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계

by 필리소

[Lancaster]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경찰차 , 줄리안은 담요를 뒤집어쓴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안을 가득 채운 히터의 따뜻한 바람이 그의 얼어붙은 몸을 서서히 녹이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네온사인들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간헐적으로 비추었다.


경찰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안을 울렸다.

"줄리안,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천천히 말해줄 있겠니?"

줄리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는 마치 악몽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난 시간 동안의 사건들이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었다.


먼저 떠오른 것은 위탁 가정 주인 남자의 무자비한 구타였다. 남자의 붉게 상기된 얼굴, 냄새가 났었던것도 같다, 그리고 남자의 구타. 주먹이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의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줄리안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다음으로 기억난 것은 집을 뛰쳐나와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던 거리를 걸었던 시간이었다. 차가운 가을 바람이 그의 얇은 옷을 뚫고 들어왔고,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낡은 창고였다.


" 창고에서... 창고에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요?”


줄리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경찰관의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사람들? 우리가 도착 했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있었다는건지 자세히 설명 해 줄수 있니?”


줄리안은 창고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려 했지만, 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주는 이질적인 느낌,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들만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이해할 없었던 일은 그레이스 선생님과 코치가 경찰과 함께 창고에 나타난 것이다.


"그레이스 선생님이 어떻게 저를 찾으신 걸까요?"

줄리안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혼란과 의문이 가득했다.


글쎄다. 누구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했지, 아마?”

경찰차는 이제 조용한 주택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2층짜리 주택들이 보였다. 그중 앞에서 차가 멈췄다.


", 도착했다." 경찰관이 말했다.

"그레이스 선생님 집이야. 우리보다 앞서 출발 했으니 이미 도착 해 있을거야.”

줄리안은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맴돌고 있었다.

그레이스 선생님은 줄리안이 다니는 아카데미의 대학 상담 전문가이자 11학년과 12학년 수학 선생님이었다. 중학생인 줄리안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다만 그레이스는 줄리안의 풋볼 코치인 선생님의 부인이었기에,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응원을 오는 그녀를 종종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Lancaster Academy는 펜실베니아 주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사립학교다.

유색인종 학생들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이곳에서, 아시안인 줄리안은 언제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까만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 또래보다 훨씬 키와 단단한 체격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줄리안, 이번 시험도 전교 1등이네.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도 공부로 널 따라올 학생이 없구나. 역시 너는 달라."


", 키로 농구부에서 날아다니고 있다며? 아시안인데도 운동도 잘하네."


칭찬 속에 숨겨진 미묘한 편견들.

줄리안은 그것을 느낄 있었지만, 대부분 무시하려 노력했다. 양부모님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학교생활은 전반적으로 평탄했다. 토마스 부부의 이름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졌고, 덕에 줄리안은 대부분의 친구들로부터 호의적인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양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이 전해진 그날, 줄리안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저기 , 줄리안이야. 들었어? 부모님이..."

"! 조용히 . 듣겠어."


복도를 지나칠 때마다 들려오는 속삭임, 동정 어린 시선들. 줄리안은 모든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생일 파티 초대장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깊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줄리안 말야. 이번 학기가 끝나면 어떻게 될까?”

"들었어? 공립학교로 전학 간대."


귓가에 맴도는 소문들. 일곱 미국에 와서 줄곧 다녔던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줄리안의 가슴은 무거워졌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 학교에 다닐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이제 당연했던 일상들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위탁 가정으로 옮겨간 , 줄리안의 일상은 더욱 힘들어졌다. 낯선 환경, 무관심한 위탁 부모,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불안감.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줄리안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 그레이스와 선생님이었다.


"줄리안, 힘들 때면 언제든 찾아와. 우리가 항상 편이야."


그들의 따뜻한 한마디가 줄리안에게는 힘이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시는 그레이스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두 부부는 오고 가다가 줄리안을 만나면 언제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주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학교 생활이 어려워 졌을때 그들의 관심과 배려는 줄리안의 어두운 나날에 작은 빛이 되어주었다.


경찰을 따라 그레이스와 션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줄리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그는 없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을 바라보며, 그는 모든 상황이 언제쯤 이해될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

“그레이스 선생님, 제가 창고에 있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레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과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게 말이다, 줄리안. 정말 이상한 일이었어."

