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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키 Feb 07. 2024

추억은 완벽했다

먹고 살자고 생존 여행3

새벽 6시 30분 빠당바이 항구로 출발했다. 앞으로 4일은 시간을 거스른 듯한 신비한 섬, 길리트라왕란에서 지낸다. 이곳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다. 교통수단은 마차와 자전거 그것도 아니면 튼튼한 두 다리뿐이지만 15제곱 킬로미터의 작은 섬은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으니 걱정은 내려놔도 좋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에 마음을 뺏기는 사이 캐리어를 끌어주며 호객행위가 시작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코 베이는 경험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으니 절대 마음 흔들리지 말자. 뜨거운 태양 아래의 섬 어디에서라도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그림이 된다. 지상낙원에 매혹되어 언제 아팠냐는 듯 이곳 발리에서 건강한 에너지를 마음껏 충전하며 몸도 마음도 살찌는 여유와 낭만을 즐긴다. 

 남편은 어디에서나 잘 자고 잘 먹는다. 언제나 새로운 곳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해도 꼭 탈이 나는 편인데 이곳에 오니 나를 꼭 닮은 아이들이 역시나 물갈이로 고생을 좀 했다. 하여 나는 저녁마다 오이를 갈아 마사지를 해주고 알로에 젤을 차갑게 한 뒤 몸에 발라 화기를 빼는 수고까지 해야만 했다. 로컬음식도 맛있는 남편과 음식에 예민한 4남매 사이에서 적당한 밸런스를 찾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이런 작은 수고스러움 정도는 어디에서나 흘러나오는 음악 들으며, 한 손에 빈땅 맥주를 들고 비트에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면 다 괜찮아졌다. 안전지대라는 팻말도 필요 없는 바다에서는 얼굴만 담그면 형형색색의 물고기를 만났다. 거북이들과 수영하고 비치가 보이는 카페에 누워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는 넋을 잃고 시간을 잊었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

 넓지 않은 섬이지만 그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항구 근처는 매일 밤 파티로 밤에 화려한 불들이 꺼지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15분가량 들어가면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우리는 무거운 캐리어는 맡기고 간단한 비치 용품만 배낭에 넣어 해가 넘어가는 바다 끝을 보기 위해 서쪽 끝으로 이동했다. 아름다운 일몰 앞에 자리 잡은 가성비 좋은 숙소는 음식 맛은 그저 그랬지만 끝내주는 전망과 넓은 수영장, 직원들의 친절한 응대까지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비치의 대형 스크린에는 추억의 영화가 밤하늘 별과 함께 흘렀다. 

 느리게 가는 시계처럼 여유를 부려본다. 호텔 내부에 있는 요가수업과 쿠킹클래스, 마사지를 받으며 쉬다가 깜깜한 밤 무수한 별들만 반짝이는 시간에 야시장 투어를 위해 자전거를 탔다. 흥 넘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곳곳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정찰제라는 메뉴판을 꺼내며 호객행위를 하는 곳. 그럼에도 흥정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눈치껏 흥정을 시작했다. 

“How much is this?”

“Very expensive!”

 콩글리쉬가 통하는 해외에서 자신감 뿜뿜 영어를 마구 쏟아내었다. 타이거 새우, 킹크랩, 숯불에 구운 이름 모를 생선들을 한국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길리섬의 야시장은 수백 마리의 파리 떼만 감당할 수 있다면 한 번쯤 와 볼 만하다. 우리는 킹새우와 오징어튀김, 숯불에 구워 매콤한 양념을 발라주는 붉은 생선구이와 함께 빈땅 두 병을 주문해 시원하게 들이켰다. 

 4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이른 아침, 무거운 여행 캐리어를 끌고 항구로 출발했다. 항구는 언제나 떠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스친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은 푸르고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설레임으로 가득하고 떠나가는 사람은 아쉬움에 눈길을 계속 돌리게 되는 곳. 그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장사꾼들의 소란스런 외침이 그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이곳을 눈에 담고 싶어 한참을 둘러보았다. 배낭에 몸을 기대고 누워 있는 사람, 그 옆에 담배를 피우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배낭객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포옹과 입맞춤을 나누는 연인들의 활기찬 에너지를 모두 기억하고 싶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들어오고 나가는 이방인들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이방인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마시고 농담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들은 적어도 4개국의 인사말을 구사한다.

“코리언?”

“Have a nice day”

“서울 알아요!”

“다시 또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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