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심판에서 배운 것,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2024년 11월 19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제가 제기한 정보공개 심판청구에 대해 재결을 내렸습니다. 결과는 부분 인용이었습니다. 일부는 각하, 일부는 기각, 그리고 일부는 피청구인(한국도로공사)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단으로 이어졌습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심판위원들은 대부분 변호사 자격을 가진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사안을 심도 있게 검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정심판은 행정부 내부 절차라는 한계를 가집니다. 이는 심판위가 행정기관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에서 일부 인용 판정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놀랍고, 아쉬움도 남습니다. 이번 재결 결과를 중심으로 행정심판의 한계와 개선점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번 재결에서 가장 큰 의미는 ‘지방자치단체 협의 사항 관련 회의록’에 대한 판단입니다.
도로공사는 해당 정보를 "불명확한 요청"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요청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특정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들며, 해당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요청된 정보는 충분히 구체적이며, 사회 일반인의 관점에서도 내용과 범위를 확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피청구인은 해당 문서를 보유·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처분이 위법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특히, 회의록은 민감한 정보가 많아 기각이나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협의 과정에는 각종 이해관계와 내부 정책 결정의 내용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심판위원회의 결정은 예상을 뒤엎고, 해당 요청이 정보공개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결정은 공공기관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회피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정보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재확인한 판결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제가 요청한 ‘무료구간 목록’ 및 ‘수도권-지방 비율 정보’에 대한 비공개 결정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심판위는 도로공사의 경영 및 영업 비밀을 보호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해당 정보가 공개될 경우, 무료구간과 유료구간 간의 형평성 논란 및 민원 증가로 인해 운영체계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도로공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부분이 의외였습니다. 무료구간 목록은 이미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보이고, 제가 요청한 것은 공식 자료의 확인에 가까운 내용이었습니다. 반면, 회의록은 훨씬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비공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와 달리 공식 자료로서의 확인이 더 큰 경영상 비밀로 간주되었고, 회의록은 오히려 공개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정보공개법의 본질적인 취지인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도로공사가 "정당한 이익"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로와 관련된 기본 정보가 비공개 대상이 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실상, 행정심판은 개인이 행정기관의 처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마지막 현실적 절차입니다.
행정심판의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으로 이어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는 개인에게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요구합니다. 변호사 선임비와 법정 절차를 감당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진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주로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행정심판은 행정부에서 판단하는 절차이고, 행정소송은 사법부의 결정이라는 점입니다.
행정심판은 행정부의 편향성을 극복하기 어렵지만, 행정소송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일반 시민이 선택하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는 심판위의 결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협의 사항 관련 회의록"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다시 요청할 계획입니다.
재청구 과정에서 도로공사가 문서의 존재 여부를 명확히 밝히고, 비공개 사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요청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정보공개가 거부된다면, 다시금 행정심판을 제기하거나 법적 절차를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선택지는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공익적인 문제로 제보하거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공론화해 정보공개법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판단은 전반적으로 법률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몇 가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무료구간 정보가 경영상 비밀이라는 논리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에 비해 다소 부족한 설득력을 가졌습니다.
무료구간 선정 이유를 단순 민원으로 간주한 부분도 행정기관의 투명성과 국민의 요구를 지나치게 축소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 협의 사항 관련 회의록"의 비공개 처분을 위법하다고 본 결정은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국민의 요청이 단순히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무시될 수 없음을 명확히 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정보공개의 투명성과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이번 심판 과정이 단순히 한 개인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국민이 공공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정보공개 청구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 특히 이번 과정에서 부족했던 점을 분석해 여러분이 이 제도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정보공개의 투명성과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이번 심판 과정이 단순히 한 개인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국민이 공공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