그녀는 창밖으로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을 이어갔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 받아보니 어떤 남자가 네가 다쳤다는 거야. 빗속에 혼자 밖에 있다면서 와서 데려갈 있냐고 묻더라고."


그레이스의 목소리에 모호함 묻어났다.

"무슨 일인지 몰라 전화를 끊고 션과 의논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찾아온 거야. 우리 집에 오면 보호할 아이가 있는 곳을 알려줄 거라는 전화를 받았대."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거군요."

그의 머릿속에서는 창고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연락했겠지... 하지만 어떻게 그레이스 선생님을 알고...'


"신고는 누가 거니?"

줄리안은 망설이며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레이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신고가 들어왔는데 누가 전화인지도 모른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야. 걸려온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연결이 되더라."


그녀의 시선이 줄리안의 얼굴로 향했다.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와 찢어진 입술이 선명했다.


"그나저나 곳까지 가게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얼굴에 상처는 뭐고."


줄리안은 침묵했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레이스는 줄리안을 다그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으로써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꼭 알아야 했다. 그러나 이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헤집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싸웠니? 선생님에게는 얘기를 해야 . 그래야 너를 도와줄 있어."


줄리안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사실은..."


션이 거실에서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레이스는 줄리안의 얘기를 참을성 있게 들었다. 줄리안의 이야기는 길지 않았지만, 안에 담긴 고통은 무거웠다.


"위탁가정집 아저씨가 때렸어요. 처음이 아니예요. 저는, 저는.. 그렇게 나쁜짓을 하지도 않았어요, 선생님. 오늘은 제가 대..들었어요. 그리고아저씨에게 많이 맞고 화가나서 집을 나왔어요. 어디로 갈지 몰라서 그냥 계속 걸었어요. 그러다보니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연히 발견한 건물에 들어갔던 거예요."


그레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의 주먹이 무의식적으로 쥐어졌다.


'아이 얼굴이 이렇게 때까지 때렸다고?'

그녀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차올랐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빗소리만이 그들의 복잡한 감정을 대변하듯 창밖에서 계속해서 들려왔다.


"선생님," 줄리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혹시... 건물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나요?"


그의 마음속에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람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남자와 여자. 그들과 나눈 대화, 그들의 표정, 그리고 이상한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했다.


그레이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아니, 줄리안. 네가 혼자 있었잖아."

그녀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누가 있었다는 거니? 거기서 누굴 거야?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줄리안은 순간 당황했다.

'경찰과 선생님은 사람들을 보지 못했구나.'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앞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 그것은 분명 현실이었는데.


"... 아니에요."

줄리안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빛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제가 아마 꿈을 꿨나 봐요. 아무도 없었다면 제가 꿈과 현실을 착각한 거겠죠."


처음에는 줄리안도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 헛것을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있을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명이나.


하지만 주머니 빳빳한 명함의 감촉이 그의 의심을 불식시켰다. 그것은 분명 신비로운 여자가 것이었다. 명함을 건네며 작은 목소리로 했던 그녀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죽지 . 조금만 버텨봐.'


그녀의 말은 무거웠지만 이상하게도 줄리안의 마음을 가볍게 해줬다. 그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도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듯한 느낌. 그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확신할 없었지만, 줄리안은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조용히 줄리안의 상처난 얼굴만 쳐다보던 그레이스는 눈길을 돌렸다.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의자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다.


잠시 , 그레이스는 깨끗한 잠옷과 부드러운 타월을 들고 돌아왔다. 줄리안의 기분탓인지 그레이스 선생님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이건 션이 사놓은 잠옷과 속옷이야. 사이즈가 클지도 모르지만, 번도 입은 거란다. 샤워하고 나올래? 그리고 나서 밥부터 먹자."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 선생님."

옷을 받아들고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줄리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

날카로운 비명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레이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 그래! 아파?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니? 선생님이 봐도 될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레이스는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 조심스럽게 줄리안의 아직도 축축하게 젖어있는 셔츠를 잡았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셔츠를 들어올렸다.


"세상에!"

그레이스의 비명이 안을 가득 채웠다.


줄리안의 몸은 온통 투성이었다. 붉고 파란 자국들이 그의 피부를 뒤덮고 있었고, 여기저기 긁힌 자국도 보였다. 특히 왼쪽 옆구리 윗부분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레이스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며 외쳤다.

"! !! 911 전화해! 지금, 당장!"


