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이제 혼자서 이겨낼줄 알아야 해요.

by 필리소

션 선생님과 주인집 남자 사이에서 점점 날카로운 말들이 오고갔지만 줄리안은 남의 일인듯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협박? 그래, 말 잘했다.” 션이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협박도 하고 구타도 해도 되는 거잖아. 너처럼 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감옥 안 간다는 거 알았는데, 내가 못할 것 같아?”


션의 손이 다시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의 거대한 체구가 남자를 압도하며 앞으로 쏟아졌다. 남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을 움츠렸지만, 억지로 태연한 척하려 애쓰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줄리안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션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싸움이 날 것 같았다. 줄리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만하세요!”

줄리안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평소 조용하던 줄리안이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자 모두가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그만하세요.” 줄리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떨림이 느껴졌다. “아저씨도 앉으세요. 할 말이 있어요.”


션은 줄리안을 잠시 바라보더니 마침내 올렸던 손을 멈췄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확 밀어 남자를 쳐냈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줄리안의 행동은 어딘가 전과 달랐다. 평소에는 주눅 들어 조용히 있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줄리안을 기분 나쁘다는 듯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당혹감과 불쾌함이 섞여 있었다.


줄리안은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아저씨,” 줄리안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운이 좋으셨네요.”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아동학대범이 될 뻔했는데, 잘 빠져나오셨네요.” 줄리안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근데요, 아저씨.” 그는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저 때렸잖아요.”


남자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그런 일… 크흠… 니가 무슨 말을 해도 바뀌는 건 없어.”

남자는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그는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일을 따져 물으려는 건 아니에요.”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는 아저씨와 협상을 하러 왔어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협상이라는 단어가 아이의 입에서 나오자 그레이스와 션은 동시에 고개를 휙 돌려 줄리안을 쳐다보았다.


“뭐라고?” 남자는 피식 웃으며 비웃듯 말했다. “협상이라고 했냐, 지금? 니가? 나하고?”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협상이요.”


남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크크크… 쪼그만 게 건방진 건 여전하구나.” 그는 몸을 뒤로 젖히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들어나 보자, 무슨 협상?”


줄리안은 남자의 조롱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줄리안은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판사에게 제가 다시 이 집에 들어오길 원한다고 하셨다면서요.”


남자는 줄리안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자 순간적으로 말을 멈췄다. 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줄리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요.” 줄리안은 한 박자 쉬며 방 안의 모든 시선을 끌었다. “그렇게 할게요. 다시 들어올게요.”


그레이스와 션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줄리안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걱정과 의문이 가득했다. 그러나 줄리안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남자를 향해 계속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 건드리지 마세요. 지난번엔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게 당했지만, 이번엔 다를 거예요.”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줄리안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때리면 이번엔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줄리안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반드시 아저씨가 저를 때렸다는 증거를 만들 거예요. 그럼 그땐 아저씨 진짜 감옥 가요.”


방 안은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남자는 줄리안을 노려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그는 폭발하듯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 건방진 놈이!” 남자는 의자를 뒤로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니놈이 갈 곳이 없어서 내 집에서 빌붙어 살고 싶다고 다시 왔으면, 당장 무릎을 꿇고 빌어도 될까 말까인데! 쪼끄만한 자식이 어디서 협박질이야??”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고, 션은 이를 악물고 참으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줄리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줄리안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아, 이 남자는 정말 마지막 양심도 없는 나쁜 사람이구나.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그날 일을 본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나를 구타한 자신은 진실을 알고 있잖아.

줄리안은 남자의 뻔뻔한 태도를 보며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뻔뻔한 사람이라니.

그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게으르고 능력마저도 없지.

줄리안의 시선은 방 안 곳곳에 널브러진 빨랫감과 쓰레기들로 향했다. 부엌에 쌓인 설거지와 먼지가 쌓인 가구들까지, 이 집의 상태는 남자의 무책임함과 게으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줄리안의 마음속에 묘한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남자는 여전히 화를 내며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줄리안은 더 이상 그의 분노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차분하게 남자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이 상황에서 누가 진짜 약자인지, 누가 진짜 우위에 있는지를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줄리안은 남자의 분노에 찬 눈빛을 마주 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냉철함이 묻어났다.


"아저씨. 제가 지금 저 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걸로 보이세요?" 줄리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협상이라고 했잖아요."


남자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줄리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저씨 집에서 나가라면 저는 선생님 집으로 갈 거예요. 그레이스 선생님이 제 대리인이 되어 주시겠다고 했어요." 그는 잠시 그레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레이스는 놀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요." 줄리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런데 아저씨, 있잖아요... 제가 떠나면 아저씨는 제 앞으로 나오는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없잖아요? 그건 괜찮으시겠어요?"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줄리안은 그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는 남자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정부 보조금과 보험 혜택, 식품 보조금. 세금 혜택. 줄리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게으른 남자는 일을 하지 않고도 아이들 몇 명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가로 세금도 절약하며 기본 생활 이상을 누릴 수 있었지.


