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한 몸부림
'뭐라도 해야겠다.'의 첫 번째 몸부림
어디서부터인지도 모를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살아가는 일'이 엉망이 되어 오고 있었다고 생각될 때,
엉망이 엉망이 되고 그 엉망이 더 엉망이 되고 다시 또 그 엉망이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그 엉망과 진창을 해결하기 위해 딱히 뭔갈 해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숨이 가빠져서 숨을 가쁘게 쉬었고, 어깨가 무거워져서 무거워했고, 그게 다다. 이런 변명 저런 핑계, 어떻게 하면 더 기깔나게 갖다가 붙이고 숨어들까 최선을 다해서 궁리했을 뿐, 가빠진 숨을 다시 고르기 위한 무언가, 어깨에 올라앉은 무거운 것들을 내리거나 내 어깨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해결책 같은 건 생각하고 시도하지 않았다.
스미듯 젖어들어 엉망과 진창에 꼭 맞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삶에는 분명 메세지가 있다. 듣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삶이 나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 내가 꼭 들어 주었으면 하는 이야기. 나의 깊은 내면에서는 언제나 지금보다 더 성장한 나를 갈망하고 있기에 나는 그 이야기가 늘 고프다. 그런데 나는 자주 까먹는다. 늘 내가 요청한 일임을.
어떤 난관에든 봉착하면 내가 여길 피해서 도망쳐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부터 열까지 치밀하게 준비한 다음 일순간만 후련하고 뒤는 몹시 구리고 찝찝한 나의 전통인 빤쓰런을 여기서 다시 시전하는 대신에, 나는 여태 두어 본 적 없는 새로운 수를 하나 둬 볼까 싶었다.
이미 한참 진부해진 패는 옆으로 잠시들 치워 두고, 내가 뭘 놓쳐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분명 새로운 힌트가 있는데 난 놓치고 있다.」
수학 문제를 깊은 궁리 끝에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문제이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삶에도 같은 맥락을 적용하는 편이다.
「이러한 선택이라면, 반복만 해서는 삶에서 크게 개선되는 것이 없겠는걸.」
그러면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더 나은 다음 순간, 과거와 같지 않은 다음 순간을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해 보는 그런 순이다.
최근에 옮기게 된 직장에서 겪게 된 이런저런 일들로 '극도'라고 부를 수도 있을 만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꿈자리도 함께 사나워지고, 정서적 불안 증세가 악화되어 가던 중에, 한참 잊고 살던 우울 장애까지 도지려던 판국이었고, 나는 다시 '나간다'란 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업무적인 부분 때문은 아니지만, 수시로 마주치는 사람과 나 사이의 문제이기에 '저 빌런만 안 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은 하게 되므로.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저 빌런만 내 눈 앞에서 없애고, 내가 그를 이렇게 거의 매일 보지 않아도 되기만 한다면 정말로 마음이 놓이고 참 많은 것이 편안해지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고 뭐 그럴까? 절대 그렇지 않다. 삶은 생각보다 더 엄격한 선생님이시다. 저 빌런을 지금 당장은 안 보게 된다고 해도, 언젠가 또 다른 빌런이 반드시 우리 삶에 또 들어올 것이다.
의미가 딱히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에서도 굳이 의미를 찾다 보면 꽤 재밌는 일이 자주 생기는데, 가령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이에게는 딱히 의미를 찾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그 속에 숨겨진 작은 힌트들을 찾아내는 영원한 보물찾기 같은 게임이다.
때로는 삶이라는 지도를 곡해하여 한참을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나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가만, 여기서 길을 잘못 들었네. 조금 돌아서 가겠구만. 그런데 꼭 이렇게 돌아서 가는 길목에는 찬란한 보석들이 구석구석 뿌려져 있다. 사실 이쯤 되면 이게 돌아서 가는 우회로가 아니라, 어쩌면 마땅히 가기로 되어 있던 길이라 불러야 타당할 만큼 적절하고 멋드러진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스트레스'는 나 혹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보석들을 잘 보지 못하도록 그늘을 드리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눈을 질끈 감고 아픈 머리를 부여잡게 만들며 꽤 많은 것이 귀찮아지도록 한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지나쳐 버리기엔 너무 아름다운 삶의 순간순간들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실존하는 느낌을 갉아먹어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처럼 들리게 만드는, 환영을 유발하는 독버섯 같은 역할이 대표적이다.
잠시 호랑이 굴에서 우연찮게 정신을 차리게 된 나는 가만히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빌런은 나라는 이야기 속에서 나타났다가 때 되면 썩 꺼질 존재인데, 막강한 빌런이 하나 혹은 여럿 등장했다고 이야기 전체를 빌런이 주인공인 것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잠시 챕터를 장악하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수다. 빌런의 활약이 신랄할수록 이야기는―슬프게도―더욱 맛깔나진다.
이제 다음 이야기를 생각할 차례다. 이 챕터, 저 빌런의 눈부신 활약 뒤에 올 이야기를.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은 바로 이 장, 빌런 제국의 한가운데이지만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 지금도 나는 다음 챕터로 걷고 있다. 그러니 참을 수 없는 빌런의 만행들이 눈에 읽힌다고 해도, 책을 덮어버리고 이야기를 멈추지 말 것.
다음에 쓸 이야기들을 더욱 빛내 주는 빌런에게도 모종의 감사를 담아서 더욱 열심히 다음 이야기를 구상할 것. 그리하여 다음 챕터에 서서 뒤로 돌아봤을 때, 삶이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던졌는지 또 한번 읽어볼 것.
그렇게 단단해져갈 것.
이야기를 계속할 것.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