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러길 바래?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H언니와 의견충돌이 생겼다. 이빨 튼튼한 언니에게 거의 9할은 물리는 일이 다수인지라 이번에도 그저 한번 물어뜯기면 되지 했다. 성격이 급한 탓에 퍼부어놓고 사라져 버리는 고등어같은 언니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속마음만큼은 진국인지라 지금까지 우리의 인연이 지속되고 있다. 물어뜯길때는 아프긴 해도…. 그래도 그렇게라도 뜯겨주는 척 있어야 언니 마음이 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견딜 수 있을 만큼은 감당해왔던 시간이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나는 언니의 워딩을 이해하고, 그 마음도 안다. 그래서 쉽사리 실망하거나 쉽사리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세상물정 모른다며 애태워하는 언니 마음에 내가 더 마음이 쓰인다. 나도 세상물정에 밝고 싶고, 영악한 여우처럼 살고 싶지만 천성이 그러질 못해서 말이다. 내가 구제불능이었던지 언니는 아침부터 문자질이다.
“니 인생 이제부터 니가 살아. 날 의지하지도 말고 날 찾지도 말고 굳건하게 살아라..”
자매처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살았어도 어려울 때는 언니를 찾을 수는 없었다. 나의 고질병이다. 정작 힘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손을 뻗어 아프다고 말을 못 하는 나의 불치병이기도 하다. 별달리 언니에게 답문을 보내지 않았어도 언니 마음이 좋지 않았던지…. 어울리지 않는 사과문자를 보내왔다.
“예민하고 아픈 너에게 화내서 미안하다. 너만 생각하고 살아. 너만 좋으면 돼. 굳건해라”
비장하기도 하고, 가슴 한 켠이 아리기도 하고… 그렇다.
내가 힘들 때 엄마도, 가족들도, 친한 지인들도, 그리고 그도 모두 같은 말을 해왔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 알겠지?
주변을 돌아볼 기운조차도 남아있지 않을 땐 그랬다. 나 자신을 기억하는 것조차도 버거울 때는 그랬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게 진심일까? 아니다. 아니,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나도 그러한 이야기를 곧잘 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너만 괜찮으면 돼. 아무 생각하지 마. 너만 생각해….’ 이런 말들을 참 많이도 해왔다. 후배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이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랑, 기다림 그리고 인내를 요구하는 말인지를 나는 미처 몰랐다. 깊은 굴에서 빠져나오기를 묵묵히 바라봐주고 용기를 주며 기다려주는 일. 천년만년 같은 그 무거운 시간을 그저 믿고 사랑하며 기다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몰랐다. 그러한 사랑을 받아왔음에도 말이다.
‘너만 생각해. 너만 좋으면 돼. 아무 생각하지 말고… 알겠지?’라는 말을 준비하며 되뇌어본다. 한 번, 두 번, 세 번.…그러나 이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사랑은 언제나 함께여야 하고, 아픈 것도 같이 이기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가, 나의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러하다.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내가 만져줄 수가 없어서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지면 그때는 오늘을 생각하며 따뜻하게 보듬어 안을 수가 있겠지.
‘너만 생각해’라는 말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에게도 또 세상의 모든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도 말이다.
“지금은 너만 생각해. 그리고 네 옆에 항상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