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운명이 서로를 찾겠지

-- 1부 마지막회

by 필리소

위탁가정의 주인 남자는 거실을 서성이며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망할 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지?"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주먹은 불끈 쥐어진 채였다.

줄리안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침대 메트리스에 숨겨둔 돈까지 사라졌다. 남자의 마음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몰아쳤다.


‘절대 혼자 벌인 일 일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그 선생 부부밖에 없다. 줄리안과 한통속이 되어서 자신의 돈을 훔쳐낸게 분명한데… 그러나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당장 어찌 할 방법이 없다.


그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방 안을 오가다가 벽을 세게 내리쳤다.

“쥐새끼 같은 놈! 내 돈을 훔쳐 달아나다니! 내가 그놈을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해줬는데!" 그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가 불규칙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입가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하하하! 멍청한 놈! 니깟놈 주제에 그 큰 돈을 들고 어디까지 숨을수 있을것 같아?"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가 순식간에 다시 분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네가 언제까지 내 눈을 피해서 도망갈 수 있을 줄 알아? 내가 너를 못 찾아낼것 같아??”


남자가 처음 줄리안을 위탁받았을 때는 단순히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한 선택이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매달 들어오는 돈은 꽤 쏠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나이에 비해 큰 키와 덩치. 다른 아이들과 달리 부모나 친척이 아무도 없는 고아. 늘 기가 죽어서 눈치만 보던 아이. 어디에서 뭘 하다가 사라져 버려도 아무도 찾지 않을 아이. 입양아.


"18살만 되면 끝나는 보조금 대신에…"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며 중얼거렸다. 생각의 흐름이 다시 돈으로 쏠리기 시작하자 자신의 매트리스 아래에 숨겨 두었던 돈이 다시 생각 났다.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아, 내 돈... 내 돈..."


줄리안이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정부 보조금이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줄리안을 마약 재료가 되는 꽃을 재배하는 농장에 팔아넘길 생각이었다. 이미 마약상들과 얘기도 마친 상태였단 말이다. 자신의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갈 곳 없는 줄리안에게는 선택권이 없을 터였고, 자신은 줄리안을 넘겨주는 댓가로 쉽게 목돈을 만질수 있었을 것이다.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그는 분노와 좌절감에 몸을 떨었다. 갑자기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완벽했어! 완벽했다고!"

그의 웃음소리는 점점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그놈이 내 돈을 들고 사라지지 않았어도…

“내가 모아둔 피같은 돈. 내 돈! 그 돈으로 모든 걸 새로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는 다시 벽을 향해 달려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 퍽

“어디로 숨었어!! 당장 나와!”

손에서 피가 배어나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돈을 훔치고 감히 날 배신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는 갑자기 방 안의 물건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꽝. 와당탕, 쨍그랑.

꽃병이 깨지고, 책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나와봐! 어디 숨었어! 줄리안!" 그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웠고, 그의 눈빛에는 복수심으로 가득 찬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며 중얼거렸다.

"찾아낼 거야... 반드시... 내 돈... 내 돈..."

==


션이 문을 닫고 들어가는것을 확인 한 후 공간을 열어 바로 줄리안이 살았던 집으로 이동을 했다.

“뭘 봤어?”

피터는 표정 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에이든이 션의 손을 잡고있을때 그의 마음에서 무엇을 읽어내었을지가 궁금했다.

레아와 카이도 조용히 에이든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에이든은 현실과 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학교에 가서 교장과 설전을 벌이느라 시간을 보냈고 션까지 만나봤다. 줄리안 때문에 들어본적도 없는 작은 사립학교에 거액이라면 거액을 기부했다. 줄리안과 대단한 접점이 없는 사이인데도 이미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있다.

이쯤이면 그만 돌아가자고 먼저 얘기를 꺼냈을텐데 션과 대화 후 (정확히는 션의 기억을 읽은 후) 뭔가 생각이 많아져 보였다. 평소에는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현실적인 에이든 이지만 좋은 인간을 만났을때는 무한정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도와주고싶은 에너지가 폭발을 하는 인물이다.

