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뜻밖의 이별을 겪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느 순간, 다가올 이별을 예상합니다. 최후까지 손에 쥐고있던 조각을 놓지 않으면 된다는 어리석은 착각은 금새 접습니다. 어느 여름, 집앞 벤치에 앉아 빗물에 쓸려가는 수국잎을 보며 어린 시절 시골 외가의 냇가에서 흘려보낸 종이배를 생각했습니다. 손을 떠나면 잠깐 쫓다 결국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종이배. 설레며 종이배를 만들던 순간에도 결국 헤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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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会者定離" 저는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반드시 따른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끔찍한 악연은 생각하기도 싫으니 사랑했던 만남만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꼭 연인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모정(母情), 부정(父情) 등도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일테고, 꽃 한송이 나무 한 그루를 경애하는 마음 역시 세상과 자연을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저는 여름철에 피는 수국을 좋아하는데 매년 여름,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금새 이별입니다. 수국이 지면 쓸쓸한 계절을 맞이해야하기에 이별이 더욱 아쉽다고, 언젠가 생각했습니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어느 늦여름에 품이 한껏 작아진 꽃을 보며 심한 무력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모든일이 이상하게 안풀리던 시기였고 세상에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절망으로 보내던 나날이었습니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고 이별은 제가 막을 수 있는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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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 여름은 연인과 이별하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날씨는 무덥고 세상은 반짝이며 생기로 가득찬 계절이 너무 길다고 느꼈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 또는 열병보다는 무력감과 자기연민에 빠진 한심한 모습이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낮에는 구역질이 올라올때까지 담배를 피웠고 해가지면 술을마셨습니다. 술을마시다 취하면 산책을 나갔습니다. 산책을 매우 오랜시간 다녀왔는데 한참 걷다가 또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강변을 걸으며 여름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해가 지면 술이라도 실컷 퍼마실텐데 여름 밤은 어찌나 짧던지 취기로 고통을 망각할 충분한 시간조차 배려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한국 소주는 매우 비싸기때문에 주로 맥주와 와인을 마셨습니다. 수중에 돈이 조금 있을 땐 기린 이치방시보리를 마셨는데 돈이 궁하면 킹무기라는 발포맥주와 한 병에 300엔짜리 와인을 마셨습니다. 와인과 맥주가 섞이면 최악의 숙취가 올라오는데 차라리 숙취가 속편하다고 느낄만큼 당시의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별의 테마는 이별로 인한 슬픔이나 괴로움 보다는 축처진 무력함을 표현한 곡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법한 남들보다 특별하고 유독 애틋했던 사랑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다가올 이별 앞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 마음은 죽음 앞에서도 같지 않을까, 하는 쓸모없는 생각도 합니다.
모쪼록 한 번 들어봐주세요
감사합니다.
℗ 2023 RIAK
Released on: 2023-01-06
Credit
Piano by 김강태
Violin by 김지영
Cello by 박주영
All songs composed and arranged by 정창원
Recording Engineer 송근영 at [yu:l]HAUS
Mixing & Mastering Engineer 장성학 at [yu:l]HAUS
Album Art by Hong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