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산곡거사 김정열 개인展 '인천 인물 列傳'에 부쳐
그의 그림에는 사랑으로 지켜온 제자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어온 지인들의 얼굴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기억과 마음이 담긴 글이 놓여 있습니다. 그림과 글이 나란히 놓인 이 전시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깊은 관계의 기록이며 교육자의 시선이 예술가의 감각으로 피어난 자리입니다. 교사는 학생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입니다. 사람을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작가의 태도는 오랜 교직 생활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실일 것입니다.
지난 두 번의 전시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인물화와 글의 결합입니다. 인물화는 눈에 보이는 얼굴을 드러내고 글은 그 얼굴에 깃든 보이지 않는 시간과 감정을 전합니다. 그리고 두 매체가 나란히 놓이면서 관람객은 인물의 외형과 내면, 사실과 해석, 재현과 기억을 동시에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관계성입니다. 인물화가 통상 한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이해되어 왔다면 김정열 작가의 인물화는 인물과 작가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작가의 글은 그 대상을 설명하거나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와 맺은 관계 속에서 느낀 감정과 사유를 그림과 함께 드러냅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작가의 삶의 일부이면서 공동체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전시는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 지역의 역사를 담아낸 공동체적인 기억의 장(場)으로 확장됩니다. 관람객은 그림 속의 얼굴들을 마주하며 느슨하게 연결된 공동체의 흔적을 발견하고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되새기게 됩니다. 예술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차원에서 의미를 지니게 되는 순간입니다.
김정열 작가의 인물화 전시는 한 지역의 사람과 관계, 나아가 그들을 둘러싼 공동체의 시간을 기록하는 시각적인 아카이브와 같습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지역을 이루는 소중한 얼굴들이자 한 시대의 생활사를 증언하는 주체들로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작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이야기를 세심하게 포착한 행위가 지역의 기억을 복원하고 확장하는 문화적 실천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가 여러 지역으로 확산된다면 공동체의 역사는 그 구성원들의 얼굴과 글로 생생하게 기록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기록들이 교류전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한 전시장에서 서로 다른 지역의 삶과 얼굴을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만약 인천의 작가와 다른 도시의 작가가 각각 자신의 지인을 그림과 글로 담아 함께 선보이는 전시가 열린다면 지역과 지역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공감과 연대를 나누는 장이 될 것입니다. 예술을 매개로 지역을 잇는 이러한 시도는 중앙-지역의 구도를 넘어서는 지역 간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되묻고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김정열 작가의 인물화는 사람이라는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그 지향점은 사회의 관계망을 회복시키는 예술의 힘을 증명하며 더 넓은 곳을 향합니다. 이번 전시는 한 사람의 얼굴이 지닌 깊은 힘과 그 얼굴이 기억과 관계의 기록임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추어 당신의 삶을 수놓은 소중한 얼굴들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 기억은 전시장을 나선 후에도 당신의 어느 계절을 아름답게 채우는 여운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