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심판 과정에서 도로공사가 제출한 방대한 답변서를 받아들고, 저는 잠시 멍했습니다.
"도대체 이 정도 정성을 국민신문고 답변에 쏟았다면 내가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
답변서를 읽어 내려가며 느낀 건 한 가지였습니다. 그들의 글 솜씨는 나날이 발전한다는 것.
그러나, 논리의 발전이 아닌 핑계의 고도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들의 논리를 다시 하나하나 해체하며, 재반박의 방패와 창을 들기로 했습니다.
도로공사가 제출한 답변서는 다음 다섯 가지 논리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었습니다. 결국 같은 내용이지만 한번 더 말씀드리면
1. 경영상 비밀: 무료구간 정보는 경영·영업 비밀로, 공개 시 공사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
2. 정보 부존재: 요청한 회의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3. 형평성 논란 및 민원 증가: 정보가 공개되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이 폭주할 것이다.
4. 의사표명 요구: 무료구간 선정 이유는 정보공개 대상이 아닌, 의사표명 강요에 해당한다.
5. 국회증언감정법의 부적절성: 국회증언감정법은 본 사건에 적용될 수 없으므로 근거로 부적절하다.
이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같은 내용이라 계속 말하기도 민망하네요.
"우리는 공개 못 합니다. 그런데 이유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죠?"
도로공사는 무료구간 정보가 경영·영업 비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공개하면 공사의 이익이 크게 훼손된다고 했습니다.
"공익보다 경영 비밀이 우선이다"라는 태도가 대단히 뻔뻔한 논리로 다가왔죠.
하지만, 이 정보가 과연 비밀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무료구간 정보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로에 관한 기본 정보입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 사항으로, 경영상 비밀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대법원 판례(2008두1798)에 따르면, 경영상 비밀은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음이 사업적으로 유리한 정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무료구간 정보는 공공의 이익에 직결된 정보로, 사업적 이익과는 거리가 멉니다.
도로공사는 경영상 피해의 구체적인 근거 없이 "막연한 피해 우려"만을 강조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비밀이라 우기면 비밀이 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도로공사는 요청한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정책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건 심각한 직무유기 아닐까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주요 정책 및 사업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도로공사가 회의록 부존재를 주장하기 전에,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합니다. 대법원 판례(2010두18918)도 "공공기관이 정보를 보유·관리하고 있을 상당한 개연성을 청구자가 입증하면, 공공기관이 부존재를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회의록이 없다면 "우리 정책 결정은 감으로 했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있다면 그걸 공개하지 않는 건 의도적 은폐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도로공사는 무료구간 정보가 공개되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민원이 폭주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건 마치 "국민이 알면 우리에게 불리하니까 숨기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대법원 판례(2007두13761)는 명확히 말합니다. "정보 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형평성 문제나 민원 폭주는 정보공개법에서 비공개 사유로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도로공사가 정말 형평성을 걱정한다면 정보를 숨길 게 아니라 공개하고 명확히 설명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요?
"형평성 문제"라는 구실은, "공정하지 않게 운영해왔으니 드러나면 곤란하다"는 고백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민원 폭주에 대한 이야기는 더 가관입니다.
"일이 늘어날까 봐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논리를 이렇게 당당히 내세울 수 있다니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국민을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며, 일이 많아지는 게 걱정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 아닙니까?
이 대목에서 공무원 지인도 혀를 내둘렀습니다.
"저런 식으로 답변을 내놓는 담당자와 결재권자는 도대체 누굴까?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배짱이 부럽다"며 감탄 아닌 감탄을 하더군요.
공공기관답게 투명성을 지켜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투명성 대신 변명을 선택하는 능력이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며, 업무량 증가를 핑계로 투명성을 거부하는 태도.
문제의 핵심은 도로공사가 형평성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투명성을 걱정하는 데 있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결국, 숨기려는 이유가 더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도로공사는 제가 요청한 무료구간 선정 이유가 의사표명을 강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공공기관이 기록하고 공개해야 할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라는 요구일 뿐입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중요한 정책 결정은 반드시 문서화되어야 하며, 국민은 이에 접근할 권리가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2010두24784)에서도 "공공정책의 결정 과정에 관련된 정보는 국민의 참여와 감시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의사표명 강요"라는 도로공사의 주장은 투명성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합니다.
도로공사는 국회증언감정법이 본 사건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왜냐고요? 그 법을 먼저 언급한 건 도로공사 본인들이었으니까요.
저는 국회증언감정법을 통해 도로공사가 과거 국회에 자료를 제출한 사례를 들어, 해당 정보가 국가 기밀이 아님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법은 무관하다"고 하니, 도로공사의 논리가 스스로 모순에 빠졌음을 보여줬죠.
도로공사는 재반박 과정에서도 기존 논리를 반복하며, 비공개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저버리는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정보공개는 단순한 요청이 아닙니다. 이것은 투명한 행정을 요구하고, 공공기관이 책임을 다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공공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됩니다. 국민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그 결과와 의미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