짊어진 존재였다. 레아가 공간을 움직이는 존재라면, 카이는 시간을 수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였다.


디아나의 생명력이 소멸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카이는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날뛰며 범인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존재도 카이의 허락 없이는 시간의 문을 열 수 없다. 시간의 수호자인 자신의 동의 없이 시간의 문이 열렸다는 것은, 곧 우리 중 누군가가 우주의 균형을 뒤틀어버렸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대가는 파멸, 소멸과도 같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간의 문이 열렸고, 정체불명의 인간이 그 문을 넘어 과거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디아나의 고귀한 생명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굳게 닫힌 문은 그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숨어버렸다. 과거로 향했던 시간 여행자는 들어갔던 문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했는지 과거의 시간에서 미래로 이동하는, 평범한 시간여행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법을 사용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놈을 찾았냐는 카이의 질문에 사무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뉴욕의 화려한 야경과는 대조적으로, 실내의 분위기는 무겁고 어두웠다.


“..그렇구나."


카이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실망이 묻어났다.

그의 눈에 잠시나마 차올랐던 희망의 빛이 사그라지는 것이 보였다.


피터가 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나섰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과 동시에 희망이 섞여 있었다.


“카이, 이제부터 시작이야. 놈이 돌아온 지역은 랭캐스터가 확실했어. 레아가 공간이 뒤틀어진 것을 확인하고 왔어."


피터의 말에 카이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그는 재빨리 레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레아의 표정에서 진실을 읽으려는 듯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레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피터 말이 맞아. 확실해. 펜실베니아에 있는 랭캐스터 지역이야. 놈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 지역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거야. 욕망이란 게 생겼을 테니까."


레아의 말에 카이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표정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럼, 소년? 이라는 아이 얘기는 뭐야? 그리고 이 도..깨비? 라는 놈은 또 왜 여기 있는거고?"


에이든이 대답했다.


"디아나와 가족처럼 지냈던 꼬마를 우연히 발견했어."


카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소멸하던 디아나가 부탁 했던 줄리안 이라는 아이. 그러나 찾지 못했던 아이였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꼬마를 발견했어?"


에이든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얘기가 길어. 그쪽도 부모가 죽고 나서 이래저래 얽힌 복잡한 사연이 있던데.. 아이가 알고 있는 정보가 거의 없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


카이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그래서 레아 너의 전화번호만 던져주고 돌아온 거야?"


"카이!" 카이의 말투에 반응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카이는 레아를 무시한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흥분하지 마, 레아. 디아나가 소멸했어. 그리고 디아나와 가족처럼 지냈다는 아이를 찾았다며. 그 아이 부모도 죽었다며. 그런데 겨우 전화번호 하나 던져주고 왔다고? 너답지 않잖아."


레아는 카이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에이든이 중재에 나섰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함이 느껴졌다.


"카이, 레아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 우리가 인간들의 개인사에 깊이 관여하다가 오히려 인간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잘 알잖아. 레아도 너의 맘과 다르지 않았을 거야."


카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가득했다.


“그냥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잖아. 디아나와 관련있는 아이야. 데려와야지. 우리가 돌볼 수 있잖아. 어디야, 앞장 서."


에이든이 재빨리 카이를 막아섰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에이든의 눈빛이 깊어졌다. "카이, 잠깐 내 말을 들어봐. 레아의 연락처 뿐마이 아니야. 내가 그 아이에게 연락처 이상의 것을 주고 왔어."

"무슨 소리야?" 카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에이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Voluntas Absoluta... 절대의지의 씨앗을 심어주었어."

순간 세쌍의 눈들이 에이든을 집중했다. 레아와 피터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절대의지라고?" 카이가 놀라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의지라는 거야? 쓸모가 있기나 해?”


레아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

"우주의 근원적 힘 중 하나야. 의지의 본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피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힘을 인간에게 주는 게 괜찮은 거야?"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힘은 특별해. 아이의 순수한 의지와 함께 자라날 거야. 처음엔 사소한 일들에서 시작하겠지만, 점차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힘을 제대로 다루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 레아가 덧붙였다.

"아이가 스스로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해."

에이든이 말을 이었다.

“잘 다룰수 있게 된다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거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


(도깨비는 사무실 구석에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신들의 말을 듣기만 했다. 자신과는 격이 다른 존재들… 그러나 도깨비는 어서 빨리 줄리안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마음이 불안했다.)


도깨비의 좌불안석인 마음은 알지도 못한채 에이든의 말을 들은 카이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소파에 앉았다.

에이든은 깊은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은 심각했고, 목소리에는 무거움이 묻어났다.


“그리고, 내가 읽은 아이의 기억을 말해줄께.”


에이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아까 랭캐스터에서 대충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레아도 피터도 더 자세한 얘기가 듣고 싶었다.

