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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May 02. 2024

발렌시아가 300만 원 테이프 팔찌를 보며 한 생각

광기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패션 




대체 누가 그들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봉인을 풀고 흑화한 디자이너들. 그들의 조금은 특별한 작품 세계에 대하여.





공포감의 특이한 변종, 언캐니(Uncanny)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자신의 논문 The Uncanny에서 인간의 공포감과 관련한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두려움이 친숙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발현된다고 여겨왔지만 그가 언급한 언캐니(Uncanny)란 감정은 이와는 반대다. 즉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친숙한 것으로부터 야기되는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가리킨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기이한이상한묘한 정도가 어울리겠다.

이 언캐니는 흔히 겪는 공포심과는 살짝 결이 다르다. 대상이 본래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 아닌, 그것을 대하는 주체가 느끼는 심리에 의해 탄생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편안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갑자기 무서워지는 상황부터 데자뷔와 같은 설명하기 힘든 현상, 나아가 사람 형상을 한 인형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섬뜩함까지도 포괄한다.



안나 웨이언트의 Two Eileensⓒartsy.net
만 레이의 Cadeau(좌), 키스 에디미어의 Beverly Edmier 1967(우)ⓒtate.org.uk




예술의 영역에선 이 언캐니를 현명하게 활용한다. 혐오와 미감 사이에서 혼란을 종용하여 관객을 충격에 빠뜨리거나, 한 대상에 두 개의 코드나 기능을 뒤섞어 명쾌한 해석이 불가한 혼종을 내놓고는 불편한 경험을 조장한다. 이처럼 언캐니는 결국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어떤 대상에 대한 정보나 믿음이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다시 말해 인지의 부조화나 불확실성에서 찾아오는 막연한 불안감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feat. 다이나믹 듀오)처럼 폭주하고 있는 요즘의 패션계. 이들을 보며 밀려오는 감정은 그야말로 언캐니 그 자체다. 자, 지금부턴 이들의 폭주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좀 더 면밀히 관찰해 보도록 하자.







비둘기를 닮은 비둘기 가방 안에 비둘기 넣기


그대, 혹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이는 1970년,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Mori Masahiro)가 주장한 개념으로 로봇의 생김새가 인간과 닮을 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구간을 넘어서면 그 호감이 거부감과 공포심으로 변질된다는 이론이다. 마치 인공 스킨을 입힌 휴머노이드형 로봇을 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대신 인간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의 완벽한 외형을 띄게 된다면 호감도는 다시 상승한다. 즉 인간과 어설프게 닮은 것들에 대해 우린 큰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씀.



예를 들자면 이런 로봇ⓒhighsnobiety.com, ⓒmedium.com



프로이트보다 먼저 언캐니란 개념을 선행 연구했던 독일의 의사 옌치(Ernst Jentsch)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한 존재가 겉으로 보아서는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아 혹시 영혼을 갖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드는 경우, 혹은 반대로 어떤 사물이 결코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영혼을 잃어버려서 영혼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경우”다. 마네킹이나 밀랍인형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근데 이 현상과 정말 딱 맞아떨어지는 예가 패션계에 존재한다. 바로 JW ANDERSON의 동물 백 시리즈다. 그냥 동물 그림이 그려진 백이 아니다. 진짜 동물의 형상을 그대로 본따 만든 백이다. 2022년 FW 쇼에서 공개되었던 비둘기 클러치는 꽤나 현실 고증에 열을 올린 것 같지만, 이리보아도 저리보아도 조악한 형태. 도전하기 좋아하는 패션 셀럽 사이에선 열화와 같은 인기를 끌었지만 글쎄.



모두가 궁금해 했던 비둘기 클러치의 오픈 방식ⓒharpersbazaar.com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비둘기 클러치의 성공에 힘입은 그들. 이내 개구리와 고슴도치까지 출현시키고야 만다. 특히 개구리 클러치는 실제와 같은 창조물이라는 부연 설명이 기재되어 있을 만큼 공을 들였다. 입 부분을 열면 붉은 속살까지 드러나는데, 휴대폰도 못 넣을 정도의 극악의 실용성을 지녔지만 출시되자마자 비둘기 클러치의 뒤를 잇는 역작이 되었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미감을 가진 걸까 하며 멈칫했지만 이 백들에 대한 대중의 참혹한 반응을 보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어쨌든 감탄하며 구매하기에는 혹독한 수련이 필요할 듯.