"아저씨가 저 모른 척하고 내버려두면," 줄리안은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 집에 있는 동안에는 나라에서 돈이 나올 거예요. 그리고 배은망덕한 아이를 다시 받아준 좋은 사람이라고 동네에 평판도 좋아지겠죠."


남자의 눈이 흔들렸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자, 아저씨가 선택하세요." 줄리안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레이스와 션은 놀란 눈으로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아이가 정말 열네 살이 맞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한 눈빛을 교환했다.


남자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애송이라고 생각했던 열네 살짜리 꼬마가 돈과 명예를 들먹이며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자 줄리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방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모두의 시선이 줄리안과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제 공은 남자에게 넘어갔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줄리안은 차분한 표정으로 남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의 눈빛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빛이 어렸다. 그는 이미 이 게임의 승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남자는 줄리안을 노려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다.


‘저 X 같은 놈이 매를 버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기만 하던 놈이 뭘 잘못 먹고 갑자기 이렇게 당당하게 굴어?’


줄리안이 집을 나가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유를 다 마셨다는 이유로 그를 때렸던 그날, 줄리안은 아무 말 없이 맞기만 했었다. 울지도 않고, 반항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견디던 그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앉아있는 이 놈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줄리안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남자를 꿰뚫어보는 듯한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남자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참으려 애썼다. ‘지금 당장 골프채라도 들고 두들겨 패고 싶다.’ 그의 손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옆에 앉아 있는 덩치 큰 선생이라는 남자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션의 눈빛은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이를 악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비열하고 억눌린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그는 속으로 다시 중얼거렸다.


‘두고 보자, 애송이.’

그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지금은 상황이 시끄러워서 내가 참는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라. 제대로 밟아주마.’


방 안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남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줄리안을 바라보며 속으로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줄리안은 그런 남자의 속내를 이미 꿰뚫어 본 듯했다. 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오히려 남자의 반응을 조용히 관찰하며 다음 수를 계산하는 듯 보였다.


션과 그레이스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션의 주먹은 여전히 단단히 쥐어져 있었고, 그레이스는 초조한 눈빛으로 남편과 줄리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남자는 결국 고개를 돌렸다. 그는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복수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줄리안은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미 이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싸워야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안, 정말 우리와 함께 돌아가지 않을 거니?”

그레이스는 줄리안이 살던 작은 방을 둘러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방은 너무나 초라했다. 낡은 침대와 허름한 책상, 그리고 구석에 쌓여 있는 몇 개의 옷가지가 전부였다. 벽에는 오래된 얼룩이 남아 있었고,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방 안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레이스는 다시 한 번 줄리안을 설득하려 애썼다.

“난 도무지 네가 왜 여기 있으려고 하는지 모르겠구나. 줄리안, 같이 돌아가자. 응?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줄리안은 그레이스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손은 무릎 위에서 꽉 쥐어져 있었고, 그의 어깨는 단단히 굳어 있었다.


“선생님,” 줄리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저 이겨 내 볼게요.”


그레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정말 왜 이래!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


션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이미 걱정과 슬픔이 가득했다. 그는 줄리안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줄리안의 고집스러운 태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줄리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레이스와 션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대신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그 말에 그레이스와 션은 동시에 놀란 표정으로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줄리안의 입에서 ‘부탁’이라는 말이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응? 부탁?” 그레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네, 선생님… 제가, 실은 돈이 없어서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파양되면서 제 앞으로 돈이 있었다는데… 한국 삼촌은 그 돈을 모두 가지고 사라져 버렸어요.”


그레이스는 순간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에 가슴이 아파왔다. 션 역시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줄리안…” 션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미처 생각을 못했구나.”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뭐가 필요하니?”


션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14세밖에 안 된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부모도, 돈도 없이 이 세상에 홀로 비바람 맞으며 서 있는 겨우 열네 살짜리 소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줄리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화기 좀 사 주세요.” 그는 작게 말했다. “죄송해요… 그리고… 정말 죄송한데 당분간 월정액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러자.” 션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전화기가 있어야 우리도 편하게 연락하지.” 그는 억지로 웃으며 덧붙였다. “어차피 미성년자는 성인 보호자 아래로 가입해야 하잖아? 내 이름으로 라인을 하나 만들어 줄 테니 당장 사러 가자.”


션의 말에 줄리안의 얼굴에 미세한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줄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션과 그레이스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응, 또 뭐가 필요해?” 션이 부드럽게 물었다.