레아는 에이든이 입을 열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레아, 줄리안은 지금 여기 없어.”

“그건 우리도 알아. 아까 피터와 함께 교장 비서와 얘기를 나눴어. 학교에서 우리가 보낸 장학금에 대한 회의를 했었더라고. 회의 기록을 받아왔어.”

회의 기록을 받아왔다는 말에 에이든은 놀랐다.

“제법인걸?”

“피터가 했지. 그 비서 동생이 줄리안과 함께 위탁가정에 있는 엠마라는 여자애와 친구 인가봐. 그 여자애에게 들었대. 줄리안이 없어졌다고.“

듣고있던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션의 기억 속에서는 읽지 못했던 정보에 눈을 반짝였다.

”엠마?“


”응. 대충 그런 이름이었어. 그건 그렇고, 너 아까 션 이라는 남자의 손을 꽤 오래 잡고 있었지?”

씨익 웃는 에이든의 얼굴을 보니 뭔가 할 얘기가 있는게 분명했다.

“뭔가 읽어낸게 많을것 같은데.. 션의 기억에서는 뭘 알아냈어?”

에이든은 흥미 진진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레아쪽으로 몸을 돌렸다.

“줄리안에 대해 많은걸 알아냈지.”

궁금해 하는 레아를 보며 에이든은 말을 이어갔다.


“줄리안이 온라인 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메사추세츠에 있는 윌리엄스 대학을 갔다네?”

도깨비에게서 대충은 들었던 얘기다.

온라인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했다는둥, 조기 입학으로 대학을 간다는둥..

그러나 미국 교육에 대해 아는게 없는 도깨비가 전달해 준 정보는 뭐 하나 깔끔한게 없었다. 온라인 고등학교에 대해서도, 줄리안이 대학을 가게되는 과정도 두리뭉술하고..


그나마 확실했던것은 줄리안이 Lancaster Academy 의 upper school로 진학을 하지 못했었다는 것과 창고같은 방에서 살고 있었고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해 졸업을 했고 대학을 알아보고 있었다는 정도.


“윌리엄스 대학?”

“대학을?”

“뭐라고? 온라인 고등학교?”

그나마 도깨비를 통해 정황 보고를 받은 피터와 레아는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카이는 줄리안이 온라인 고등학교를 다녔고 윌리엄스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는 말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자세한 얘기는 있다 돌아가서 할께. 자, 그럼 이제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으러 가 볼까?”

평소 같지 않게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 에이든을 보면서 레아는 피터에게 나지막히 소근거렸다.

-에이든 답지 않게 왜 저렇게 열정적이야?

-글쎄요. 뭔가 재미있는걸 알게된것 같지 않습니까?

-그게 뭘까? 일단 따라 가보자.


딩동~

똑똑..

몇번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예쁘장한 소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시죠? 아저씨는 지금 집에 없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를 찾아 왔습니다. 아가씨는 누구시죠?“

프로메테우스는 이 여자애가 엠마 일꺼라고 확신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엠마는 이 지루한 집에 갑자기 누구를 찾는다며 온 이 근사한 사람들이 신기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옷들을 입고 있었고 이 동네 사람들 같지 않게 키가 크고 배가 나오지 않았다. 윤기가 나는 머리카락도 그렇고 말투도 세련되었고, 무엇보다…


‘예쁘다.‘

남자들과 함께 서 있는 여자는 정말 아름다웠다.


엠마의 눈은 자석처럼 레아에게 꽃혔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세련되고 반짝이는 저 예쁜 여자는 절대 이 동네 사람이 아닐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반짝일수가 있지?’


“저..아가씨?”

에이든의 목소리에 엠마는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있는 에이든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아, 죄송해요. 여기는 손님이 자주 오는 집이 아니라서..”

