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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Sep 13. 2022

4. 서울이 싫어졌어. 사람도 싫다.

다 그만두고 싶다.

설상가상으로 제일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과장님이 팀을 떠나게 되었고, 새로운 과장님으로 팀 내 개편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팀장님은 점점 나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던 관계사 직원과 부딪혀야 하는 업무를 시켰다. 심지어는 그 직원과 1:1 미팅까지 잡아주시던 날,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결국 고민 끝에 팀장님께 조심히 부탁드렸다.


  팀장님, 저는 그 분과 일하는 게 너무 힘듭니다. 그때의 일이 떠올라요.

팀장님  음? 나도 그 직원이랑 일하는 거 불편해. 나도 사이 안 좋아. 원래 다 그런 거야.

  …………… 전 단순히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잖아요.

팀장님  하…….. 내가 계획한 업무 배정이 있었는데 그걸 바꾸고 싶다고? 고민해 보마.


다행히도 업무를 바꾸는 걸 고려해보겠다는 팀장님의 말씀에 안도했지만, 그 안도가 또 다른 상처로 다가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이런 부탁을 하기 이전에 와 업무를 바꿔야 하는 동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전에 사전에 수없이 괜찮은지, 거절해도 좋다고 물어본 뒤였다.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지도 않았던 새로운 과장님은 날 불러내더니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 관계사 직원이 다른 직원한테도 똑같은 언행을 안 할 리가 없잖아.
그럼 너랑 업무를 바꿔야 하는 동료는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아?


그렇지… 잠깐만, 그럼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은 사람인 건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우여곡절 끝에, 업무는 바꿔주셨지만 팀 내 분위기는 더욱 안 좋아졌다. 사소한 걸로 트집 잡는 팀장님, 기분에 따라 말로 상처 주는 과장님 속에서 나는 서울에 온 걸 진심으로 후회했다. 다 포기하고 그냥 대구로 갈까도 고민했다. 

같이 업무 해야 하는 관계사 직원의 텃새와 불편한 관계보다도, 같은 팀 내의 불화가 내 탓인 것만 같은 생각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어느 날, 나에게 팀을 옮길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미련 없이 부서를 옮긴 나는 새로운 출발을 또 꿈꿨다. 바로 옆 부서라 내가 하는 직무에서 큰 변동도 없고, 매번 볼 때마다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했던 팀이라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여전히 의문이다. 운이 좋았지만 내가 그 복을 걷어찬 걸까? 아니면 독이 든 성배였을까?


그 팀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사소한 걸로 눈치 주는 일 따윈 전혀 없었다. 호구조사 따위도 하지 않았다. 그 흔한 남자 친구 유무도 묻지 않았다. 다만 그만큼 내게 관심이 없었다. 따뜻한 챙김을 바랐던 건 아니지만, 팀에 도움이 되려고 간 나를 ‘인식’해줬으면 했지만 그곳에서는 ‘투명인간’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많아서 친하게 지내려고 다가가도 보이지 않는 선에서 밀어내는 게 느껴졌다.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이 문제로 친구들에게, 전 팀의 친한 동료에게 거의 매일을 상담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대놓고 나를 제외하고 그들끼리 술자리를 하러 갈 때도 상처받지 않은 척했다. 나만 낄 수 없는 분위기도 괜찮은 척해야 했다.


투명인간이라도 괜찮았다. 업무를 열심히 하면 팀원으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생각해서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쏟아지는 업무량에 밤 12시를 넘겨 일하는 날들이 몇 달째 계속되었고, 팀의 일정에 방해 주지 않기 위해 새벽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 때문에 팀 일정이 꼬이진 않았으니까. 


신기하게도 업무는 할수록 는다고, 더 이상 심야까지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같이 업무를 해야 하는 상대 부서가 노골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내색을 했다. 원래 그 부서와 우리 부서는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곤 하지만, 나는 특별히 더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안 해본 방법이 없었다. “힘드시죠? 조금만 더 힘을 내셔요. 잘하고 계셔요.”하는 위로도 해봤고, “지금 해당 팀 때문에 우리 팀 전체 일정이 늦어지고 있고, 대표님 보고도 덩달아 늦어지고 있습니다.”라는 협박도 해봤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친해졌다 싶으면 멀어지고 가망이 없다 싶으면 친한 척을 해와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한결같이 친절하게,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더니 상대 부서 사람들이 7명이라 치면, 1명을 제외하고는 친해졌다. 그 1명은 회사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우리 팀원 전체는 해당 부서가 나를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걸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다들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지만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팀장님은 내가 도와줄 테니 언제든 편하게 말하라고 해당 부서가 너무한다는 식으로 팀을 향해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지난 부서에서 힘든 일을 털어놓았다가 분위기가 파탄난 걸 생각하면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1년은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하고 어느 정도 나를 ‘인식’ 해 줄 때, 그때 조용히 말씀을 드리려고 했다.


그렇게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1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면담을 하게 돼서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분들과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좋은 말도 해보고 협박도 해봤지만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팀장님은 해당 팀 쪽으로 출근을 해서 같이 일을 하라는 말씀만 하셨다.


팀 내 다른 직원들이 겪는 타 부서와의 문제는 팀장님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셨는데 나한테는 나보고 해결하라니… 하지만, 팀장님께선 혼자 보내는 건 위험하니 직급이 높은 동료분과 함께 가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당 부서로 출근할 날은 다가왔고, 팀장님께 해당 부서 쪽으로 출근해 보려 한다고 보고 드렸다. 그랬더니 그제야 팀장님이 나한테 하신 말.


혼자 갈 수 있죠?


도저히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쭈뼛대며 동료와 함께 가고 싶다니 팀장님이 자리로 부르셨다.

그때 그 사람의 험악한 표정을 아직 잊을 수 없다. 혼자 못 가겠다고?라고 하시더니 결국은 동료분을 함께 보내주긴 하셨다.


나는 그때 퇴사를 결심했다. 내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 여름을 잊지 못한다.

지옥은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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