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오마카세, 골프... 돈이 많다면 라이프 스타일, 없으면 허세
예를 들어, 야채김밥 한 줄에 1000원일 때는 우리 야채김밥 하나를 시키고, 거기다가 조금 더 비싼 1500원짜리 참치김밥 하나를 더 시켜도 2500원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야채김밥 한 줄에 4500원으로 가격이 올라버린 요즘에는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 가서 김밥의 대체재인 2500원짜리 작은 샌드위치 하나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우리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달 용돈이 변하지 않았는데, 김밥값만 3배가 올라버린 식인 것이다. 하지만, 물가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2배~3배 오르기는 힘들다. 물가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기름값도 많이 올라야 10% 내외인데 이렇게만 되어도 뉴스에서 난리는 피우는 점을 감안하면,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분명 변화하지만 그 속도 때문에 삶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기 쉬운 부분도 있다.
흔히 우리는 '가격'과 '금리'를 혼동하고는 한다. 금리는 쉽게 말해 '돈'의 가격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우리는 금리, 즉 이자가 얼마인지 확인한다. 만약 1000만 원 빌려야 할 때 대출금리가 2%라면, 이 거래에서 '1000만 원을 빌리는 가격'은 1000만 원의 2%인 20만 원이다. 싸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1억을 빌렸다면 200만 원이니, 어찌 보면 그렇게 비싸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돈의 가격'인 금리는 '물건의 가격'인 물가와 달리 매우 짧은 시간에도 2배~3배 이상 훌쩍 뛰어버리기도 한다. 2%가 갑자기 5%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1억을 빌리는 '돈의 가격'은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껑충 뛰어버린다. 200만 원짜리 물건값이 2~3달 만에 500만 원으로 올라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물론 명품이나 한정판이라는 태그를 달고 나오는 일부 물건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금리라는 녀석이 2%에서 5%로 올라버리면, 재벌부터 이제 막 용돈을 받기 시작한 어린아이까지 모두 2배 올라버린 '돈의 가격'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 즉, 야채김밥 가격이 1000원에서, 2500원, 4500원으로 올라가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물건의 가격이 2배가 되려면 적어도 몇 년간의 시간이 걸리는 그나마 느긋한 성격을 가진 반면, 금리라는 녀석은 당장 3개월 뒤에 2배로 폭등할 수도 아니면 반대로 1/2로 폭탄세일을 할 수 있는 아주아주 변덕스러운 녀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의 가격보다, 돈의 가격인 금리를 더 신경 써야 한다.
돈의 가격인 금리가 바짝 오른 시대이고, 덩달아 물가까지 껑충 뛰어버린 시대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둘 중에 더 무서운 녀석을 고르라면 당연 금리일 것이다. 그리고 금리는 자기 자신이 가장 변덕스럽고 불완전한 존재이면서, 한껏 화가 날 때 항상 '허세'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부터 먼저 패고 본다.
뉴스에서 "금리가 오르고 있습니다. " 또는 "당분간 금리하락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와 같은 이야기가 들리면, 그때라도 우리는 하루빨리 허세부터 팔아야 한다. 금리상승으로 주가가 하락하면 물타기 추매를 한다는 둥, 글로벌 정세가 어찌어찌되니 코인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둥, 우리는 현실적으로 '금리'의 변덕에 바로 '돈'을 더 확보할 계획부터 세우지만, 사실 순서가 틀렸다. 올라버린 금리가 카운터펀치를 먼저 날려버리는 허세부터 정리해야 하는 것이 첫번째 순서이다.
먼저, 소득보다 과하게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정리해야 한다. 소득보다 과한 자산을 소유했다는 것은, 대출을 통해 미래소득을 현재로 당겨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소득을 당겼다는 의미는 바로 빌린 돈의 가격인 금리, 즉 이자를 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 다 타고 다니는 외제차를 1억에 구매했고, 2% 금리여서 1년에 이자만 200만 원을 부담했다. (원금은 3년 뒤부터 갚으라고 해서, 아직 상환 시작도 안 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금리가 5%가 되어, 1년 이자가 500만 원이 되었고, 딱 이때 원금 상환도 시작되어 앞으로 10년간 원금까지 갚게 된다면 1년에 적어도 800만 원을 더 갚아야 하니, 1년 원리금 부담이 1300만 원이 된다.
너무 극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지만, 아니다. 너무나도 일반적인 예시이다. 금리가 낮을 때는 모두가 다 낮은 가격에 '돈'을 구매하려고 한다. 그리고 돈을 구매할 때면 항상 이벤트 기간이 따라붙는데, 그게 바로 원금 상환유예이다. (쉽게 말해, 먼저 이자만 내고 빌린 원금은 나중에 갚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금리가 오르고, 이벤트 기간이 끝난다. 이 모든 것은 한 번에 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자가 낮을 때 1년에 200만 원(한 달 17만 원)하던 '돈의 가격'이 1년에 500만 원(한 달 42만 원)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1년에 1300만 원(한 달에 108만 원)으로 껑충 뛰어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는 금리가 다시 낮아지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순서는 허세부터 팔아야 한다.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내 분수에 맞지 않는 허세부터 눈물을 머금고 줄세운다음 하나씩 이별통보를 해야 한다. 처음 만날 때 냈던 '물건의 가격'보다는 훨씬 적게 받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보다 몇 배는 더 센 '돈의 가격'이 우리 뒤통수 앞통수 다 후들 기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프지만, 그것이 순서이다.
"경제학..."으로 시작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칸을 점령해 온지 꽤 긴 시간이 지나왔다. 그만큼, 국민적으로 경제학에 대해 기본이해가 이렇게나 높았던 시대는 고조선 건국 이래 최고를 찍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명작에는 "제가 범인이었어?!"라고 하는 명불허전의 반전이 있듯이 대다수의 경제학 책들은 가장 중요한 반전을 알려주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참을 읽고 경제학의 마스터가 되어, 소비를 하게 되면 얼마나 경제에 도움이 되며 저축을 위해 어렸을 적 반강제로 만들었던 우체국 통장이 얼마나 우매했던것이 행동이였는지 후회할 때쯤 후두부를 강타하는 반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로 "경제학의 주인공은 국가와 시장이에요! 당신이 아니에요!"라는 것.
경제학은 국가와 시장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당연히 시장의 입장에서는 소비가 이루어져야 기업이 생산을 하고, 정부가 세수를 걷고 그것이 다시 투자로 연결되어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국가가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이다. 소비가 항상 미덕은 아니다. 금리가 오르면, 우리는 저축을 하는 게 맞다. 이렇게 말하면 경제학 책 안에 정정하게 살아있는 영국가발을 쓴 경제학자들의 지탄을 받을 수 도 있겠지만, 금리가 오르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하는 게 맞다. 그것이 요즘 시대에 돈을 더 벌 수 있는 트렌디한 경제적 행위이다.
소비와 저축은 유행을 타는 경향이 있다. 윗세대는 저축이 유행이었을 때 경제를 느꼈고, 현세대는 소비가 유행일 때 경제를 배웠다. 모든 건 글로만 배우면 그다지 퍼포먼스가 좋지 않다. 해외여행도 직접 경험해봐야 하고 연애도 직접 해봐야 한다. 경제도 그렇다.
저축이 트렌드를 가진 시대가 돌아왔다. 언제까지 이 유행이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베프였지만 지금은 얄미운 친구가 되어버린 허세부터 손절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