“아닙니다. 괜찬습니다. 불쑥 찾아온 저희가 실례를 했지요.”


엠마를 관찰하던 레아는 자신에게 호감의 눈길을 보내는 엠마의 눈빛을 알아차렸다.

'내가 맘에 들었구나? 그렇다면...'

“저희는 뉴욕에서 왔어요. 여쭤볼 일이 있는데 집에 혹시 어른이 계시면 얘기를 좀 나눌수 있을까요?”

“어른.. 은 없어요. 아니, 지금은 안계세요. 요즘에는 늦게 들어오세요. 언제 돌아올지 몰라요. 아니, 아마 늦으실꺼예요.”

--뉴욕?

대도시 뉴욕에서 왔다는 여자는 완벽했다.

--뉴욕에서 사는 여자는 저렇게 반짝반짝 예쁘구나. 나도 뉴욕에서 살면 저 여자처럼 빛날수 있는걸까?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할텐데..


엠마는 요즘 아저씨와 만나는 일을 되도록 피하고 있다.

숨겨놓은 돈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전에 아저씨의 얼굴을 보는 일은 불안하기만 하다. 빨리 정당하게 이 곳을 떠날 방법을 모색해야 숨겨놓은 돈을 안전한곳에 옮길수 있을텐데.. 줄리안이 자신의 돈을 도둑질 했다는 분노 때문에 지금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을게 뻔하다.

빨리 방법을 찾아서 여기를 떠나야 할텐데..


엠마가 레아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에이든은 엠마와 악수를 한 손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흠.. 이 아가씨는 도대체 뭐지?‘

에이든은 엠마와 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엠마의 생각의 흐름에 집중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이런, 이 꼬마, 아주 깜찍하네? 불길한 기운이 너무 많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에이든은 줄리안에 대해 챙겨야 할 정보를 모두 얻었다.

엠마라는 어린 아가씨가 가지고 있는 줄리안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몇가지의 내용이 있었다.


주인남자의 폭력, 엠마가 가진 줄리안에 대한 연정, 줄리안이 몰래 떠난것에 대한 절망, 주인 남자의 돈을 훔쳐낸 일, 줄리안에게 자신의 범죄를 뒤집어 씌운 정황...


역시 인간은 본성이 악하다.

줄리안이 이 꼬마 아가씨에게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줄리안을 이용해 주인 남자의 눈을 가릴 생각을 하다니.

--인간들의 얄팍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질되기 쉽지. 애증이라...


다시한번 인간들의 가벼운 마음에 피가 차가와진 에이든은 엠마의 손을 놓았다.

“아, 어른이 안계시군요. 그럼 저희는 다음에 다시 찾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네? 내가 뭐 도와드린게 .. 없는데”

”아닙니다. 많은,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고마워요 아가씨. 자, 우리는.. 이제 이만 돌아가도록 하세.“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았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지.


"저, 커..커피라도 드시고 가세요!"

레아와 조금이라도 더 있고싶었던 엠마는 다급히 에이든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을 했지만 그들은 처음 등장 했던 우아한 몸짓으로 엠마의 친절을 거부하고 집을 떠났다.



==


[뉴욕 에이든의 오피스]


“그 엠마라는 여자애 말이야. 레아를 보고는 한 눈에 반한듯 하던걸?”

에이든은 엠마가 레아를 보자마자 느낀 선망과 부러움의 감정을 엠마와의 악수를 통해서 고스란히 느꼈다.


’객관적으로 레아가 매력적이긴 하지.‘

“응, 안그래도 그 꼬마의 눈빛에 좀 설레더라.”

“수백, 수천년을 살아도 저 자신감은 절대 무너지지 않지.”

레아의 심드렁한 말에 카이는 놀리듯 말했다.


”어때? 이제 다 얘기 해봐. 하루 종일 움직였더니 피곤해. 얼른 가서 쉬어야겠어.”

