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57
반년 만에 공항에 왔어요. 한 해의 절반을 시린 통증과 차가운 볼때기의 붉은 열기로 때웠는데, 드디어 오늘 비행기의 푸른 창문에 머리를 기댈 수 있게 되었어요. 허나 설렘이 성급한 나머지 나는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해 버렸고, 덕분에 느긋하게 카페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러고는 간만에 커피와 베이글을 시켰는데, 나의 담백한 첫 끼니가 나오기까지 나는 조용히 기다릴 필요가 있었어요. 따라서 나는 여유로이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바깥의 웅성거림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어딘가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각양각색의 캐리어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어떤 건 크기가 컸고, 어떤 건 또 무지 작았어요. 그래도 다행히 네모난 바퀴는 보이지 않았어요. 이윽고 세 자리의 숫자가 귀에 들려왔어요. 적당한 산미와 적당히 잘게 부서진 얼음이 오랜만에 내 목젖을 때리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마침내 첫 모금을 목구멍 너머로 보낸 순간, 이곳의 카페인은 달라도 무언가 다른가 보다 생각이 들었어요. 원인 모를 아릿함이 눈물샘까지 뻗어 올라가 얇은 모서리를 툭툭 건드려 버렸거든요. 순식간에 두 눈은 베이글의 텅 빈 가슴처럼 동그래졌고, 알록달록한 세상을 계속 쳐다보다가는, 눈알이 빠져서 그 구멍에 딱 들어갈 것만 같아 보였어요. 하물며 갈색으로 입술을 조금씩 적실 때마다, 들뜬 감정들에는 구릿빛의 가뭄이 연이어 생겨났고, 공허한 베이글 아래로는 새빨간 피가 흘렀어요. 조금 뒤면, 높은 하늘 위에서 찬찬히 채워갈 수 있는데도, 좀처럼 예뻐 보이지 않는 구멍이었어요. 아직까지는 둥그런 것들이 어색한가 봐요. 외려 틀에 갇힌 어설픈 모양의 내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인간들이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허나 그 어쭙잖은 착각은 금방 사라질 거라 믿어요. 내 구겨져 있던 몸이 점점 기지개를 펼 테니까요. 나의 불발됐던, 그리고 유예됐던 작은 꿈들이 슬며시 눈을 뜰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결국엔 또다시 구겨지고 소외될 마음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