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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가람 Apr 26. 2023

#2. 일상에서 도망친 지 4시간만에 일이었다.

가평, 호명산 숲속캠핑장에서의 하룻밤

 오후 2시, 빽빽한 잣나무 숲의 성근(誠勤)한 바람은 시원했고, 사방은 고요하다.

눈을 감으면, 내 귀에 들리는 건 새소리와 바람소리 뿐이다.

덕분에 꽤 오랜시간 일상에서 부유(浮遊)하던 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일상에서 분리된 지 약 4시간만이었다.


백패킹이 처음인 나는 아직 완전한 노지에서의 하룻밤이 가능할 지 알 수 없었다.

개수대와 세면장, 화장실이 전무한 노지를 감당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부담에

새로운 것에 대한 접근은 언제나처럼 조심스러워야 한다며, 서울 근교에 위치한 호명산 잣나무 숲속캠핑장을 예약했다.

호명산 잣나무 숲속캠핑장은 상천역에서 내려 호명호수 방향으로 약 30분 남짓 걸어올라가야 도착하는 곳으로 자동차의 진입이 차단된 곳이었지만,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데크와 개수대, 화장실과 샤워장까지 갖춘 그야말로 백패킹 입문자를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사실 꽤 많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지출을 통해 장비도 다 구입한 터라, 자칫 첫 백패킹에 대한 기억이 왜곡되어 저 장비를 다시 헐값에 팔수도 있다는 공포가 이곳을 예약하는 데 큰 동기가 되어주었다.


인터넷으로 찾은 이곳은 각종 매체를 통해 꽤나 홍보가 잘 되어 있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방문인증과 후기는 내심 이곳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갖게 했고, 실시간 예약창에서 예약을 망설이는 나의 손가락에 힘을 주게 하였다.


호명산 잣나무 숲속 캠핑장 입구 - 잣나무가 빽빽하다. (그리운 피톤치드)


이곳에 오기 전 내 상태는 답답한 일상이 모든 것을 잠식해가던 날이었고, 그 날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체증(滯症)이 도진 날이었다.



반복되는 업무로 성취감은 커녕 의욕마저 바닥을 쳤고, 중요하게 생각하던 프로젝트의 추진을 사이에 두고

직장상사와의 의견대립이 날로 첨예해지던 와중에, 주변 친구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형편없던 내 월급은 물가 상승분을 무시한 채 "동결" 되고 나니, 내 마음에 안정감을 주던 소속감은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으로 변질되었다.

퇴직에 대한 고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퇴직을 생각하면 명치가 꽉 막힌 듯 체증이 솟는다.

"지금 이 일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 라는 질문엔 언제나 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 탓이었을까? "내 스스로가 한심했다." 

요즘 MZ세대들은 본인이 원하는 직장으로의 이직도 자유롭고, 심지어 이직할 때 연봉도 높여 본인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잘도 옮겨다닌다는데, 나는 이 비루한 현실을 벗어던질 용기조차 없다는 사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용기보다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사실 앞에 체한 듯 답답하여, 무엇이든 뱉어내 가슴속을 게워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무거운 마음에 눌려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던 어느날, 캠핑장 예약에 성공한 나는 억지로라도 가방에 집(텐트)을 욱여넣고 집을 나섰다.

내 오늘 하루를 책임져 줄 집(텐트)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는 기분은 커다란 텐트를 차에 싣고 다니던 오토캠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고, 캠핑장 데크 위 텐트를 친 순간 알 수 없는 성취감마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았다.(지하철에서 내려 15Kg정도 되는 가방을 메고 불과 20분을 걸어 도착했을 뿐인데 과분한 성취감에 일상의 피로는 씻은 듯 사라졌다.)


캠핑장 데크 위 텐트피칭을 마치고 나니, 호명산 잣나무 숲속캠핑장의 마스코트 잣나무 트리에 불이 켜졌다.


일상의 체증으로 꽉 막힌 가슴에 용트림하듯 솟은 성취감으로 가슴 속 깊은 곳의 답답함이 내리는 느낌이었다.

불과 일상에서 도망친 지 4시간만에 느낀 홀가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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