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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준 Nov 27. 2024

국민 질문엔 침묵, 행정심판엔 열일하는 도로공사

440자에서 갑자기 논문급 반박문? 도로공사의 묘기

특별 시리즈 : 공공의 길, 불통의 도로: 도로공사와의 끝장 민원 대전

1편 도로공사의 440자 – 일하기 싫은자 이걸 따라하라

2편 질문 3, 답변 0 : 무료구간? 비밀이라 말 못 해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질문했습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돌아온 건 고작 440자짜리 "성의 없는 걸작"이었습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요구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경영상 비밀이라 안 되고, 관련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국민의 질문에 이렇게까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결국 행정심판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게 됐습니다.


행정심판은 공공기관의 부당한 처분에 대해 다시 한 번 판단을 요구할 수 있는 절차입니다.


저는 정보공개 비공개 처분을 취소하고, 요청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내용을 담아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도로공사의 답변서: 처음보는 정성 가득한 서류


며칠 뒤, 도로공사에서 제출한 답변서를 받아들었을 때, 잠시 멍했습니다.

왜냐고요?


지금까지 봐온 도로공사의 답변 중 가장 길었거든요. 국민신문고에서 받은 답변은 딱 440자.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답변은 핑계와 모호함으로 점철된 한 달짜리 작품.


그런데 이번 반박문은?

법 조항, 판례, 논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정성 가득한 서류였습니다.


이 능력으로 처음부터 제대로 답변했으면, 제가 굳이 행정심판까지 갔을까요?

국민의 질문에는 귀찮아서 피하더니, 행정심판이라는 법적 절차에서는 온갖 논리를 끌어모아 대응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도로공사의 논리: 핑계의 정석


도로공사의 답변서는 크게 네 가지 논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기존 답변을 조금 더 포장했을 뿐이었습니다.  


경영상 비밀 보호:
무료구간 정보는 고속도로 운영 체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비공개.


형평성 논란 방지:
정보가 공개되면 특정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비공개.


정보 부존재:
무료구간 선정 이유와 관련된 회의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률상 이익 없음:
저는 이 정보를 요구할 법적 권리가 없다는 주장.


보충서면: 조목조목 반박하다


저는 도로공사의 논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보충서면을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행정심판은 단순한 주장만으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법적 근거와 판례를 바탕으로 명확히 반박해야 합니다.


1. 경영상 비밀 주장에 반박

도로공사가 주장하는 경영상 비밀은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호에 따라 비공개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2008두1798)는 "경영상 비밀로 인정되려면, 공개 시 정당한 이익이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어야 하며, 이를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도로공사의 주장은 추상적이며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그들은 비공개 사유를 악용했다 볼 수 있습니다.


무료구간 정보가 도로공사의 정당한 이익을 어떻게 해친다는 겁니까?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로 정보를 경영상 비밀로 감추는 건, 국민에게 "돈만 내고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2. 형평성 논란 방지 주장에 반박

도로공사는 형평성 논란을 이유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형평성 문제는 정보공개법에서 정한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형평성 논란이 두렵다면, 정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기준을 명확히 밝히는 게 공공기관의 책임 아닙니까?


정보를 감춘다고 형평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 판례(2010두2747)는 "정보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공공기관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3. 정보 부존재 주장에 반박

도로공사는 "회의록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보공개법 제13조 제2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분리 가능한 정보는 분리하여 공개해야 하며,
전산 자료로 보관된 정보는 요청에 따라 산출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회의록이 없다면, 정책 결정을 위한 근거가 없다는 의미로 직무유기입니다.

기록이 있다면,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는 겁니다.


4. 법률상 이익 없음 주장에 반박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합니다.
대법원 판례(2010두18918)는 "정보공개청구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국민 누구나 공공기관의 정보를 요청할 법적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정보를 요청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은, 공공기관이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행정심판: 보충서면과 증거조사라는 무기


행정심판에서는 단순히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보충서면을 통해 추가적인 설명이나 논리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활용해 도로공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정보공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행정심판 과정에서는 증거조사를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를 위원회에서 직접 확인하거나, 해당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의 진위를 파악하는 절차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싸움


도로공사의 반박문은 그들이 국민을 얼마나 소홀히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법적 절차에서는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보충서면과 증거조사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하며, 공공기관의 책임을 묻는 싸움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행정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결과와,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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