“레아님은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늘 얘기하지만 하루도 빠지지 말고 근력 운동을 하셔야 해요.”

’으..피터, 저 잔소리. 피곤하다는 말을 못해요.’

레아는 자신의 체력이 일반 인간 여자들과 비교해도 중간도 못 간다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딱히 피터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던 에이든은 오늘 하루 자신이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까 말 했던것 처럼 줄리안은 메사추세츠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된게 맞아. 윌리암스에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네.”

“그 아이가 공부에 대단한 열정이 있었구나. 아직 대학을 갈 나이는 아닐텐데.”

“열정.. 뭐 그건 아닌것 같아. 무슨 이유가 있는것 같은데.. 션과 그레이스 선생님은 줄리안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공부를 한 이유까지는 모르는것 같았어.”


레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에이든의 말을 경청했다.

“계속 해봐, 에이든.”

“2년간 주인 남자에게 숨기고 온라인 고등학교를 다녔었다는군. 지난주말에 그레이스와 션이 운전해서 학교 근처에 있는 션 선생의 예전 은사 집에 데려다주고 왔더라고. 확실히 지금 여기 없어.”


꼬마.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2년간 열심히 살아왔구나.


“그 여자애 얘기는 뭐야?”

카이는 엠마가 숨기고 있는 얘기가 뭔지 궁금했다.

에이든은 복잡한 얼굴로 카이를 바라봤다.


”그 엠마라는 여자애. 보통내기가 아니던데? 주인 남자가 숨겨놓은 돈을 훔쳐냈어. 그리고는 줄리안에게 뒤집어 씌웠더군“


"돈.. 이라고? 도대체 얼마나? 그리고 줄리안에게 누명을 씌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어린애가 빼돌렸다고 하기에는 엄청난 액수인거 같아. 자신도 정확한 액수는 모르더라고. 집 뒤에 있는 공터에 대형 쓰레기 봉지로 몇 봉지나 뭍어두었더라고. 내가 그 장소까지 확인했지.”

엠마의 생각을 읽으면서 에이든은 어설프지만 주인 남자가 절대 생각지도 못할 곳에 숨겨놓은 돈의 위치까지 알아냈다.


에이든은 엠마가 타로를 통해 주인 남자의 돈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 줄리안이 몰래 사라져서 분노 했고 자신이 훔친 돈을 때마침 사라진 줄리안이 들고 도망갔다고 주인집 남자가 믿도록 스토리를 만들어놨다는 얘기를 했다.

“아, 그리고 이건 번외 이야기 인데. 그 엠마라는 여자애가 줄리안을 짝사랑 해왔던걸?”

에이든의 마지막 말에 레아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뭐?! 그런데도 돈을 훔치고 줄리안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역시, 인간들이란..


에이든의 얘기를 조용히 듣던 피터는 주인집 남자를 만나고 왔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든, 줄리안이 왜 온라인 고등학교에 대한 얘기를 주인집 남자에게 숨겼을까? 그리고 왜 몰래 떠났을까? 궁금하지 않아? 혹시 션의 마음에서 뭐 읽은거 없어?“

”예리하군, 피터. 실은 주인집 남자와 줄리안 사이에 뭔가 사정이 있다는 느낌이기는 한데 션이나 그레이스 선생도 그 내용은 모르고 있더라고. 줄리안에게 운전면허를 따게 했다는데.. 그 일과 관련해서 줄리안이 불안감을 느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어.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겠지.“

“…”

“…”

“…”

모두들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어 한참동안 조용해졌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할까?“

”레아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에이든. 주인 남자가 윌리암스에 줄리안을 찾아갈 수 있을까?“

”글쎄...?“


피터는 애매한 대답을 하는 에이든 답답하다는 듯 쳐다봤다.

“뭐가 그렇게 애매모호해? 그냥 간단히 생각하자. 우리가 줄리안을 계속 주시 해야 하는건가? 그 아이를 보호 해야 한다면 이유는 뭐지?“


피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줄리안을 계속 주시하고 도와줘야 한다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다.