에이든은 깊은 숨을 내쉬고 줄리안의 기억에서 읽어낸 내용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줄리안의 삶은... 정말 파란만장했어." 에이든의 목소리에는 무거움이 묻어났다. "그 아이는 한국 출신이야.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지."

레아와 피터, 그리고 카이의 눈빛이 집중되었다.

(도깨비의 눈이 반짝 빛이 났지만 누구도 도깨비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한국의 고아원에서 지내다가, 미국 여행 중이던 토마스 부부에게 입양됐어. 그 후로 줄곧 랭캐스터에서 살았지."

에이든은 잠시 말을 멈추고 동료들의 반응을 살폈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줄리안의 기억속에 있는 토마스 부부는 대단했어. 3대째 농장을 운영하면서 몇개의 자수정 광산까지 소유하고 있었지. 자식이 없었던 그들은 줄리안을 친자식으로 키웠고, 언젠가 농장과 광산을 물려줄 생각이었던 것 같아. 줄리안은 자신이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토마스 농장을 키워갈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고.”

카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뭔가 잘못됐겠지?"

에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토마스 부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 그리고 그때 갑자기 '삼촌'이라는 사람들이 나타났지. 그들은 줄리안을 파양시키고 재산을 차지해버렸어."

"뭐라고?" 카이가 놀라 소리쳤다.

(에이든의 말에 도깨비도 놀랐다.)


"그 과정에 대해 줄리안이 아는 정보가 많지 않아. 양부모가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파양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아이도 잘 모르는 것 같아."

피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파양 후에 한국에서 왔다는 삼촌은 몇 달 만에 사라져버렸고, 줄리안은 위탁 가정으로 보내졌어. 그런데 그 위탁부가 폭력적인 사람이었어. 줄리안은 그 남자와 갈등을 겪으며 학대를 당했고... 결국 비 오는 날 집을 뛰쳐나와 우리를 만나게 된 거야."


카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잠깐, 한국에서 왔다는 친삼촌은 대체 어떻게 나타난 거야? 뭔가 미심쩍은데?"

레아와 피터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든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걸 잘 모르겠어. 내가 읽을 수 있는 정보는 아이가 알고 있는 내용뿐이야. 한국에서 온 삼촌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줄리안도 모르고 있어.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도 그만큼밖에 없어."



모두가 침묵 속에 잠겼다. 줄리안의 복잡한 과거와 불분명한 상황들이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줄리안의 기억 속에서 알 수 있었던 농장과 광산의 규모는 거대했다. 3대에 걸쳐 운영되어 온 농장은 랭캐스터 지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자수정 광산은 미국 동부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했다. 토마스 부부의 재산은 단순히 '부유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방대했다.


“그 정도 규모의 재산이라면..."

에이든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고민이 서려 있었다.

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아. 미성년자의 돈을 빼앗는 건 사기꾼들에겐 식은 죽 먹기지. 특히 그런 대규모 재산이라면 더더욱."

카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냄새가 나.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닐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각자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들이 맴돌았다.


"그래서," 카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그 아이는 어떻게 하고 돌아왔어? 혹시 다시 그 폭력을 쓰는 위탁부에게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지?"


에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 경찰을 불렀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에게도 연락을 하고 왔으니 그 문제는 괜찮을 거야. 위탁가정 주인집 남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게 될 거야."


그의 말에 카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생각은 많았다.


“저…”

구석에서 조용하던 도깨비가 목소리를 냈다.


“뭐야? 조용히 안해?”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놓은 상태라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아니, 방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지금 저 랭캐스터 요물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 그게 아니고.“

삐약뿅숑..


도깨비는 하찮은 외관에 어울리는 희안한 소리를 내면서 묶인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어갔다.


”제,, 제가, 아니, 저,, 저좀 풀어주세요. 줄리안에게 돌아가야 해요.“


”줄리안? 역시. 너 줄리안을 알고 있던거지? 그래서 그 창고에 숨어 있던거지?“


”뭐?“

피터의 말에 레아가 도깨비에게 다가가 뒷 목을 잡아 일으켰다.


끼악쭈물..

“아, 아아.. 이러지 마세요. 아파효옹. 히이.”


흐음..

에이든은 팔짱을 끼고 도깨비를 쳐다보며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줄리안의 기억 속에는 도깨비 너 같은 존재는 없었는데…? 넌 누구냐? 거짓말 할 생각은 아얘 말아. 네놈이 요물 이라면 지금 누구 앞에 있는지 대충 감은 오겠지?”


여전히 레아에게 뒷 목을 잡힌채로 도깨비는 고개가 떨어져라 끄덕였다.


호들쪽..

콩실콩실..

