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살이가 4년 차에 접어들던 무렵, 시카고에 사는 친구에게서 깻잎 모종을 받았다. 본잎이 2~4장 정도밖에 나지 않은 아주 키가 작은 아기 깻잎이었다. 나는 깻잎 모종을 하나씩 분리해 더 큰 화분에 옮겨 심고 해가 잘 드는 뒷마당 데크에 올려놨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흙과 화분이 바뀐 탓인지 깻잎은 점점 시들해져 갔고 이렇게 깻잎 농사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죽는 건 아닌가 싶었다. 비실비실하던 깻잎이 단단해지고 잎과 줄기가 쑥쑥 자라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후였다. 한 달간 죽어가는 깻잎을 보면서 그래도 살려보고자 물을 계속 주고 영양제를 뿌렸었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나의 아련한 눈빛을 제공했다. 그랬던 깻잎이 튼튼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니 마치 내 자식이 잘 자라는 것과 같은 행복함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을 때 바람에 흔들리는 깻잎만 봐도 괜스레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한국에서 살면서는 한 번도 내 손으로 채소를 길러 먹은 적이 없었다. 늘 아파트 생활을 해서였을까? 아니면 굳이 그런 고생을 왜 사서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였을까? 아마도 둘 다였지 싶다. 한 번 튼튼하진 깻잎은 아주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줄기가 내 손가락만큼 굵어지고, 이파리는 완전히 펼친 내 손만큼 자랐다. 그저 화분을 뒷마당 데크에 두고, 흙이 마를 때마다 물을 주고, 애정 어린 눈으로(하하) 지켜봤을 뿐인데 한 달 동안 수십 장의 깻잎을 수확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름 두 달 동안 집을 비운다는 사실이었다. 뜨거운 햇빛에 깻잎이 말라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지인에게 한 번씩 깻잎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고 집을 떠났다. 얼마 후, 우리가 깻잎을 맡긴 지인에게 사진 한 장이 왔다. 깻잎과 흙이 완전히 말라있는 사진. 모든 잎들이 아래로 축 늘어지고, 너무 건조해서 잎이 말려 올라가고, 어떤 잎은 썩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지인은 이미 죽은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물을 주고 왔다고 했다. 그렇게 두 달 뒤, 우리는 다시 집에 돌아왔다. 뒷마당에 다 죽어 있을 깻잎을 상상했지만 웬걸? 전보다 더 두꺼워진 줄기와 길쭉해진 키, 무성한 잎들이 나를 반겨주는 것이 아닌가? 2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들러 집을 관리해 주고 깻잎 화분에 물을 준 지인 덕이었다.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 많았던 우리 집 깻잎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를 키우는 일, 사람을 키우는 일도 내가 깻잎을 키우는 일과 꽤 일맥상통하게 느껴진다. 어린 깻잎을 어떤 방법으로 잘 키워야 하는지 모를 때 물을 주고, 햇볕을 쬐주고, 영양제를 뿌렸던 것처럼 내가 엄마로서 완벽하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관심과 애정을 주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기다리면 어느새 아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쑥쑥 자라 있다. 다 죽어가는 깻잎을 보면서도 혹시 몰라 물을 준 내 지인처럼, 희망이 없어 보이는 아이에게 믿음을 주고 사랑을 준다면 어쩌면 이전보다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진 멋진 사람으로 자랄지도 모른다. 나의 통제 밖인 햇빛과 비, 바람 등의 자연이 내가 주지 못하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듯이 아이들이 집 밖에서 겪는 성공, 실패, 넘어짐, 관심, 눈치, 상처, 성취 등 일련의 경험들이 아이들을 더 튼튼한 사람으로 자라게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연을 보는 일이 참 좋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의 삶과 꽤나 많은 부분 닮아 있기 때문에. 나에게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때문에. 하나하나 뜯어보면 참 아름답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