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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Nov 23. 2022

다한증의 고단한 하루

모로의 몸의 일기 _ 4

 나는 다한증이다. 다한증이란 신체의 특정 부위에 땀이 과도하게 나는 것을 말한다. 나의 경우는 손과 발에 엄청나게 많은 땀이 난다. 어느 정도냐면, 자꾸 신발에서 미끄러지기 때문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지 못할 정도다. 빨리 걷다보면 발이 신발에서 떨어지면서 뒷꿈치가 땅에 닿기 때문에, 발이 엉망진창이 된다.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 더 심해지는데,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손에서 팔로 물이 주루룩 흘러 내리기도 한다. 아주 그냥 물 부족 국가에 적합한 인재라고 할 수 있지. 수분자가생성기. 


 그래서 학창 시절 시험을 칠 때, OMR 카드에 컴퓨터 펜으로 마킹을 해야하는데 그게 번져 버려서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답안지를 작성할 때 손수건을 손 아래 깔고 있었고, 시험지는 언제나 쭈글쭈글 했었다. 다한증에 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장 황당한 썰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18살이 되어서 주민등록증을 처음 발급 받으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나름 신경 쓴 증명사진을 들고 쫄래쫄래 동사무소로 갔더랬다.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에, 18세 되던 시점도 여름이었고, 그래서 매우 더웠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내고, 종이에 정보를 작성하고... 뭐 그런 것 까지는 아주 순조로웠다. 하지만 문제는... 지문을 등록하는 일이었다. 


 처음 주민등록을 낼 때 열 손가락 지문을 종이에 남기는데, 나는 다한증으로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지문을 찍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인주에 물이 흥건해져서 제대로된 지문이 나오지 않자, 동사무소 직원이 말했다. "저~기 선풍기 앞에 가서 손 말리고 오세요." 아놔! 사춘기 여고생에게 너무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혼자 선풍기 앞에 서서 두 손을 개구리처럼 펼치고 땀을 말렸다. 생각하면 더 나기 때문에 최대한 땀에 대한 생각을 멈추려고 했지만... 멈추려고 할 수록 땀은 더 생각나고, 생각하면 할 수록 땀은 더 나고... 땀이 더 나니까 당황해서 땀이 더 나고... 으악! 


 그래서 손가락 하나 찍고 선풍기에 말리고, 손가락 하나 찍고 선풍기에 말리고를 반복하면서 아주 정성껏 지문 등록을 마쳤다는 일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찍어서 등록했건만, 여전히 지문 인식은 잘 안돼서 동사무소 앞에 있는 무인민원기 같은 걸 사용 못한다. 아직 아이폰 8이라 핸드폰이 지문 인식 방식인데, 두 번에 한 번 꼴로 실패해서 늘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간다. 내 폰인데 왜 믿지를 못하니? 이 놈의 손꾸락!!!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지만, 아직까지 나의 과도한 땀에 대해서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땀이 난다는 건 몸의 열을 발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건데, 나는 몸이 차디 차고 냉한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뭔가 순환의 문제란 말인가. 순환시키려고 운동을 하면 땀이 더 나는데? 정말 아이러니한 녀석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자꾸 땀 생각을 하니까 손바닥이 촉촉해진다. 나는 다한증으로 노트북 키보드가 침수당한 적도 있다. 분명히 AS 기사분이 키보드에 물을 쏟았냐고 물어보았다. 이것은 분명 침수의 흔적이라고... 나는 조용히 손바닥을 들어 보여줄 수밖에. 


 손에 땀이 많아서 다른 사람과 손잡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다행히(?) 아들도 다한증이라 둘이 축축한 손을 붙잡고 잘 다닌다. 아! 이것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가혹한 인생은 이번에도 내 편이 아니지 모. 

 아들아, 엄마가 미안해. 너는 평생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손 발의 땀과 함께 할 거란다. 너는 디지털 시대에 사니까 더 고생이 많겠구나. 자꾸 아이패드가 터치가 안된다고 화내지 마렴. 그리고 여름엔 꼭 뒤에 찍찍이가 있는 샌들을 사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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