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Miuccia Prada
Stories: Miuccia Prada
우리는 미우치아 프라다를 입는다
애초에 작품은 창작자를 닮는다고 믿어서일까.
가끔은 옷보다 피날레에서 인사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이 더 궁금해지곤 한다. 디자이너를 보면 그들의 옷이 더 깊이 이해되는 순간이 있으니까. 유독 관심을 가지고 보는 여성 디자이너가 있다면 클래식한 재킷과 스커트에 구두를 신는 그녀,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다.
올해로 75세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1949년 이탈리아 밀라노 프라다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전 세대 여성과 남성 모두의 마음을 끄는 패션을 창조하는 그녀의 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2021년 SS 시즌부터 라프 시몬스(Raf Simons)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로 PRADA를, 그리고 동시에 MIU MIU를 이끄는 그녀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여성’에 대해 말해야 한다. 여성이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그녀의 작업 주제였으니까.
지금이야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존재가 패션계에서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미우치아가 브랜드를 처음 이끌던 시기만 해도 패션 업계는 남성 중심의 영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우치아 프라다가 PRADA를 이어받은 게 필연은 아니었다.
PRADA를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그가 원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미우치아가 경영권을 잡게 되었던 것. 당시 프라다 가문이 위치한 이탈리아의 상황은 부패한 정권하에 사회 운동과 자유에 대한 갈망의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가정에서 겪은 남녀 차별의 불합리와 자국의 답답한 상황을 겪으며 미우치아는 자연스럽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하게 된다. 그러한 배경으로 그녀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사회주의 당원이자 여성 인권 단체인 이탈리아 연맹 UDI에 속해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미우치아가 YSL 스커트를 입고 여성 해방 시위에 간 장면은 여전히 아이코닉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그 정신은 급진적인 여성상의 모습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PRADA와 MIU MIU에 깃들어 있다.
“난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돈 많은 패션 디자이너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문제가 된다. 물론 난 정치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고, 의견도 있다.” -VOGUE와의 인터뷰에서 미우치아 프라다
위의 인터뷰처럼 지금의 미우치아 프라다는 대놓고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돈 많은 사람들에게 값비싼 옷을 파는 게 직업이면서 작업을 통해 정치적 이슈에 대해 말한다는 것에 모순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더 이상 직접적인 메세지를 전달하지는 않지만 미우치아 프라다는 세련되고 지적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찾았다. 대표적으로 고전 여성 작가들의 책을 나눠주는 MIU MIU 문학 동아리 팝업 이 그렇다. 우리는 이 이벤트를 통해 미우치아 프라다가 브랜드를 통해 전하고 싶은 가치를 엿볼 수 있다.
평소 미우치아의 스타일에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그녀의 스커트 사랑이 유구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이에 대해 미우치아는 자신이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아서 앞치마 같은 디자인의 스커트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치마를 비롯한 스커트가 여성의 절망, 빈곤, 열정이 담겨 있는 상징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에 미우치아의 작업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거라고.
“더 오랫동안 일할수록, 내 작업이 좀 더 현실의 여성을 향해가는 듯하다. 현실의 환상이라고 해도 좋다. 물론 환상은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납득이 갈 만한 작업을 하고 싶다. 어떤 순간엔 환상에 빠져들 때가 있고, 때로 현실에 집착할 때도 있다. 즉 환상과 현실은 머릿속에서 순환하듯이 움직인다. 내 상상력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미우치아 프라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모두 만드는 미우치아 프라다. 그녀는 패션을 통해 기존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남성은 더 나약함을 드러낼 수 있도록, 여성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만들고자 말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자신답게 살 수 있도록!
1978년 미우치아 프라다는 프라다 하우스에 입성한다.