“네네!! 그럼요! 그럼요! 줄리안은 내 친구예요. 아니, 그러니깐.. 줄리안은 내가 도깨비 인줄은 몰르구요, 난, 나는.. 음.. 그러니깐 한국에서 .. 우리는 친구였어요! 줄리안 에게 친구는 나 뿐인데. 줄리안이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우흐해앵..“


울어??

말을 하던 도깨비는 갑자기 하찮은 얼굴로 울음을 터뜨렸다.

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잡고있던 도깨비의 뒷목을 내려놓았다.

”왜, 울어?“


”아, 속 터져.“

참다 못한 에이든은 레아가 놓은 도깨비의 뒷덜미를 다시 잡아채고는 도깨비의 속 내를 읽기 시작했다.


뿌앗!

“아, 뭐, 뭡니까? 무슨 짓이예요?!?”


“도깨비, 시끄럽구나. 네가 줄리안에게 나쁜 요물인지 아닌지를 확인 하려는거야. 잠자코 조금만 있어,”

에이든은 엄한 목소리로 단번에 도깨비를 제압했다.


’그렇지. 신사적일게 뭐 있어. 저 방법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지.’

카이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는 마음 이지만 적어도 저 요물이 줄리안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줄리안과 디아나에 대해서 더 알아 낼 수 있을거라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한참을 도깨비와 교감을 하던 에이든은 도깨비 에게서 손을 떼고 놀란 얼굴로 피터와 레아를 쳐다봤다.


“이거, 이 놈 말이 정말인걸?”

“응? 정말로 한국에서부터 줄리안과 알던 사이가 맞아?”

놀란 레아는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줄리안이 한국에서 고아원에 있을 때 요 도깨비 놈이 도움을 받은 일이 있더군. 그래서 보은을 한답시고 줄리안 앞에 ‘상상의 친구 (imaginary friend)’ 모습으로 나타나서 서로 위로하며 친구로 지냈더군.”


뿌잇뽕!

”네, 네네! 맞습니다! 내가,, 줄리안의 친구예요. 나 혼자만 친구 입니다. 내가 지금 줄리안을 지키러 가야해요! 보내주세요!“


시시각각 희안한 소리를 내는 도깨비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피터는 뭔가 짜증이 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줄리안을 지킨다는 놈이 줄리안이 그 지경이 되도록 뭐 했어?“


피터의 말에 도깨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자책을 했다.


푸슉휘융..

“다.. 다 내 잘못 입니다. 내가 줄리안 주려고 우유를 몰래 숨겨놔서 주인 남자가 화가 났습니다. 다 나때문에.. 흐..흐.. 우흐해앵..”


에이든은 앞 뒤를 다 잘라먹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도깨비 대신 피터에게 자신이 읽은 도깨비의 기억을 바탕으로 설명을 했다.


“이 도깨비는 한국에서 부터 줄리안을 찾아 미국에 온게 맞아. 삼촌이라는 사람이 나쁜 계획을 갖고 줄리안을 찾으로 미국에 올때 수트케이스에 몸을 숨겨서 따라왔어. 줄리안이 불행하게 되어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으니까 다른 아이들이 다 먹어서 없애기 전에 줄리안이 먹을 우유를 늘 숨겨 놨었나봐. 어제는 그걸 가지고 주인 남자는 줄리안이 우유를 혼자 다 먹었다고 야단을 치다가 줄리안을 때려서 줄리안이 그 꼴이 된거야.”


아..

레아의 궁금증이 조금 해소가 되었다.

‘그러니까 저 도깨비는 나름 줄리안을 위해서 한 짓 이었는데 그게 줄리안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거구나.’


”그리고 이 놈이 기특한 짓도 했어.“

”기특한 짓? 뭐?“

피터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에이든을 쳐다봤다.


”줄리안이 몇시간을 걷는 비오는 밤길에 혹시 사고라도 날까봐 도로에 차가 한대도 다니지 못하게 길을 지도에서 사라져 버리게 만들었었네. 어쩐지..“


아! 그래서…

레아는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감각을 열어서 살핀 줄리안의 심리는 온통 죽음으로 덮여 있었었다.

‘트럭에 뛰어 들꺼야.’

‘차가 오면 온 몸을 부숴버릴꺼야.’

‘죽어버릴꺼야.‘


줄리안의 온 감각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이가 그렇게 오래 걷는 동안 어떻게 차가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을까..’

다 저 도깨비 덕분 이었구나.

레아는 새삼 도깨비가 기특해 보였다.


”그런데.. 도깨비, 너 집에는 어떻게 돌아갈꺼야?“

”집?“

”응. 도깨비는 한국 요물이라 이곳에는 집이 없어. 그래서 지금까지 줄리안이 살던 위탁 집 다락에서 살고 있었더라고.“


에이든의 말에 도깨비는 별 일 아니라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나, 나는 집 없어도 괜찮아요. 마침내 친구 줄리안을 다시 만났으니 집 따위는 ..“


듣고보니 이 도깨비 삶도 짜치다.