그레이스의 긴급한 외침에 션과 경찰이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션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허니, 무슨 일이야?"


그레이스는 떨리는 손으로 줄리안의 옷을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줄리안 몸이, ... 아이 !"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모두의 시선이 줄리안의 상처 입은 몸에 고정되었고, 순간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오직 그레이스의 흐느낌만이 고요한 안을 채우고 있었다.

줄리안과 그레이스 앞에서는 표현을 하지 않았었지만 아이의 얼굴에 상처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던 션 이었다.


그는 아이의 전체에 퍼져있는 상처와 옆구리와 가슴에 점점 검붉게 올라오는 피멍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그레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위탁 집의 남자에게 맞았대. 어떻게... 어떻게 아이의 몸을 지경으로 만들 수가 있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함께 있던 경찰관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다.

그는 줄리안의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직업적인 냉정함과 인간적인 연민이 공존하고 있었다.


신고를 위해서는 911 부를 필요는 없을 같습니다.”

경찰관이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여기 있으니 바로 리포트를 작성해서 아동 학대 사건으로 분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폴리스 라인으로 병원에 연락해 놓겠습니다. 일단 병원부터 데리고 가는 게 좋겠어요. 이렇게 하는게 절차가 더 빠를꺼예요.”


션은 무거운 표정으로 경찰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감사와 동시에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는 천천히 그레이스에게 다가가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레이스," 션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결연했다.

"우리가 줄리안을 며칠 데리고 있자."

그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그레이스의 눈에 작은 희망의 빛이 어렸고, 줄리안의 긴장된 어깨가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 날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줄리안은 위탁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레이스와 션의 집으로 돌아와 계속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션의 말에 의하면 위탁가정 주인 남자는 아동 학대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죄가 확정 되면 징역을 살게 될거라고 했다.

그레이스와 션이 줄리안의 임시 보호자 자격으로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부부가 둘 다 줄리안의 학교에 교사로 있는 입장이라 정식 보호자 허가를 받는 절차가 까다로왔다.


“줄리안, 우리에게 정식 보호자 허가가 나올 때 까지 임시 보호자이니 네가 이 집에서 지내는데는 문제가 없어. 걱정 하지 말고 편히 지내렴.”

“감사합니다. 선생님.”


며칠 후 늦은 저녁, 션은 거실 한구석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고, 낮은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묻어났다. 통화를 마친 션은 한숨을 내쉬며 그레이스를 불렀다.


"그레이스, 잠깐만 이야기 할까?"


그레이스는 션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줄리안은 불안한 시선으로 방으로 향하는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자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줄리안은 없는 불길한 기운에 휩싸였다.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함이었다.

잠시 , 안에서 그레이스의 흥분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떻게 악마 같은 아동 학대자가 무죄로 풀려날 수가 있어!!"


"그레이스, 진정하고 일단 정황을 알아보자."


션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그레이스를 진정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줄리안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없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 션은 분노에 목소리로 누군가와 계속 통화를 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격렬하게 항의했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줄리안의 일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보느라 저녁도 먹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끊임없이 이메일을 쓰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줄리안은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분위기 때문에 차마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없었다. 그의 마음은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가득 찼다.


다음날, 그레이스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 망할 놈의 인맥 재판! 내가 백악관에 청원을 넣을 거야! 나라에서 아동 학대가 얼마나 범죄인데 그놈을 풀어줘! 아이의 몸에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증거가 부족하다는 거야!!"


그제야 줄리안은 상황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위탁부, 악마 같은 남자가 풀려났다는 것이다.

주인 남자는 줄리안을 폭행한 적이 없다고 뻔뻔하게 주장했다. 그의 변호사는 이미 성인의 체구만큼 키가 줄리안이 갈비뼈가 부러질 때까지 저항도 하지 않고 맞고만 있었을 리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쳤다. 더욱 황당한 것은 판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판사는 다른 위탁 아동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유독 줄리안만 학대를 당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같이 살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증언이 줄리안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이들은 줄리안이 구타당하는 것을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물론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이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인 남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거짓 증언을 것이다.


줄리안은 절망에 빠졌다. 그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세상에 절망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몇번의 재판이 더 진행 되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마침내 끝났을 ,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줄리안과 위탁부의 입장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이상 그는 학대받는 불쌍한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없는 아시안 고아를 따뜻하게 보살펴주던 마음씨 좋은 백인 중년 남자를 모함하는, 은혜도 모르는 영악한 소년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줄리안은 자신이 바로 '영악한 소년'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움과 절망감으로 가득 찼다.