또 같은 해에 한 무역 박람회에서 지금의 남편이자 동업자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를 만난다. 가죽 공장 주인이었던 그는 이후 그녀가 구두와 옷을 만들 것을 권유했다. 가방에서 시작된 그녀의 세계를 확장해 보자고 말이다. 그러면서 세계 2차 대전 이후 쇠락의 길을 걷던 PRADA에 새로운 막이 열렸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PRADA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1984년 처음 선보인 나일론 백!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당시에 산업, 군사용으로 사용되던 ‘포코노 나일론(Pocono Nylon)’ 소재의 가방을 선보인 건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럭셔리 브랜드가 가죽이 아닌 나일론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시도를 보인 것 자체가 새로운 발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백은 출시 이후 90년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당시 여성들의 몸을 육감적으로 드러내던 주류 패션의 흐름에 반항하듯 미니멀하고 지적인 스타일에 집중했다. 이때부터 PRADA의 옷은 ‘어글리 시크(Ugly Chic)’라는 단어가 함께하게 된다.
이후 1993년, 미우치아는 좀 더 젊은 여성을 타겟으로 한 PRADA의 세컨드 레이블 MIU MIU를 런칭한다. 어릴 적 자신의 별명을 따와서, 그간 꿈꿔왔던 이상적인 디자인을 마음껏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PRADA는 전통이 깊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담지 못할 때가 있다. MIU MIU는 기본적으로 재미와 본능을 추구하고, 심각함은 덜어내고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
그리고 2024년의 끝자락인 지금, 여전히 PRADA와 MIU MIU는 많은 이들이 ‘가장’ 사고 싶어 하는 브랜드다. 처음 브랜드를 이끈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회사가 이끄는 비전과 시장의 수요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야말로 미우치아가 매 시즌 전 세계 여성의 마음을 기민하게 꿰뚫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미우치아 프라다를 설명하려면 그녀의 예술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젊었을 적에 소문난 영화 애호가로, 피콜로 테아트로 극장에서 5년 동안 신체 마임을 배우기도 했다. 그 정신이 이어진 1993년 시작한 예술 재단이자 현대 미술관, 프라다 폰다치오네(Prada Fondazione) 또한 그녀가 믿는 예술의 힘이 담긴 공간이다.
“난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아직 내 직업을 사랑한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패션은 내가 가진 지식을 담아내는 도구와도 같다. 폰다치오네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패션은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우리가 옷을 팔아야 할 사람들을 생각해야만 한다. 현실에 매인 일인 셈이다. 그렇기에 어렵다. 특히 세상은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쉽지가 않다. 반면에 폰다치오네에서 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더 쉽다. 생각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기에 흥미롭다.” -미우치아 프라다
미우치아의 영화 사랑은 오랜 친구이자 영화 제작자인 바즈 루어만(Baz Luhrmann)과의 영화 의상 작업으로 확장된다. 1996년에 나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클레어 데인스(Claire Danes)가 입은 화이트 드레스도 미우치아가 디자인한 옷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위대한 개츠비>, <엘비스> 또한 그녀가 의상 디자인에 참여한 영화! 여성 영화 감독을 후원하는 MIU MIU의 ‘우먼스 테일’도 들어보셨는가? 이 모든 것들이 곧 그녀가 패션 이외의 것들을 결국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하게 되는 하나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패션을 통해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냐는 질문에 미우치아 프라다의 답은 단호하다. No.
여성에게 힘을 주기 위해 옷을 만들지만 각 잡힌 비즈니스 수트를 입는다고 해서 힘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의 힘은 패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옷은 성격과 취향, 아이디어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진정한 ‘힘’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드러난다고.
그녀의 말을 다시 가져와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왜 미우치아 프라다의 옷에 열광할까. 그녀가 말하는 ‘내면’. 즉, 정신의 힘이 옷에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내면에 힘이 있다면 어떤 옷을 고를지에 대한 자유 또한 그 힘에 이끌릴 것이다. 여성의 삶을 상상하고 그리며 매 컬렉션을 준비하는 그녀를 남다른 디자이너로 만드는 건 그 옷이 가진 메시지가 전하는 힘이다. 그리하여 미우치아 프라다의 옷을 입는 건 그냥 옷을 입는 게 아니다. 그녀가 지금까지 말해 온 한 인간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연대 정신을 입는 일이니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