덜컥 미국으로 와서는 줄리안을 제대로 돕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줄리안 앞에 나타나서 제대로 친구 노릇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봐, 도깨비씨”

삐딱하게 앉아서 듣고만 있던 카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도깨비를 불렀다.

응냥..

카이의 부름에 도깨비는 순종적인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깨비 씨.. 라고?

’기분이가 좋아.. 응냥‘


“도깨비씨 우리랑 여기서 같이 지낼래?”


갑작스런 카이의 말에 도깨비 뿐만 아니라 레아와 피터, 에이든까지 깜짝 놀랐다.


“사람 모습으로 변할 수 있지? 아, 한국 사람 으로만 변할수 있는건가?”

옷호..

“..네, 네에. 나는 한국 요물이라서..”

“뭐, 어쨌든 상관 없어. 사람 모습으로 바꿔서 여기서 일을 하지 않을래? 내가 비서 시켜줄께. 월급도 주고 살 곳도 마련해 줄께. 내가 시키는 일들만 잘 하면 돼.“


시무룩..

”안, 안됍니다. 제발.. 나를 돌려보내 주세효. 내가 줄리안 지켜줘야 해서.. 우흐..우흐.. 우흐앵..“


아.. 또 운다.

뭔 요물이 저렇게 잘 우는지.

카이는 기가 막혔다.


”아니.. 도깨비씨. 댁이 줄리안을 위해서 뭘 한답시고 했던 일들 중에 제대로 된 일이 있었다면 줄리안이 지금 왜 저 모양 저 꼴로 살고 있겠냐고요. 안그래? 정말 네가 줄리안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줄리안을 어떻게 지켜줄껀데?“


뿌루웅…

“그, 그게.. 그게, 그러니깐.. ”


카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도깨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봐 도깨비. 줄리안은 우리가 책임지고 도울테니 너는 당분간 나한테서 일을 좀 배워. 나도 중요한 일 시킬 요정, 아니, 요물 하나쯤 필요 했는데 딱 잘 됐네.”


피터와 레아를 쳐다보며 눈을 반짝이던 카이는 도깨비의 팔을 낚어챘다.

“이 도깨비는 내가 찜 했다. 당분간 사회화를 좀 시켜야지.”


“아, 아니… 저, 저는 줄리안을..!”

도깨비의 하찮은 반항에 카이는 도깨비를 안심 시켰다.

”걱정 마. 때가 되면 줄리안에게 보내줄테니. 어짜피 네 능력으로는 줄리안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해. 아직은. 내 아래서 좀 배워라. 준비가 되면 그때는 가기 싫다고 해도 줄리안 곁으로 보내줄테니.“

”네? 정, 정말 이십니까?“

뿌잉뿡뽕!


카이가 무슨 생각인건지..

카이의 뜬금 없는 말을 듣고 레아와 에이든이 각자의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피터는 컴퓨터 앞으로 가서 줄리안이 다니는 학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있었다.

그가 찾아낸 정보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건 좀 의외인걸?” 피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줄리안이 다니는 학교가 꽤 비싼 사립 학교야. 연간 학비가 랭캐스터 지역 일반 가정의 연봉을 훌쩍 뛰어넘어."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양된 아이가 어떻게 그런 학교를...?"

"아마, 내 생각엔.. " 피터가 말을 계속 하기 전에 도깨비가 끼어들었다.


"주, 줄리안은 정말 좋은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부모님 토마스 부부가 죽기 전에 이, 이미 일 면치 학비를 지불 했었어요. 그래서 줄리안이 계속 그 학교를 다닐 수 있는거지만... 그러나 마침내 새 학기가 되면 .. 음.. 그러니까 학비를 못 내면 계속 다닐 수 없겠지요.”


도깨비의 말에 에이든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있겠군.”

모두의 시선이 에이든에게 집중됐다.

"어떤 기회?" 레아가 물었다.


에이든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우리 회사 기부 프로그램을 확장해서 그 학교와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어. 학교 재단에 기부를 하고 줄리안의 학비를 도와주는 거야. 아니면..."


"아니면?" 카이가 재촉했다.

"아예 학교를 인수해 버리는 거지."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야.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어. 위탁 가정 남자가 감옥에 가게 될 텐데, 줄리안의 새로운 위탁 가정은 어떻게 정해주지?"

밤이 깊어갔지만, 에이든의 사무실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 네 사람의 머릿속에는 줄리안의 운명과 그들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뉴욕의 화려한 야경과는 대조적으로, 사무실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빛나고 있었다.


도깨비는 자신의 걱정과는 달리 줄리안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신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정말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 줄리안은 별 일이 없을까?’

뿌잉뿡..

도깨비는 정말 오랜만에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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