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손 응급수술을 했다. 분명 구급차에 실려오며 구급 대원은 봉합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를 안심 시키려는 하얀 거짓말이었나 보다. 피가 철철 흐르는데 살면서 이렇게 피를 많이 본건 처음이었다. 지혈도 소용이 없었다. 과다출혈로 죽는 사례도 여럿 봤는데. 아무래도 추리소설을 그만 봐야겠다. 옷은 피로 흥건히 젖어들어가고 점점 과호흡이 왔다.
‘’ 환자분 숨 쉬세요. 크게 숨들이 마셔요. 숨 쉬어야 해요. 산소 안 통해요. 의식 잃으면 안됩니다. ‘’
‘’인적사항 말해보세요. 이름이랑 주소 말해볼까요.’’
숨을 안 쉬고 패닉이 온 나에게 억지로 산소마스크를 씌운다. 응급실에서 소독을 위해 과산화 수소를 퍼부었다. 고통에 몸서리치며 아파하는 나를 간호사 세 명이 제지한다. 피가 걷히니 나의 손가락은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게 살점인지 피덩어리인지 구분이 안간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손 살점이 없어서 피부 이식 수술을 하자고 한다. 수술 전 주의 사항과 잘못되었을 경우에 대해 줄줄 읊는다. 의식이 흐릿해진다. 보호자 없는 병원에서 수술 동의서에 피가 흥건한 손을 덜덜 떨며 서명을 하는데 처음으로 독립 한 걸 후회했다.
다행히도 먹은 게 없어서 금식 시간을 고려해 수술이 자정에 잡혔다. 두 시간 남짓 남은 수술 시간 전 온갖 검사를 했다. 심전도, 피검사, X-RAY, MRI 등 시체 마냥 이리저리 몸을 굴려대는 간호사에게 사시나무 떨듯 떨며 진통제 좀 놔달라고 중얼거렸다. 제발 빨리 수술시켜달라고. 내 손에 감각이 없다고. 이성을 잃었다.
몇 번의 진통제 투입 이후 조금 진정된 상태에서 싸늘한 수술방 천장을 바라보며 손 감각이 안 돌아오면 어쩌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갑자기 지난주 죽음에 대한 글을 쓴 것이 떠올랐다. 나는 유언장을 썼던 것 같은데. 제대로 완성할걸. 인생은 정말 알 수 없구나. 깊은 공포감에 별별 생각이 스쳤다.
마취에 들기 직전 기도했다. 수술만 잘되게 해준다면 당신이 하지 말라고 경고를 보내오는 걸 다시는 무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참 간사하게도 벼랑끝에 몰리고 나서야, 당해보고 나서야 안다니. 이제 경험주의의 로크와 흄에 대한 맹목적인 경외심은 조금 덜어내야 하나보다. 보고 싶은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점점 정신이 돌아 오기 시작했다. 수술방 문을 나서니 부모님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수술 결과가 어떤지 말씀해 주는 걸 비몽사몽 듣다가 병실 베드로 옮겨진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를 비롯해 외부인은 면회가 금지라 혼자 병실에 남겨졌다. 끝났다는 안도감과 덜 풀린 마취에 정신이 아득해져서 그대로 눈을 감는다. 마지막 본 시간은 새벽 3시 28분이었다.
두 시간 남짓 잤나. 눈을 감았다 떴다 꿈뻑거리며 혹시 꿈은 아닐까 희망을 걸어 봤지만 입원실 천장과 링거가 꽂혀져 있는 오른손, 붕대 감고 있는 왼손이 차례로 꿈도 꾸지 말라는 듯 현실을 되짚어 주었다.
‘하- 망했다.’
이성이 돌아오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떠올렸다. 수습해야 했다. 하지만 병실에 갇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여름휴가는 처참하게 날아갔고, 여름휴가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3주가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사고 전날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먹었으니 내 몸이 원하는 휴가란 사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살의 괴사를 막기 위해 새벽 다섯시부터 하루 내 최소 12번의 바늘이 살갗을 뚫고 약물을 혈관으로 보낸다. 주사로 인해 온몸은 멍투성이다. 항생제와 진통제, 수액 그 밖 이름도 모를 약들에 취해 신생아 마냥 잠자기를 반복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고 또다시 눈을 뜨니 이미 어둑해진 오후였다.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휴대폰을 확인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부재중이 줄줄이 찍혀있다. 자동응답기 마냥 되풀이 해야 되는 대화를 떠올리곤 필요한 연락, 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연락 후 다시 현실을 외면하러 잠에 들었다.
담당의사가 밥을 잘 먹으라고 회진 때 엄포를 놓는다. 혈액이 말초신경까지 돌게 만들어야 한다고. 괴사되면 재수술입니다. 의사의 말이 귀에 왱왱거린다. 두 시간마다 오는 간호사 선생님들은 손가락 끝까지 피를 돌게 하기 위한 촉진제를 놓으며 혼을 낸다. 적외선을 계속 쐬라고 틀어주고 자리를 뜬다. 통증에 구역질이 나기 시작하면 무통제를 임의로 놓는다. 주말 오후, 엄마가 온다고 해서 최대한 자연스레 행동하려고 안 먹던 밥에 과일까지 먹으니 탈이 났는지 4시간 후 엄마를 보내곤 모조리 게워냈다. 병실 천장이 빙글빙글 돈다.
나는 나로 사는 게 참 피곤하다.
일 저지르고 수습하고.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삶이다.
비록 실제 존재하는 전쟁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이런 식의 비유는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