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데 왜 퇴사를 못하니.
내 또래 팀원들은 어떤 날은 먼저 차 한잔하자고 손을 내밀었다가도 다시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는 일들을 반복했다. 나는 종잡을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혼란스러운 투명인간이 되었다. (타 부서나 팀원이나 똑같이 대했는데 왜 행동이 오락가락 한 건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른 부서의 친한 동료들과 남자 친구로 지옥을 버텨가고 있었다. 통장에 쌓이는 돈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매 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그 결실이 결혼이라는 인연으로 닿았다.
나를 괴롭히던 부서의 사람들은 친해지니 팀원들보다 훨씬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노력하면 냉랭하던 관계가 개선된다는 믿음은, 상대 부서의 사람들이 한마음 한 뜻을 모아 결혼식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빨리 업무를 끝내주는 보답으로 돌아왔다.
팀원들은 아무도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지만, 다른 부서의 친한 동료들은 내 결혼식에 참석해주었고 진심으로 결혼식을 축하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게 결혼식도 치렀다. 신혼여행까지 행복했다.
이후 배우자는 춘천으로 직장을 발령받았고, 주말 부부를 원치 않았던 우리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이런저런 핑계 댈 필요 없이 깔끔하게 회사와 이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진 대상이라는 팀장의 말에 나는 좀 더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사 고과 결과의 날.
당신은 승진 대상이 아닙니다.
작은 기대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로 돌아왔다. 회사는 내게 단 1g의 행복도 허용하지 않았다.
개인 면담 시에 들었던 칭찬은 내 환청으로 남았고,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일처리를 잘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팀원들과 못 어울린다는 이유로 경고도 받았다.
우리 아이들이 일부러 널 따돌릴 리가 없어
그쵸.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아이들’이 되지 못한 거죠?
도저히 업무 시간 내로 끝낼 수 없는 양의 일을 어떻게 든 혼자 끝내야 해서 한 야근조차 눈치 줄 때 퇴근해서 집에서 일하고, 주말에 일해서 기간 맞춘 거… 정말 모르신 거죠?
그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인사하느라 제 인사를 아무도 안 받아 준건 건 제 목소리가 작아서겠죠?
그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술 약속을 잡는 걸 모든 팀원들에게 얘기할 동안 저한테는 한 마디도 안 한 건 고의가 아니라 실수겠죠?
나는 독이든 성배를 마신 게 아니라 내 옷이 아닌 걸 억지로 나를 구겨 넣어서 입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잘못이라고 스스로 내 탓하는 것도, 그들이 이상하다고 하는 것도 이젠 지겨웠다. 그냥 내가 적응할 수 없는 곳. 그 정도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썼지만, 꿈에 그리던 내 신혼생활은 회사로 참 많이도 힘들었다.
나는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버려진 걸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퇴사할 때 하더라도 회사에서 나가줬으면 하는 때가 아닌, 조금이라도 나를 필요로 할 때. 그때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어려움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불평불만 없이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하고,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아야 한다고 교육시켰다면.
성희롱이건 직장 내 괴롭힘이건 사람에 따라 처벌 여부나 강도가 달라지며, 오히려 피해자가 더 힘들 수도 있다고 미리 경고해줬더라면.
팀마다 꼰대는 있을 수 있고, 가스 라이팅은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고지해줬더라면.
우리 회사는 다른 곳과 다르다고 자신하지 않았다면
지키지 못한 교육과 문화는 법적으로, 규정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줬다면.
기대하지 않았을 텐데.
회사에서 표면적으로 교육했던 내용을 그대로 보고 배웠기에 기대한 것뿐인데 사람에 따라 피드백을 다르게 한다는 걸 겪어보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첫 부서에서 적응하지 못했기에 더 잘 해내고 싶었던 나의 노력은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고, 일을 못할 뿐만 아니라 팀 원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무엇을 해도 ‘불편한 사람’으로 낙인찍을 뿐이었다.
지난 부서가 불지옥이었다면, 여긴 물 지옥이었다. 서서히 물이 차 올라서 숨이 막히는지도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