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다리떡은 80세가 넘으신 마을 어르신입니다. 이분이 겪으셨던 6.25 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우리나라에 6.25 전쟁이 있었다. 그때 내 나이는 9살이었다. 어린 기억으로는 그때의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했음을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된다. 우리 형제는 오 남매로, 오빠, 언니, 동생이 둘이 있었다. 전남 광주에서 나와 동생 둘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학교를 다니던 오빠언니는 전쟁이 날 무렵, 전남 장성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에 가있었다. 왜 거기에 갔는지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잘 알 수가 없다.
30대 초반이었던 아버지가 전쟁 중에 회사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막힌 일이 이어졌다. 엄마도 장성에 전쟁소식과 아버지의 사망을, 알리고 돌아오는 길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를 두고 부모님은 다 돌아가셔서, 집에 남은 아홉 살 먹은 나하고 다섯 살 먹은 남동생은 전쟁고아가 되었다.
어린 나와 동생은 너무 어려서 부모님의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한 없이 울고만 있었다. 행여나 오실까.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지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도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사시는 장성에도 전쟁의 공포는 휩 쌓였던 것 같다. 조금 조용해진 틈을 타서, 우리 오 남매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고창 고모 댁으로 피난을 갔다. 할아버지는 우리 오 남매를 향해 물으셨다.
“광주 집으로 다시 갈 테냐?”
“싫당께요! 거긴 너무 무섭당께요.”
오빠와 언니를 고모 집에 남겨두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소 한 마리를 끌고 장성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우리 군에 의해 산속에서 총살을 당했다. “나중에 들은 말 인디, 맥아더가 산속에서 나오는 사람은 다 죽이라고 했다 구만”... 이렇게 참혹한 전쟁은 행복했던 소중한 가족들을 앗아갔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부안군 보안면에는 독다리(하석교)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친척할아버지가 사셨다. 독다리 할아버지는 광주로 딸을 시집보냈고, 딸이 전쟁에 안전 한가 궁금해서 찾아봤다. 독다리 할아버지는 누구의 소개로 나를 찾아왔는지 사정은 모르지만, “나 따라 부안 가서 같이 살자”라고 했다. 아홉 살인 나와 다섯 살 된 동생은 독다리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얼마를 걸어서 왔을까. 다리가 너무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 “누나야 업어줘!”동생은 등 뒤에 와서 다리 아프다고 업어 달라고 했다. 나도 다리가 너무너무 아팠었는데 말이다.
남동생은 다른 마을로 가고, 나는 독다리 할아버지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산에 나무하러 다녔고,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22살까지 12년 동안을 살았다. 일은 힘들게 시켰지만, 마음은 따뜻한 분들이었다. 22살이 되던 해에시집을 가게 되었고 내 가정을 꾸리며 가족들과 80세가 넘도록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