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들을 수 있어?
'어플에서 만난 사람이 데려간 가게에서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심해라. 어린 학생들은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 함께 아름다운 가부키초를 만들자.'
가부키초에 발을 들이면, 스피커에서 흐르는 안내 방송이다. 가부키초는 일본의 다양한 매체에서 배경이 될 정도로 유명하다. 특히, '용과 같이'라고 하는 야쿠자의 게임 배경이 이 곳 가부키초다.
해당 게임을 모르더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가부키초라는 거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부키초는 욕망이 아른거리는 어른의 거리이자 야쿠자들의 거리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외국인으로서는 꺼려지는 거리로 유명하다. 가부키초는 낮과 밤이 확연히 다른 동네이다. 일본의 라스베이거스다. 우리나라로 비교하기엔 글쎄 타락한 강남의 뒷골목이라고 해야 할까?
가부키초는 신주쿠에 있다. 도쿄 사람들에게 가부키초가 있는 신주쿠는 모든 것이 있는 장소로 불린다. 흔히, 신주쿠에 없다면 도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있다 보니 당연하게도 신주쿠는 구석구석을 이어주는 좁은 길도 좁은 길이 모여서 만드는 대로도 복잡하다.
가부키초로 향하는 길은 크게 위험하지 않다. 수많은 음식점과 쇼핑몰이 있고 관광객과 일본인들이 넘쳐나는 평범한 거리이다. 어디까지나 큰길에 한해서다.
인파를 따라 걷다 보면 토요코 키즈들이 모여있다는 광장과 토호 시네마가 보이고 토요코 키즈들을 몰아낸 가부키초 타워가 눈에 보인다. 가부키초 타워는 술집이나 극장 등이 있는 신규 빌딩으로 수많은 일반인과 관광객들을 토호 시네마 앞의 광장으로 모이게 만들었고 토요코 키즈들을 몰아냈다. 그렇다 할지라도 여전히 구석에는 홈리스나 토요코 키즈들이 적은 수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토요코 키즈는 가정 폭력이나 부모의 관심에서 벗어나 가출한 10대 아이들로 토호시네마 앞에 모여 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고등학생 이하의 10대 아이들이다보니 아르바이트도 불가능하여 아저씨들에게 몸을 팔거나 함께 모여서 틱톡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상하게도 그들이 모여있는 광장 구석에서는 라면 스프의 향이 난다. 그들은 구석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 앞으로는 관광객들이 거리낌 없이 돌아다닌다.
가부키초 타워를 떠나, 조금 더 안으로 나아가면 사뭇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모든 건물에는 음식광고가 아닌 호스트와 카바쿠라에서 일하는 분들의 얼굴이 걸려있다. 포토샵을 너무 한 것인지 성형을 해서 인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들을 하고 있어서 괜스레 친근하다.
재밌는 점은 얼마를 팔았는지와 가게 순위가 같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케팅 방법이지만 벌이를 볼 수록 뭔가 이상하다. 분명 한 달에 얼마를 벌었는지 적혀있는데 1위가 3,000만 엔 정도로 한국돈으로 3억 정도에 해당한다. 어라?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방송하는 분들은 술을 안 팔아도 더 많이 버는데?
진짜 가부키초는 해가 서서히 저무는 밤에 시작된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9시쯤이 되면 가부키초는 진면목을 들어낸다. 화려하기보다는 밤보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장소로 바뀐다. 가부키초 너머의 횡단보도에는 진한 화장을 한 여성들이 가부키초로 모여든다.
밤의 가부키초 거리에는 숫자와 일본어가 적혀있는 패널을 들고 서있는 여성들이 1~2미터 간격으로 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들고 있는 패널에는 자신과 놀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적혀있다. 자신의 시간을 팔기 위해 서있는 것이다. 아직,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정 손님이 없거나 인기가 없는 분들이 먹고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자 영업이리라.
그녀들은 자신과 대화하는 지명 시간과 음료(술)를 값비싼 가치로서 돈으로 받는다. 여성들은 눈에 띄기위해 예쁘거나 화려한 드레스를 입거나 반대로 평범한 의상을 입는다.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판매하는 영업은 가부키초가 아니더라도 우에노나 아키하바라의 메이드 카페 등 아니 전국에서 볼 수 있다.
일본만의 특이한 광경에 놀랍다가도 냉정하게 바라보면 개개인의 영업 능력이 확연하게 눈에 띈다. 누군가는 눈만 마주치면 외국인인 나에게도 웃으면서 말을 건다. 누군가는 가만히 패널을 들고서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오기만을 기다린다. 또 누군가는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핸드폰을 쳐다보며 시간을 때운다.
가부키초의 밤에서 마주한 그녀들은 인간궁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넓은 신주쿠에서도 좁은 가부키초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성공'은 한 달에 3,000만 엔의 술을 팔아치우는 것이겠지만 각자 일을 마주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누군가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하찮게 여길지 모르지만 직업을 대하는 그들을 보면서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직장인이 직장을 대하는 모습은 그들의 모습과 같다.
같은 시간이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시간을 값지게 시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으며, 시간을 때우며 루팡하는 사람도 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은 어느 직업이더라도 직업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결국 같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