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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푸틴의 집? 러시아 권력의 심장, 크렘린

역대 황제, 스탈린, 푸틴까지… 그들이 사는 곳

by 타이준

※ 이 여행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방문한 기록입니다. 현재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러시아 여행에서 크렘린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모스크바 한복판, 모스크바강을 끼고 자리한 이곳.

러시아 제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그리고 지금의 러시아 연방까지.

오랜 세월, 이곳은 단 한 번도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크렘린이란 무엇인가?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요새’ 혹은 ‘성채’를 뜻합니다.


사실 러시아 각지에는 여러 크렘린이 존재합니다. 수즈달, 카잔, 노브고로드 등에도 각각의 ‘크렘린’이 있지만, 모스크바 크렘린만큼은 단독으로 “크렘린”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12세기 후반 모스크바 대공이 건설을 시작한 후, 수차례 증축과 개보수를 거쳐 현재의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특히 1918년, 수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지면서 이곳은 소련의 권력 중심이 되었고, 지금은 러시아 대통령의 공식 거처이자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명용사의 묘 — 전쟁의 기억을 담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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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에 입장하기 전, 먼저 찾은 곳은 무명용사의 묘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이름도 남기지 못한 병사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불타지 않는 영원의 불꽃이 이곳을 지킵니다.



특히 1시간마다 진행되는 근위병 교대식은 엄숙하고도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전쟁이 남긴 상흔과 희생을 되새기게 됩니다.



트로이츠카야 탑을 지나, 권력의 성채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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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검색대를 지나면, 15세기 건축된 트로이츠카야 탑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붉은 벽돌과 녹색 첨탑으로 장식된 탑문을 지나면, 비로소 진짜 크렘린 내부로 진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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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궁전 병기고와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거주 공간 근처에는 경호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고,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검은 독일제 세단을 타고 순찰을 도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이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의 현장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다가왔습니다.



황제의 대포와 황제의 종 — 과시의 미학


이동로를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청동 대포 하나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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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대포, 무게는 무려 40톤 이상. 16세기에 만들어진 장식용 대포로 실제 발사된 적은 없지만, 당시 러시아 황제의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형물입니다.


바로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 황제의 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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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는 무려 200톤. 종을 제작하던 도중 발생한 화재로 인해 물을 끼얹다 깨진 채로 남아 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둘 다 실용성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것’, 말 그대로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성당 광장 — 종교와 제정 러시아의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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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도착한 성당 광장


크렘린 내부의 핵심이자, 제정 러시아의 심장입니다.


15~17세기에 걸쳐 지어진 여러 러시아 정교회 성당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황제들의 즉위식, 결혼식,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이콘화로 가득하고, 제정 러시아 황제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러시아의 상징적 인물들—스탈린, 주코프, 유리 가가린—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곳이 단순한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러시아 국가 자체의 정신적 성지임을 말해줍니다.




과거와 현재, 크렘린은 지금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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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은 현재도 러시아 연방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중요한 국가 행사가 이곳에서 개최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 조 추첨식도 크렘린 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날씨는 꽤 추웠지만, 제설 인력과 장비들이 수시로 지나가며 광장과 이동 경로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걷는 내내 긴장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웅장한 역사와 상징성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기도 했습니다.


크렘린은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공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정치, 종교, 군사, 문화가 얽혀 있는 거대한 상징이자, 한 나라의 중심을 구성하는 실체 그 자체.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나라의 권력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고, 그 흐름이 어떻게 눈앞의 풍경으로 구체화되는지를 직접 체험했다는 느낌. 모스크바 여행의 백미. 크렘린은, 그렇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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