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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캐슬 Aug 29. 2023

일본여자친구가 멘헤라였던 건에 대해-그녀의 특별한 취향

그녀는 외로움이 많았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일본인 그녀와 매일 전화했다.




피곤한 새벽에도 그녀의 전화를 받아준 이유는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궁금함도 있었지만 자신의 일이 끝나는 새벽 4시까지 기다려 달라고 매달리는 그녀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여행 중이기에 늦게 자도 다음날 일정에 무리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2주 뒤에 그녀가 한국에 왔다.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1년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녀는 대학교 앞의 여성 전용 기숙사에서 살았다. 가끔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화장품 등을 구입하고자 하면 밤마다 나에게 전화를 하여 도움을 청했다. 한국에 오고 몇 번 밥을 먹었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만나자고 했지만 일 때문에 바빠서 만나러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건 핑계였고 그녀가 조금씩 본모습을 내게 보여줬기에 만나기가 싫었다.






그녀의 어학연수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한국어를 정말 못했기에 제일 낮은 등급의 반에 편성되었다. 10~20여 명 되는 반에 그녀 혼자 일본인이었고 대부분이 베트남 학생이라고 했다. 1주일 정도가 지나자 그녀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울면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한국어를 말할 때마다 같은 반 여자애들이 무시를 하거나 웃어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착각일 수 있으니 먼저 말을 걸어보라고 말을 했지만 그녀는 혼자 한국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일본에 돌아가고 싶다며 펑펑 울었다. 학교 생활이 힘들다는 빈도는 증가하여 매번 힘들다는 라인을 보내거나 밤마다 전화가 왔다. 바빠서 전화를 거절하면 한동안 조용하다가 다음 날 다시 연락이 왔다.




하루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했다. 울거나 힘들다는 것도 없었으며, 다 괜찮아졌다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문신이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바늘 공포증이 있어서 문신을 싫어하지만 문신하는 사람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도 고등학생 때 문신을 했지만 후회되어서 제거했다고 한다. 당연히 레이저로 제거를 했을 텐데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녀는 레이저가 아닌 방법으로 제거했단다.



"병원에서 문신한 살을 칼로 베어서 뜯어냈어 볼래?"

"뭐? 아니? 괜찮아."



그녀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는 수술 후의 사진을 보냈다. 초록색 천 위에 영어가 적혀있는 베어낸 피부와 피가 있었다. 그리고 팔뚝을 길게 꿰맨 사진도 함께 보냈다.



"신기하지. 징그럽지 않아? 엄청 아팠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좀비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허구일 뿐이고 실제로 뜯긴 사람의 살과 피를 사진으로 보게 되니 충격이었다.



'왜 전화 끊어?'



그녀는 라인을 보냈다. 그런 사진은 충격이니까 보내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저 아팠고 문신을 다신 하지 않을 것이며, 나에게도 문신을 하지 말라는 자기가 하고픈 말만 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녀가 정신적으로 이상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며칠이 지났다. 약 한 달 가까이 연락을 하다 보니 그녀에게 어느 정도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바이오 리듬을 타듯이 한국 생활 이야기, 음식 이야기, 성형 이야기, 명품백을 구입하고 싶다는 이야기, 그리고 울면서 같은 반의 여자애들이 싫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패턴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펑펑 울더니 전화를 끊고 30분 간 사라졌다가 다시 라인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녀와 연락을 끊게 된 그날은 어김없이 같은 반 여자애들 얘기를 하는 날이었다. 일본에 가고 싶다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펑펑 울었고 역시나 전화가 끊겼다. 30분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너무나도 냉정한 목소리로 시원해졌으며 모든 것이 괜찮다며 웃고 있었다. 180도로 바뀐 그녀의 모습이 궁금한 나머지 무엇을 했냐고 물어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나?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녀와의 인연을 끊은 계기가 되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내게 한 장의 사진을 보냈다. 흰색 수건 위에 손이 올라가 있었고 손목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수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상식에 맞지 않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만 뇌가 생각을 멈추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고자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 이게 무슨 사진인지. 좀비 물에 나오는 사진인지, 의학 서적의 사람 손 모형인지 파악이 안 되었다. 나는 핸드폰 너머의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뭐야?"

"내 손, 그은 거야."

"지금?"

"응. 하면 기분 좋아져."




연락이 안될 때마다 그녀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어 갔다고 했다. 중학생때 친구에게 배웠고 지금까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일본의 친구들과 연락을 하거나 , 한국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떤지, 권유를 했다. 



그녀는 미안하다며 더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아마도 더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그녀와 더이상 연락을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며칠간 연락을 이어갔다. 마지막 연락은 참으로 간결했다. '뭐 해?' 라는 연락에 나는 '요즘 바빠.' 라고 답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사진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에게 평생 PTSD는 그 사진들일 것이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고 그녀가 내게 보여준 행동들이 멘헤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멘헤라를 감당할 수 있을까? 글쎄. 적어도 나는 버틸 수가 없었다. 몇 주 뒤에 그녀는 라인 프로필을 바뀌었다. 남자친구가 생긴 듯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녀는 라인을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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