개구리 클러치는 입이 열리는 방식, 세상에!ⓒstylecaster.com
좀처럼 끝나지 않는 광기의 역사. 전부 클러치이며, 카나리아가 가장 최신작이다.ⓒhighsnobiety.com, ⓒjwanderson.com






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있을 리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이게 여기 왜 있는 거지? 하는 것들. 다시 말해 “꿈이나 상상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들이 눈앞에 나타난다거나, 때문에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들” 말이다. 마치 어렸을 적 떠올려 보았던 외계 생명체의 모습처럼. 헌데 그것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눈앞에서 직접보게 된다면?



Bad Binch Tongtong 2023 SSⓒvogue.com




2023년 SS 시즌 뉴욕 패션 위크를 통해 데뷔한 혜성 같은 브랜드 Bad Binch Tongtong에 주목하자. 그들은 작년 데뷔 컬렉션부터 올해 SS까지 줄곧 무어라 불러야 할 지 망설여지는 어떤 존재들, 즉 신화나 공상 속에서만 있어야 할 존재들을 기필코 런웨이 위로 끌어다 놓는다.



예배당에서 열려 더 무시무시했던 2024 SSⓒculted.com



낯익은 장소에서 펼쳐지는 낯선 풍경. Bad Binch Tongtong의 강점은 그저 런웨이 위를 걸으며 의상의 상품 가치를 판단받는 것이 아닌, 쇼를 스토리와 음악, 춤이 있는 하나의 공연처럼 기획함으로써 관객과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미지 자체는 언캐니함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준비한 파격적인 실루엣과 연출은 마치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의 메시지처럼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관객을 매료시킨다.


ⓒmetalmagazine.eu





BALENCIAGA 네 이놈들


진짜배기는 항상 마지막에 등장한다. 그 이름 바로 악명높은 BALENCIAGA. 최근 그들의 행보는 정말 대단하다. 대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도록 만드니까. 그 중에서도 올해 파리 패션 위크에서 목격된 투명 박스 테이프 팔찌는 미친듯한 열기로 바이럴 되며 그들의 예측불허한 발칙함을 몸소 증명한 전설의 산물이다. 이 충격적인 아이템에 대한 해석은 천차만별이지만, 사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동일할 듯. 그럼 여기서 인기 스트리머인 침착맨의 말을 빌려보자.



BALENCIAGA의 스니커즈를 본 침착맨의 명언ⓒ침착맨 유튜브 <러닝화 쇼핑> 중



나 역시도 이 의견에 깊게 동의한다. 또한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생각까지 든다. 그게 왜 그렇게 쓰이는 걸까?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 온몸을 칭칭 감은 박스 테이프, 허리에 무심히 두른 IKEA의 타월을 닮은 타월, 고급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쓰레기봉투 모양의 가방까지. 그들은 앞서 언급했듯 어느 기능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반(反)기능적인 혼종들을 생산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하지만 괜찮다. 박스 테이프? 까짓것 팔찌처럼 찰 수도 있지. 타월? 자동차 고무 매트? 허리에 잘 감으면 독특한 디자인의 스커트처럼 보일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가격은? 문구점에선 3000원인 투명 테이프가 300만 원짜리 팔찌가 되다니! 보편적 인식과 가치를 단숨에 뭉개버린 이 터무니 없는 가격이야 말로 친숙한 대상으로부터의 두려움, 언캐니함 그 자체가 아닌가.



ⓒstraitstimes.com, ⓒdazeddigital.com, ⓒhypebae.com



하지만 끝판왕이 괜히 끝판왕인가. 아직도 한참 남았다.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 펼쳐진 2023년 RESORT 컬렉션과 2019년 RESORT 컬렉션의 홍보물인 'Trippy'란 제목의 비디오 룩북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뉴욕 증권 거래소를 장악한 라텍스 인간들과 신체가 기형적으로 뒤틀린 모델들. 기괴한 스타일링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만나 현실 속 비현실의 경계를 거뜬히 지워버린다.

대체 이들이 왜 이러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은 이미 증발해버렸다. 그냥 이들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뿐. 딱히 대중들을 설득할 맘도 없어보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 익숙함 속에 심어진 낯선 요소들이 BALENCIAGA란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니.



2023 RESORTⓒvogue.com
2019 비디오 룩북 ⓒhypebeast.com, ⓒyilmazsen.com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일상적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는 낯설게하기라는 개념을 연출에 도입해 연극사에 한 획을 긋는다. 익숙치 않은 행동과 상황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무대와 객석의 분리를 모호하게 만들어 극에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들 스스로 발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작품은 관객의 기대와 요구로부터 해방되며 자유를 획득한다.

최근의 패션이 폭주하는 이유 역시 아마 이러한 자유를 갈망해서가 아닐까. 디자이너는 자신의 상상력을 가감없이 펼치고, 해석과 선택은 우리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요 사랑스러운 발칙함 때문에 도무지 패션을 미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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