카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꼬마. 어짜피 레아의 세상 안으로 발을 들이게 되어있어. 기억 안나? 레아가 개인 연락처를 줬었다며. 그런데 그걸 써먹지 않았어. 줄리안에게는 문이 아직 열려 있는거야. 레아가 먼저 열어둔 문이니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든 결국 걸어 들어오게 된다. 지금까지 다가오지 않았으니 이 꼬마는 그냥 평범한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 자신이 타이밍의 열쇠를 다룰 수 있을 수도 있어.”


“타이밍의 열쇠..라니?”

에이든은 평소 가볍게만 굴던 카이가 갑자기 본업 캐릭터 분위기를 내자 뭔가 중요한 얘기를 듣게 될 것 같아 바짝 다가갔다.


“평범한 인간 꼬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지. 신과 인간이 접점이 있었다면 그건 거의 모든 경우 신이 컨트롤 하는 타이밍에 맞춰지게 되어있어. 대부분이 4개월에서 6개월 안에 어떠한 접점이 다시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신에게 받은 영향력으로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걸로 결론이 지어져. 레아의 경우도 그랬어야 맞지. 그런데 줄리안은 지금까지 연결 고리가 생기지 않았다는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보통은 사라져 버리는 인연이 되는거지. 신기루처럼 없어지는거야. 서로의 기억 속에서. 그런데 이 꼬마는 오히려 우리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버렸네? 그리고 자신은 사라져 버렸어. 신들보다 한발자국 앞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이게 믿겨져?”


카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에이든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심어준 샤칼 차할르의 영향력인가?”

“그 아이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겨버렸다고?”

레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이든에게 되물었다.


“그 능력은 줄리안에게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증폭 시켜주는 역할밖에는 할 수 없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 아니야. 그나마도 줄리안에게 능력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을때만 발현하고 증폭하는게 가능해. 우리들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고는 있지만 줄리안 자신이 뭘 알아서 계획하며 하고 있는 일을 아닐꺼야.”

얘기를 듣던 피터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유야 어쨌든 상관 없어. 능력 증폭을 할줄 아는 아이가 우리보다 한발자국 먼저 움직이고 있다니. 그렇다는 말은.. 줄리안이 레아님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피터의 말에 카이가 고개를 젖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게 솔직한 내 심정이야. 사실 기분이 좀 그래. 이렇게 인간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느낌은 처음이라서.”


레아가 위험해 질 수도 있다는 말에 피터는 기분이 점점 가라 앉았다. 안그래도 몸이 약한 레아에게 위험이라도 닥친다면 어떻게 보호를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피터, 너무 걱정은 말아. 나는 어디까지나 확률에 대해 말을 한거니까. 사람은 악할 수도 있고 착할 수도 있잖아? 만일 줄리안이 선한 인간 이라면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레아의 세계로 들어 올꺼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레아에게 절대로 해롭지 않아. 반대로 줄리안이 악한 인간 이라면 레아에게 해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을 할꺼야. 그것도 가장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서.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우리보다 앞에서 움직이는 줄리안 입장에서 완벽한 타이밍 이기 때문에 레아가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은…아마도 없을꺼야.”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줄리안 그 꼬마가 레아와 특별한 접점이 생긴다면 그건 우리들의 세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얘기겠군.”

에이든의 조용히 읍조리는 얘기를 듣던 레아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일이 이렇게 될 지 몰랐다. 2년반 전 디아나를 죽게만든 타락 시간 여행자를 찾아 랭캐스터에 처음 온 그 밤, 우연히 만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던 상처 투성이의 소년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희망 한자락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디아나를 이모 라고 부르는 아이라는게 레아의 마음을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죽은 디아나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 했을때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줄리안 이었다.

죽지 말라고 말 해준것 뿐이었는데. 혹시 어려워지면 물질적이던 인맥으로던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개인 번호를 주고 온 것 뿐인데.


