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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Jul 23. 2024

혼밥러, 돈까스 대접하던 날

먹는데 온갖 정신을 몰두하기.

나는 혼밥을 곧잘 한다.

그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공부에 전념을 다해야겠다 마음먹은 게 너무 늦어서 고3 때는 3교시 끝나고 혼자 밥을 후다닥 먹고 점심 때는 오롯이 공부에 집중한 적도 있다.

사회생활하면서도 혼자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밥집을 가는 경험은 거의 없었다. 햄버거집에 가는 날은 호사스러운 날이었거나 작업이 필요해서 들어가 앉아있는 것에 투자를 하는 셈이었다. 보통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우유 정도로 때우거나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집에서부터 간식거리를 챙겨 나오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그 동네 어느 작은 공원의 벤치에서라도 운치를 느꼈지만 대부분은 조금 초라하게 느끼기도 했다.

결국엔 나 자신보다 돈이 우선이 되어서 스스로에게 식사를 대접할 생각은 없었다는 걸 의미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마음을 많이 바꿔먹었다. 돈이 많아져서가 아니라 돈을 버는 열정이 꺼지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살려고 하는 건데 그거 얼마라고 계산기 두드리지 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식 없이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그래도 조직생활에 메뉴 고르는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한 몫했다.


혼자서 어떤 의지로 집 밖에 나오는 일이 쉽지는 않다. 외출 결심을 해도 스스로의 약속은 잘 무너진다. 그래서 한 번씩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것으로 보상을 해준다. 나간 김에 밥을 먹을 거면 끼니가 아니라 음식을 대접하자.'


혼밥러로서 웨이팅이 있는 맛집에 가기는 어려워 제약이 있지만 오히려 혼자 몰두해서 먹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에 맛있는 곳이 많아서 선정에 크게 문제는 없다.


어제는 '마음약국 처방'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회사가 경기도인 관계로 반반차를 써서 여유 있게 나왔다. 여유있게 밥 먹으려고 반반차 썼다는게 맞겠다. 도착지 근처를 검색해 돈까스 맛집을 발견하고 식사를 하러 갔다. 브레이크타임이 막 끝난 5시 반, 내가 첫 손님이었다. 6시 퇴근 전의 시간에 조용히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벽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맛있는 걸 먹으니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요즘 명상에 관심 가지면서 알게 되었는데 '먹기 명상'이라는 것도 있더라. 절에서 하는 묵언 발우공양에 연장인 것 같았다. 어제는 계속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잡생각을 떨치려고 노력하던 날이었어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먹는 행위와 감각에만 집중해 보았다.



첫 입은 최대한 원재료 느끼려고 소금만 살짝 찍었다. 바사삭, 하면서 고기의 육즙이 입안에 가득 찼다. 튀김 기름인가 고기의 육즙인가 헷갈릴 정도로 입 안에 기름이 가득했다. 등심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육질이 부드러웠다. 천천히 음미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입안엔 조금 더 씹어야 하는 고기 조금만 남고 벌써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렸다. 남은 고기의 육향을 음미하면서 샐러드를 입안에 넣는다. 상쾌하다. 역시 기름진 걸 먹을 땐 야채를 같이 먹어줘야 한다. 다음은 와사비를 올려먹어본다. 다시 바사삭.



이런 식으로 맛에 집중하며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체를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먹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아주 가끔 나오는 습관이었다. 맛으로만 따지면야 더 맛있는 것도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꽤나 즐기면서 먹었던 모양이다.


나랑 비슷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한 혼밥러들이 있었는데 나보다 다들 빨리 먹고 자리를 떴다. 나는 밥을 늦게 먹기로 유명했는데 고3 쉬는 시간에 먹기, 군대 다녀온 복학생들과 밥 마시기, 영업이 속한 부서에서 밥 먹기와 같은 것을 하다 보니 지금은 회사에서 나보다 늦게 밥 먹는 사람들을 기다릴 정도가 되었다. 먼저 나간 혼밥러들이 급한 일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뭔가 원래의 내 속도에 맞춰서 먹을 수 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마지막 한입까지 천천히 맛을 즐기면서 마무리하고 나니 그제야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어왔다. 명상에 관심을 갖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생각 비우기를 못했는데 한 하나에 집중을 하니 오히려 잠시 멍 때린 기분이었다.


살면서 혼자 밥 먹는 것 일을 수십 번을 했는데 먹기 명상이 만족스러워 다음에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사람들과 다 같이 맛있는 것을 먹는 행복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혼자 스스로에게 대접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순간이 좋다.


오랜 숙성에 저온으로 튀겨 속이 촉촉 부드러운 돈까스. 오래 씹어 음미하려해도 금방금방 꿀떡꿀떡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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