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우리에게 왜 연락했을까?
공간기록은
‘공간’과 ‘사람’ 사이의 의미를 찾습니다.
_ monologue
'공간기록'에 찾아온 주변 건축주님의 사연과
고민을 우리의 시선에서 담담히 기록합니다.
우리에게 왜 연락했을까?
한파가 몰아치던 1월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연락 한통이 왔다. 자신을 건축주라 소개한 한 분이었다. 이미 다른 업체와 함께 공사를 시작했음에도 우리에게 손을 내민 이유, 그 궁금증에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이야기는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계약서 한 장 없이, 견적도 없이 시작된 공사. 그 불안정한 시작 위에 놓인 거액의 돈. 견적도 안 나왔는데 막무가내로 공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심지어 건축사 사무소는 어딘지, 건축사는 누군지 만나본적도 없다고 하셨다. 이제 막 기초 터파기 공정에 들어갔는데 5,000만 원을 달라고 해서 미심쩍었지만, 괜한 말을 했다가 관계가 틀어져서 엉망으로 공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되는 마음에 금액을 입금하셨다고 했다. 직감적으로 상담을 하며 뭔가 잘못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사 일정도 마음대로, ‘지금 이 ** 공정에 n명의 인원이 어떤 공사를 진행하므로 돈이 필요합니다’가 아니라 그냥 냅다 5,000만 원을 달라니.
건축주에게 돌아온 것은 불안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시공업자는 건축주에게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의 보험금을 요구하며, 모든 책임을 건축주에게 전가하는 직영공사를 제안했다. 이른바 '무늬만 직영공사'. 이로 인해 건축주는 실제 공사를 책임져야 할 업자가 부담해야 할 다양한 사건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자는 건축사 및 협력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을 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였다. 모든 상황이 건축주에게 안 좋은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생에 한 번뿐일 집 짓기의 꿈.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금액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2,000~2,500만 원이면 충분할 기초 공사에 5,000만 원이라니? 요구하는 것은 분명 과도한 요구였다. 그것도 견적서 한 장 없이. 대한민국의 건축업계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은 건축업계의 정보 불균형과 무조건적인 신뢰를 강요하는 악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악독하고 영악한 수법이다. 아마 이렇게 당한 이들도 적잖이 있을 것 같았다. 이러니 집을 지으면 10년이 늙는다는 말이 나오지.
이 글을 보는 많은 분이 이와 비슷한 수법으로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명확한 기성 지급 프로세스와 하자보증이행보험, 지연배상금을 특약으로만 넣어둬도 공사하는 과정에 스트레스받을 일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하지 않아도 될(공사와 관련된) 고민을 최소화하고 더 디테일하게 콘센트의 높이와 위치, 손잡이의 촉감, 조명의 밝기, 창문의 높이 등 어떻게 하면 더 쾌적하고 안락하고 내 삶에 꼭 맞는, 내 습관과 우리 가족의 형태와 알맞은 집을 지을지 고민해야 한다.
건축주님은 더 나은 집, 가족에게 꼭 맞는 집을 꿈꾸며 공간기록과의 협업을 희망했다. ‘기존 업체 디자인도 마음에 안 들고, 믿음도 가지 않아요. 저 공간기록이랑 공사하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너무 감사한 말이지만 이미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이 상황에서 다시 공간기록에서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앞서 인허가를 받았던 건축사사무소의 설계포기각서와 과지급된 공사비를 돌려받아야 했다. 기존 시공업자가 건축사사무소에게 설계비, 인허가비 등 대금 지급을 하지 않은 상태라 기존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포기각서를 써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다행히 건축주님의 가족 중 변호사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행정적, 법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실무에 착수했다. 변호사님과 꾸준히 소통하며 기존 건축사사무소와 업체에서는 설계포기각서와 과지급된 공사비를 큰 탈이 없이 돌려받았다.
용기 내 어려운 연락을 먼저 해주신 건축주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공간기록을 믿고 찾아주신 만큼 건축주님 가족이 평생 살아갈 집을 정성스레 잘 설계하고 꼼꼼하게 지을 예정이다. 이 글을 보는 분도 이 사례를 통해 설계 혹은 시공계약을 할 때 정말 중요한 몇 가지를 꼭 기억하면 하는 바람으로 몇 가지를 적으며 본다.
첫 번째
선급금이행보증보험, 하자보증보험 등 건축주의 마지막 안전벨트와 같은 보증보험을 반드시 가입하고, 이를 거부하는 업체에는 더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을 필요가 없다.
두 번째
재정 상태, 세금 납부내역, 종합건설면허, 건축사 자격증, 진행 중인 현장 등 기본적인 정보와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요청해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업체는 반드시 뭔가 꿍꿍이가 있다.
세 번째
건축주에게 책임소재를 돌리는 직영공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시공업체와 계약을 한다면 각종 보험은 고용 업체가 지급해야 한다. 건축주에게 요구하는 업체가 있다면 더 얘기도 말고 다른 업체를 찾아야 한다.
네 번째
잔금 지급을 최대한 여러 번에 나눠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한 세세하게 나눌수록 시공사는 번거롭고 건축주는 안전하다. 다섯 번째는 지연배상금, 설계(디자인) 변경 없는 추가공사비 요청 금지 등 반드시 계약서에 특약으로 넣어야 한다.
공간기록은
건강한 건축문화를 만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