줄리안이 지난 2년간 어려웠을때 레아를 찾았다면 금전으로든 뭐로든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거기서 끝이 날 인연 이었지 않을까? 줄리안은 도대체 어떤 아이인걸까? 신보다 한 발 앞서서 타이밍을 주도하는 인간이라니..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그 꼬마가 문제가 아니라 레아를 보호해야하는게 더 중요해. 나에게 생각이 있어.”

카이의 말에 피터는 눈을 반짝였다.

“그래?”


“어짜피 결국엔 꼬마에게 주도권이 있는 타이밍으로 레아 앞에 나타난다는거 아냐?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그 타이밍에 주도권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꼬마가 레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이 되도록 만들수는 있잖아?”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붙힐까? 아니면 윌리엄스 대학에 또 기부금을 보내?”

방법이 있다는 카이의 말에 에이든도 말을 덧붙혔다.


“아니. 그런 방법이 아냐. 줄리안에게 악한 영향을 주는 인물들의 발을 묶어 놓으면 되지.”

“예를 들자면?”

“그 주인집 남자와 엠마가 줄리안을 찾아낼 수 없도록 그 집 주위에 결계를 칠꺼다.“

“결계?”

“응. 망각의 결계…내가 너희들이랑 놀고 있어서 그렇지. 알고보면 시간의 수호자님 이란걸 잊지들 마시게.”

망각의 결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카이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에게 맡겨두라고 다짐을 했다.


"또 한가지의 방법은 도깨비를 줄리안 곁으로 보내는거야."

"도깨비를?"

"그 녀석, 줄리안 이라면 자신이 소멸해 버릴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줄리안 곁에서 도움이 될꺼야."

피터는 도깨비를 줄리안 곁으로 보내 연락책으로 사용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샤칼 찰라흐의 능력은 증폭력이 무한대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줄리안이 레아님에게 해가 되는 인물로 성장하게 할 수는 없어.'

레아의 안전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피터의 마음이 무거웠지만 디아나가 아꼈던 아이였던 만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디아나의 안목은 틀림 없으니까/


그날 밤. 레아는 피곤한 몸을 욕조에서 풀며 오늘 하루에 있던 다이나믹한 일들을 곱씹어 보았다.

언젠가는 자신이 그 소년 때문에 위험에 처할 수가 있다니..

훗.. 차라리 잘 됐다. 꼬마. 기왕지사 나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인물이 될꺼면 아주 강해지렴. 그래서 뫼비우스의 띠같은 이 지긋지긋한 세상에서의 삶을 단번에 끝을 내주렴.


카이의 계획은 일리가 있었다.

엠마와 주인집 남자의 일상에 망각의 결계를 놓는다면 엠마와 주인집 남자는 줄리안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망각의 결계는 완벽하지는 않다.

운명이 외부로부터 그들에게 날아들어 온다면, 망각의 결계는 깨진다.

줄리안을 떠올릴만한 정보 같은것이 외부에서부터 그 집에 전달 되지 않으면 그들은 영영 줄리안의 존재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에이든이 읽은 션의 기억에 의하면 줄리안은 완벽하게 사라진것 같다.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운명 같은건 있을리가 없다.

‘꼬마.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었구나.’


====

작가공지:

줄리안이 메사추세츠에 있는 윌림암스 대학으로 떠나면서 1부를 마칩니다. 한달간 휴재를 하고 2부는 윌리암스 대학에서 생활하는 줄리안의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샤칼 찰라흐의 능력이 발현된 줄리안은 윌리엄스에서 투자의 귀재로 불리며 활약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몇몇의 인연들이 앞으로 줄리안의 삶에 중요한 (선연, 악연의) 인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줄리안의 성장기를 응원 해주시고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저는 3월 말에 새로워진 줄리안과 함께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리소 드림




월, 목 연재
이전 19화뒷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