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높이 있는 걸까?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고소공포증은 추락하고 싶은 욕망과 닿아있다. 나를 추락시키려는 힘에 대한 공포, 그것이 나의 고소공포증을 심화한다.
강박적으로 내가 바닥으로 떨어질, 사회에서 내쳐질,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는 경우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끝에 내가 쥐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비관을 더한다.
지금,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은은한 등 아래에서, 난로를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글을 쓴다.
보일러가 안 되는 곳에서, 쨍한 백열등 또는 컴컴한 공간에서,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추위에 덜덜 떨며, 그저 공상에 잠겨있을 나에 대하여 글을 쓴다.
그리고 다소 허황된 비극의 시간선들을 피하려 발버둥 칠수록 새로운 비극의 가능성들을 뱉어낸다. 빈 공간에서 혼자서 보이지 않는 칼날들을 피하려 몸 구석구석을 벽과 바닥에 부딪힌다.
갖고 싶었던 것들을 너무 쉽게 가졌다. 그만큼 잃는 것도 한순간이다. 신이 내게 선물을 주셨으니 그것을 거둘 때 원망하지 않으리라-이런 비슷한 성경 구절이 있던 것 같다. 내가 만일 우연의 주사위가 아닌 신을 믿었다면 지금보다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앞엔 끊임없이 운명의 주사위가 나뒹군다.
어지러운 고소공포증. 내가 이룬 모든 것들 위에서 그대로 추락해 버리리라는 공포. 이 공포를 야기하는 추락에 대한 욕망. 차라리 잃을 것이 없어지면 편해지리라는 안일한 생각.
하지만... 내가 그 정도로 높이 있는가. 여기서 떨어진다 한들 다시 툭툭 털고 올라설 수 있는 언덕 정도에 위치하는 건 아닐까. 이렇게 스스로 다독인다.
여전히 멀미 나는 고소공포증... 오늘도 이렇게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