어안이 벙벙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는 그저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이런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온 걸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재판이 끝난 , 그레이스 선생님으로부터 모든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줄리안은 충격에 빠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 슬픔에 잠긴 눈빛은 현실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줄리안은 그레이스의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억울함, 분노, 절망감, 그리고 무력감까지. 그는 과연 무엇을 잘못한 걸까? 세상은 자신에게 이토록 가혹한 걸까?


와중에 법정에서 위탁부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줄리안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란다고 애원했다는 사실이 줄리안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줄리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집으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지내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악마 같은 남자가 어떻게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있을까? 줄리안의 온몸이 분노로 떨렸다. 그는 남자가 자신에게 가했던 끔찍한 폭력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 공포에 질린 애원하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남자의 비웃음까지.


하지만 법정은 남자의 거짓말을 믿었고, 자신을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아이' 낙인찍었다. 줄리안은 세상이 자신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자신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억울함을 있을까? 아니면 평생 '영악한 소년'이라는 낙인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까?


그레이스는 망연자실해서 앉아있는 줄리안의 손을 잡고 그의 굳게 닫힌 입술을 바라보았다.


"줄리안, 걱정하지 . 션이 다른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어. 항소 할꺼야. 이번에는 아이의 인권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변호사를 선임할 거야. 그리고 방금 지역 신문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 분명히 변화가 생길 거야."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가 상황을 공론화할 거야. 지역 사회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네가 겪은 부당한 현실을 알게 거야. 만약 방법마저 막힌다면, 우리는 정부와 연방 정부 교육청에 청원을 넣을 거야. 우리가 있는 모든 것을 거야."


그레이스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절대 너를 억울하게 만들지 않을게."

줄리안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의 시선은 그레이스의 진지한 눈과 마주쳤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는 그레이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무력함에 좌절감을 느꼈다.


"선생님..." 줄리안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들어가서 쉴게요. 그래도 되죠?" 그의 목소리는 작고 떨렸다.

그레이스는 아무 말도 없었다.

==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어쩌지 …?”


그레이스의 눈은 밤새도록 이룬 피로와 걱정이 가득했다. 션은 그레이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그래도 조금씩 음식을 먹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레이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션 역시 걱정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션은 줄리안의 방문 앞을 끊임없이 서성거렸다. 그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방안에 딸려있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가끔씩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숨을 죽이고 울음을 내뱉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그는 줄리안이 움직이고는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줄리안은 굳게 닫힌 방문 뒤에 자신을 가둔 ,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했다.


그렇게 줄리안은 며칠 동안 자신의 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는 마치 고치 속에 갇힌 나비처럼, 어둠 속에서 홀로 괴로워했다. 그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그의 마음은 깊은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있었다.


그레이스와 션은 줄리안의 고통을 이해했다. 그들은 억지로 상처 입은 아이를 밖으로 끌어내려 하지 않았고, 억지로 입을 열게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줄리안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션은 매일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줄리안의 앞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가끔 문을 두드리며 줄리안이 약을 챙겨 먹고 있는지만 확인했다. 그 외에는 그레이스도 션도 줄리안에게 다른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곁에 있어주면서, 줄리안이 언젠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곳저곳 연락을 하며 줄리안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다보니 어느덧 며칠이 훌쩍 지나 주말이 되어있었다. 그레이스는 창밖의 따스한 햇살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션에게 말을 건넸다.


"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줄리안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요. 벌써 며칠째 저렇게 방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내고 있잖아. 의사가 갈비뼈는 잘 아물고 있다고 했으니, 오늘은 햇볕이라도 쬘 겸 공원에 가서 좀 걷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션은 그레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아. 줄리안 옷도 좀 사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도 몇 켤레 더 사주죠. 아, 그러고 보니 줄리안 짐은 아직도 그 집에 그대로 있네. 당장 이번 주말에 줄리안 짐을 전부 다 옮겨 놓을까? 어차피 앞으로는 여기서 함께 살게 될 텐데."


그레이스와 션은 줄리안의 기분 전환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거실로 나왔다.


"줄리안?"

언제 나왔는지 줄리안이 거실에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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