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기억나는 기억을 꼽으라 하면 생각나는 장면 하나가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언니는 나를 참 많이 미워했다. 나는 몸이 약했고 지금도 어릴 때도 크고 작은 병치레를 많이 했다. 언니는 그런 약한 나를 싫어했다. 엄마는 아픈 나를 더 감싸고 더 불쌍히 여겼다. 엄마의 사랑을 빼앗아간다고 느낀 언니는 엄마가 없을 때면 매일 같이 나를 때렸다. 이렇게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생 때도 매일 밤과 새벽을 울며 지냈고 때로는 친구에게 전화로 내 아픔을 이야기하며 몸과 마음의 고통을 달래기도 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3층에 있는 7반에 배정을 받았다. 7반 앞 복도 너머에는 3층 높이보다 높은 수직 절벽이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네모 반듯하게 잘 지어진 붉은 벽돌의 건물이 내 눈에는 높은 절벽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내 또렷한 기억은 바로 그곳에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힘들 일도 많았을 텐데, 왜 그때의 기억이 그렇게도 잊히지 않는지 나 또한 궁금하다. 복도 옆 창문을 넘어보며 여기서, "이 창문 너머로 떨어져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생 때, 학년에 올라가며 담임 선생님이 바뀌어도 매번 똑같이 시키는 일이 있었다. 학기 초가 되면 창가에 놓은 화분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하셨다. 내가 가져간 화분 중 기억나는 것 하나는 아이비이다. 아이비는 넝쿨을 만드는 별 모양 혹은 사람 손 모양을 하고 있는 식물이었다. 나는 하굣길에 자주 보았던 담쟁이덩굴도 좋아했는데, 그 때문인지 귀엽게 모여서 이파리를 피워내는 아이비가 마음에 들었던 거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복도 건너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가져갔던 아이비와 같은 반 친구들이 가져온 다른 화분들이 떠올랐다. 30센티가 채 되지 않던 창틀. 화분을 살짝 밀면 떨어질 거 같았다. 내가 그 화분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