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각자 특성이 다 다르다는 게 특성이었다.
요미가 ‘어쩌다 만나 스르륵 사랑에 빠진 상대’라면 둘째인 쿠키는 ‘첫눈에 반한 상대’다. 요미와 함께 산 이래로 사람들에게 고양이 찬양을 하고 다니느라 바쁜 날들이었다. 화장실도 알아서 척척가고, 이름도 바로 알아듣는 고양이! 원할 때만 와서 한껏 애교를 부리고, 만족한 후에는 멀찌감치 떨어져 자기 할 일을 하는 고양이! 장난은 치되, 무얼 건드리면 떨어지거나 사고가 나는지 알고 조심하는 고양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고양이! 어쩌면 인간보다 똑똑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고양이!!
나는 세상 고양이들이 다 요미같은 줄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게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이라면 하나쯤 더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다들 ‘고양이는 하나보단 둘!’을 외치고 있었다. 역시 그렇지. 앉아만 있어도 예쁜 이 생명체가 둘이라면 기쁨도 두배일 거야.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회사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식당 앞에 놓인 벤치에서 쿠키를 만났다. 흰색과 검은색 털이 섞인 회색 눈, 손바닥만한 몸집에 잠시도 쉴 틈없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아기 고양이의 모습에 나는 넋을 놓았다. “저 고양이는 뭐에요!?” 메뉴도 시키기 전에 다급히 묻자, 잘생긴 직원분이 대답했다. “아… 제가 오다가 줏었어요.” 그렇구나, 잘 됐다. 고개를 끄떡이려던 찰나에 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집에 가는 길에 보호소에 데려다 두려고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지금도 보호소에서는 수십마리의 개와 고양이들이 매달 안락사를 당하고 있다. 그곳에 보내면 저 아이도 죽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저렇게 귀여우면 몇일만 있어도 입양보낼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구구절절 쏟아내는 내 말을 막으며 그가 친절한 웃음으로 마지막 대답을 했다. “저도 사정이 있어서요.”
사정, 누구나 사정이 있겠지. 그럼 저 고양이의 사정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런 생각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려는데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요미 때처럼 당장 반차라도 내고 구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후에 인터뷰 일정이 있어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내가 꼭 데리러 올테니 내일까지만 있어달라고 할까? 미친 사람처럼 보이려나?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아기 고양이의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서 사무실로 가는 길에 애인(지금은 결혼해서 배우자가 된)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대화창에 한바탕 호들갑이 일어났다.
애인: 헐!!!! 모야모야 엄청 귀여워!!!
나: 그치 귀엽지? 근데 오늘 보호소로 간대
애인: 거길 왜 가ㅜㅜ
나: 모르는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둘 수도 없고…
애인: ㅜㅜㅜㅜㅜㅜ
나: …
애인: ㅜㅜㅜㅜㅜㅜ
나: 너 지금 뭐해? 시간 돼?
그렇게 아기 고양이는 나의 파견자인 애인의 손에 이끌려 우리 집으로 입성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쿠키앤크림 같아서 이름은 쿠키가 됐다. 그렇다면 쿠키를 본 요미의 반응은? 뭐랄까, 한마디로 하자면 기절초풍? 안그래도 겁이 많은 요미인데, 어디서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났으니 놀랄만도 하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순둥이 요미가 하악질을 막 해대는 걸로도 모자라 자기 몸의 반도 안되는 쿠키를 솜방망이로 팡팡 때리는 걸 봤을 때 깜짝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쿠키의 반응이였다. 맞으면 죽은 척 하다가 일어나 요미를 또 따라가고, 하악질은 들리지도 않는지 요미 주변을 폴짝거렸다. 더더욱 기겁한 요미는 도망가고 쿠키는 그 뒤를 따라다니는 이상한 광경… 이 집에 원래 살던 고양이는 요미가 아니라 쿠키인가 싶을 정도였다. 내 무릎에 작은 배를 다 내놓고 대자로 뻗어서 자는 쿠키를 보고 나까지 혼란스러워졌다. 쿠키는 혹시 고양이가 아닌걸까?
요미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고양이라면 쿠키는 고양이가 아닌 게 분명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찰싹 붙어있는, 이게 고양이? 책을 읽으면 책을 물어뜯고 컴퓨터를 하면 컴퓨터 자판을 깔아 뭉개는, 이게 고양이?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은 무조건 올라가야하고, 그 위에 있는 건 뭐든 다 떨어뜨리는… 이게 고양이!?
알고보니 고양이는 각자 특성이 다 다르다는 게 특성이었다. 인간하고 마찬가지다. 하나로 정의내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다. 나는 이제 사회 생활을 하며 ‘인간이란 무엇일까’ 의구심이 들게 하는 일이 생기면, 집에 있는 요미와 쿠키를 떠올린다. 고양이도 그렇게 서로서로 다른데 인간은 더 하겠지.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일이야. 타인을 위해 내 특성을 바꿀 필요도, 나에게 맞추겠다고 다른 사람의 특성을 바꾸라 종용할 필요도 없다. 다른 건 다른대로 남긴 채 대-충 같이 살아버리는 우리 고양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