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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공포증, 그리고 고도에 대한 착각

내가 정말 높이 있는 걸까?

by 이원소 Feb 26. 2025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고소공포증은 추락하고 싶은 욕망과 닿아있다. 나를 추락시키려는 힘에 대한 공포, 그것이 나의 고소공포증을 심화한다.


강박적으로 내가 바닥으로 떨어질, 사회에서 내쳐질,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는 경우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끝에 내가 쥐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비관을 더한다.


지금,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은은한 등 아래에서, 난로를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글을 쓴다.


보일러가 안 되는 곳에서, 쨍한 백열등 또는 컴컴한 공간에서,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추위에 덜덜 떨며, 그저 공상에 잠겨있을 나에 대하여 글을 쓴다.


그리고 다소 허황된 비극의 시간선들을 피하려 발버둥 칠수록 새로운 비극의 가능성들을 뱉어낸다. 빈 공간에서 혼자서 보이지 않는 칼날들을 피하려 몸 구석구석을 벽과 바닥에 부딪힌다.


갖고 싶었던 것들을 너무 쉽게 가졌다. 그만큼 잃는 것도 한순간이다. 신이 내게 선물을 주셨으니 그것을 거둘 때 원망하지 않으리라-이런 비슷한 성경 구절이 있던 것 같다. 내가 만일 우연의 주사위가 아닌 신을 믿었다면 지금보다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앞엔 끊임없이 운명의 주사위가 나뒹군다.


어지러운 고소공포증. 내가 이룬 모든 것들 위에서 그대로 추락해 버리리라는 공포. 이 공포를 야기하는 추락에 대한 욕망. 차라리 잃을 것이 없어지면 편해지리라는 안일한 생각.


하지만... 내가 그 정도로 높이 있는가. 여기서 떨어진다 한들 다시 툭툭 털고 올라설 수 있는 언덕 정도에 위치하는 건 아닐까. 이렇게 스스로 다독인다.


여전히 멀미 나는 고소공포증... 오늘도 이렇게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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