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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Nov 01. 2022

‘철’ 좀 들자!

둥글레의 근사한 양생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기는 한방 용어로는 상한(傷寒)이다. 즉 차가운 기운에 몸이 상했다는 뜻이다. 감기(感氣)는 원래 ‘기운 또는 기후에 몸이 감응한다’라는 뜻이다. 찬 기운뿐 아니라 다른 기운에 우리 몸이 감응하는 모두를 감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몸이 외부의 기운 또는 기후에 늘 감응하고 있고 그에 따라 병증이 될 수 있어서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중시한다. 이 기운을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 여섯 가지로 나누고, ‘육기(六氣)’라 부른다. 육기가 ‘사기(邪氣, 나쁜 기운)’로 작용하면 몸에 병증을 만든다.


  기후는 땅과 하늘의 기운이 함께 작동한 결과이다. 땅에서는 육기가 작동하고 하늘에서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운이 작동한다. 이를 아울러서 오운육기라고 부르는데 줄여서 ‘운기’이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계절의 운기(주운, 주기)는 변함이 없지만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그 이유는 해마다 손님처럼 찾아오는 운기(객운, 객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운기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기록하여 운기학이라는 학문으로 만들었다. 기상청에서 수많은 데이터로 날씨를 예측하는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옛사람들은 음양오행이라는 원리로 몸과 기후를 연결할 줄 알았다.


   작년 한 해 약국을 오픈하고 상담을 자세히 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어지럽고 이명이 있거나 메스껍고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붓거나 두통이 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양 의학에서는 각각 다른 증상이지만 한의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몸의 진액이 뭉쳐서 순환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를 ‘담음’이라고 한다. 운기로 볼 때 신축년은 수가 잘 빠져나가지 못하고 습이 몸에 쌓여서 담음과 소화기 질환이 더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이뇨 작용으로 몸에 있는 나쁜 물을 빼주는 복령이나 택사 등이 들어간 제제를 선택했고 드라마틱하게 개선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돌이켜보니 코로나 팬데믹도 처음 발생했던 2020년, 경자년의 운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 해는 금과 화의 운기가 작동하는 해로 금 기운에 해당하는 장부인 폐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해였다. 


  그해 운기가 임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는 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사람들의 주거 장소나 생활 습관과 체질이 다르고 또 감정도 병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객운, 객기가 절대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주가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계절의 운기이다. 해서 『동의보감』을 비롯한 과거 의학서들은 사시(四時,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게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한 양생법으로 꼽고 있다. 물론 운기학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치료하는 사람들에게 참고 사항이다. 객운과 객기에 이렇게까지 휘둘리는 것은 왜일까? 아니면 코로나 팬데믹도, 우리 약국에 찾아온 사람들도 다 우연이었을까? 나는 계절의 차서를 꼼꼼히 밟지 않고 사는 우리의 일상이 부실해서 그해 운기에 휘둘렸다고 생각한다.


  『동의보감』의 <내경편>엔 계절의 변화에 맞춰서 일상을 꾸리는 법이 나와 있다. 봄에는 만물이 생겨나는 것을 돕듯 남에게 베풀어야 하고, 여름에는 햇볕을 싫증 내지 말아야 하며, 가을에는 열매가 맺히듯 마음도 거두어들여야 하고, 겨울엔 따듯한 곳에 거처하여 멀리 여행하지 말라고 한다. 처음 『동의보감』에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안 와닿았고 그저 옛날 말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게 요즘 우리 삶엔 거의 계절이 없다. 계절과 무관하게 과일을 먹고 집안에서는 겨울에도 반팔을 입는다. 우리의 일상은 정말로 철이 없다. 


  이런 철없는 일상은 에너지를 과도하게 필요로 한다. 세상도 몸도 에너지가 고갈된다. 기후 위기와 질병은 이런 철없는 일상의 결과이다. 계절에 맞게 사는 건 먹고 입는 것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나의 외부에 있는 존재들과 소통하는 것과 다름없다. 소통의 결과로 마음을 포함해 일상을 조절하여 살아간다.


 『동의보감』은 거기에 우리의 건강이 달려있다고 말한다. 계절을 알아차리고 외부와 소통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때 우리 조상들은 ‘철들었다’라는 표현을 했다. 올해는 『동의보감』의 양생법을 곱씹으며 계절의 리듬에 맞춰서 한 번 살아 보려고 한다. 그럼 나도 ‘철’ 좀 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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