줄리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레이스와 션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었다. 그들은 줄리안이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줄리안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만,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줄리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결심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 저 가을이면 9학년이 돼요.”


그레이스와 션은 줄리안을 바라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줄리안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주신 학비는 아마 이번 봄 학기가 마지막일 거예요. 중학교를 마치면 고등학교를 가야 하는데…”


줄리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 그레이스는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렇구나…”


그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줄리안이 다니는 학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립은 아니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가장 비싼 사립학교였다. 고등학교의 1년 학비는 5만 불이 넘었다. 어지간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그레이스는 줄리안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파왔다. 부모가 없는 아이가 이런 걱정을 해야 한다니…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션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음… 줄리안, 학비 문제는 말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이번 주에 교장 선생님을 만나볼게.”


줄리안은 고개를 들어 션을 바라보았다. 션의 얼굴에는 단호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내가 알기로 우리 학교에 장학금 제도가 있어.” 션이 말했다. “네 사정을 얘기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중학교 성적은 어떠니? 성적이 좋으면 성적 장학금과 생활 보조금을 모두 신청해볼게.”


션의 말에 줄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아니요, 선생님.” 줄리안이 조용히 말했다. “저 이번에 중학교 졸업하면 학교 그만두려고요.”


그레이스와 션은 동시에 놀란 표정으로 줄리안을 쳐다보았다.


“뭐?” 그레이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고등학교를 안 간다고? 왜? 학비 때문이니?”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이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저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GED 시험 준비해서 최대한 빨리 독립하려고요.”


그레이스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줄리안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잣집에서 좋은 부모에게 서포트받으며 살던 아이가… 어디서 이런 정보들을 들었을까?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션도 충격을 받은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줄리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줄리안, GED 시험 준비라니… 너 이제 중학생이야. 고등학교 과정 없이 그 시험 패스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너 지금 겨우 열네 살이야.”


줄리안은 션의 말을 듣고도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선생님.”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근데 저는 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


그레이스는 줄리안의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열네 살짜리가 ‘시간이 없다’고 말하다니… 그녀는 슬픔과 충격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줄리안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

“저 혼자 살아야 해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지금처럼 계속 어른들한테 기대면서 살 수 없어요.”


그레이스와 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 안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학교를 안 가고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따겠다는 열네 살 소년이라니… 그레이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줄리안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구나.


션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레이스 또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줄리안의 말은 단호했고, 열네 살 소년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쩔 수 없는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후우…”

그레이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줄리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줄리안,”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흐음… 그래. 네 생각은 잘 알겠어.”


션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줄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레이스는 잠시 션과 시선을 교환한 뒤 말을 이었다.


“어… 그런데, 우리에게 시간을 좀 주겠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주일 동안 선생님들이 열심히 생각해볼게. 네가 말한 대로 GED를 준비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지만, 혹시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줄리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조금만 천천히 결정하자, 줄리안.” 션이 부드럽게 덧붙였다. “어차피 이번 학기를 마칠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잖니.”


줄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엿보였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그 대답에 그레이스와 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줄리안을 설득할 시간이 조금 더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운 짐이 남아 있었다. 그 후, 셋은 함께 차를 타고 핸드폰 매장으로 향했다. 줄리안은 차창 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션과 그레이스도 조용히 운전하며 서로 눈빛만 교환할 뿐이었다.


핸드폰 매장에서 줄리안에게 새 전화기를 사주고 월정액 요금제를 등록하는 동안, 션은 계속해서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작은 행동이라도 줄리안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줄리안, 이제 우리가 언제든 연락할 수 있으니까 조금은 안심이 된다.” 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줄리안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핸드폰을 사준 뒤, 셋은 다시 차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 안의 분위기가 더욱 무거웠다. 션과 그레이스는 줄리안을 다시 위탁집으로 데려다줘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위탁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레이스는 차에서 내리는 줄리안을 보며 말을 건넸다.

“줄리안, 우리 약속했으니까 꼭 일주일만 기다려줘.”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네, 선생님.” 줄리안은 짧게 대답했다. 그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션과 그레이스는 차 안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션과 그레이스는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밤이 늦도록 두 사람은 인터넷 창을 열어놓고 검색을 이어갔다.


션은 고등학교 장학금과 정부 보조금에 대해 찾아보고 있었다. 그는 메모장을 꺼내 필요한 정보를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그레이스,” 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학교에 장학금 제도가 꽤 많더라. 성적 장학금뿐만 아니라 생활비 지원 장학금도 있네.”


“응,” 그레이스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나도 다른 학교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어. 혹시 우리 학교가 아니더라도 줄리안에게 적합한 곳이 있을지도 몰라.”


그녀의 목소리는 결연했지만, 동시에 피곤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벽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새벽이 가까워졌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밤이 지나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해결책을 찾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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