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2일 수요일

by 최규성

그냥 차에서 잘 걸 그랬다. 방이 어찌나 추운지 정말 벌벌 떨며 밤을 보냈다. 특히 방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자는 내내 몇 번이나 깨서 몸을 비벼대야 했다. 새벽 6시쯤 되자 새벽기도를 하러 온 듯한 신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방 앞에 놓인 내 신발을 보았는지, 문을 열어 누가 있는지 확인했다가 한참 후에 닫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묘한 긴장감 속에 아침을 맞이했다.


7시 30분쯤 눈을 뜨니 아이들이 김밥을 가져다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씻고 지도를 보며 김밥을 먹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침과 밤이 될 때마다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든 게 허무해지는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밤에는 잠자리를 찾지 못해 지쳐버린다. 이런저런 기분에 침낭 속으로 다시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가 9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더 머무르면 폐가 될 것 같아 짐을 정리하고 나오니 교회 안은 썰렁했다. 문이 잠긴 것을 보니 모두 외출하신 듯했다. 결국 감사의 메모를 남기고 교회를 벗어났지만, 죄송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어제 갔던 24시간 목욕탕 화장실에서 간단히 용무를 보고, 도서관에 들러 2시간 정도 컴퓨터를 하며 글을 올렸다. 12시부터 점심시간이라기에 1층으로 내려왔는데, 옆에 놓인 스포츠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파악할 겸 신문을 보고 있으니, 어제 성당 위치를 알려주셨던 아주머니께서 잘 잤냐며 안부를 물으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아주머니께서 내어주신 기름진(?) 파리바게뜨 고로케와 직접 타주신 커피를 먹고 나니 대충 점심이 해결됐다.


인사를 드리고 나와 마저 신문을 보는데, 이번엔 어떤 아저씨께서 커피 한 잔을 건네셨다. 자신도 예전에 여행을 많이 다녔다며, 내가 남 같지 않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셨다. 어제오늘 기분이 참 꿀꿀하고 힘들었는데, 그 말 한마디에 정말 큰 힘을 얻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부여를 가야 했기에 서둘러 출발했다. 얼마 걷지 않아 부여로 빠지는 40번 도로에 도착했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비를 피하며 '부여 태워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들고 서자마자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운 좋게 올라탄 트럭 라디오에서는 '최화정의 파워타임'이 흘러나왔다. 게스트가 무려 박효신과 테이! "오우, 이렇게 농도 짙은 두 가수가 한꺼번에 나오다니!" 감탄하며 귀를 기울이는데, 아저씨가 무심하게 채널을 바꿔버리셨다.


부여에 도착하자 아저씨는 여기까지 왔으니 박물관은 꼭 구경하라며 입구에 세워주셨다. 우산이 없어 설피설피 비를 맞으며 매표소까지 걸어갔다. 뭐, 양반은 비가 와도 뛰지 않는 법이니까. 입장료 400원이야 부담 없는 가격이었지만, 일단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매표소 누님께 부탁을 드려보았다. 안쪽 분께 여쭤보라기에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특별히 막는 사람도 없길래 '아싸!'를 외치며 구경을 시작했다. 학교 소풍 때는 건성으로 보던 유물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경이로운지, 조상들의 기술에 감탄하고 있는데 초등학생 무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을 보니 예전 수원에서의 기억이 났다. 동사무소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초딩 여자애들이 나누던 대화. "OOO 걔 정말 이쁜 척하는 거 같지 않니?" 그러자 옆에 있던 애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걔 이쁜 척하는 거 아니야! 귀여운 척하는 거야!" ...어쨌든,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고 잠시 쉬며 일기를 써 내려갔다.


박물관을 나오니 비가 제법 굵어졌다. 화장실에 들어가 배낭 밑바닥에 쑤셔 넣었던 우비 바지를 겨우 꺼내 입었다. 배낭이 젖지 않게 주황색 커버까지 씌우고 나니 내 몰골이 정말 끝내주게 화려했다. 카메라를 고칠 수 있을까 싶어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사진관 위치를 여쭤보니 길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다. 마침 길 건너에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있길래 매표소에 공짜 구경을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들어가라고 하셨다. 비를 쫄딱 맞으며 구경을 마치고 사진관에 갔지만, 부여에서는 고치기 힘드니 공주로 가보라는 답변만 들었다.


낙화암을 보러 부소산성으로 향했다. 이슬비에 옷 다 젖는다는 말이 딱 맞았다. 산성 안 사당에 앉아 계백장군을 포함한 세 명의 장군님을 보디가드 삼아 친구들과 전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비가 오고 시간도 늦어 잠자리가 걱정됐지만, 안개 사이로 보이는 금강의 풍경만큼은 정말 아름다웠다. 부소산성을 나와 걷는데,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녀석들이 오락실 앞에서 초등학생을 '다구리' 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눈에 힘을 주고 다가가자 녀석들이 내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근처 조왕사라는 작은 절에 들러 스님께 부탁드렸으나 절이 너무 작다며 고란사로 가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비를 뚫고 다시 부소산성 깊숙이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결국 성당을 찾기로 하고 길을 물어 성당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성당 사무실 직원은 '전례가 없다', '미리 연락해야 한다'며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10분간 빗속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사제관 초인종을 눌렀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나오셨지만 신부님이 연수를 가셔서 결정할 수 없다고 하셨다. 충청도 신부님들은 다 같이 연수를 가신 걸까.


고민 끝에 24시간 목욕탕을 찾기로 했다. 시장 안 순대국집 아주머니께 길을 여쭤보고 목욕탕 위치를 확인한 뒤, 다시 식당으로 당당하게 돌아갔다. 순대국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께 설거지를 해드릴 테니 밥 한 끼 부탁드린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흔쾌히 따뜻한 순대국을 말아주셨다. 마침 TV에선 올림픽 축구 예선전이 한창이었다. 식당 안 아저씨들과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분이 군대 시절 차인표와 함께 있었다며 훈련 끝나고 신애라와 찐하게 키스하는 걸 보고 확 돌았다는(?)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들려주셨다. 그 와중에 한국은 골을 넣어 6연승을 기록했다.


기분 좋게 밥을 먹고 아주머니께서는 설거지는 괜찮다면서 힘내라는 응원을 해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돈을 지불하고 들어와 배낭을 풀어보니, 안타깝게도 안쪽에 빗물이 스며들어 옷과 침낭이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앞으로는 비 오는 날 절대 걷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욕탕에 들어서니 '지하 157m 천연 암반수'를 사용한다는 커다란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넓은 욕탕에 손님이라곤 나뿐이라 마치 전용탕을 빌린 기분으로 느긋하게 때를 벗겨냈다. 개운하게 씻고 나와 TV를 보며 일기를 쓰는데, 순찰 중이던 경찰관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한 바퀴 슥 돌고 나가며 "얼른 자라"고 툭 한마디를 건네셨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 정말 잠자리에 들 때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면실을 향했는데, 문을 여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천장은 뻥 뚫려 빗물이 새고 있었고, 방 안은 습기로 가득해 구석마다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침대라고 놓인 것들은 싸구려 매트리스 몇 개와 눅눅해진 이불뿐이었다. 처음에는 독한 마음으로 그냥 자볼까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젖은 침낭을 다시 꺼내 덮고, 마른 수건으로 눅눅한 베개를 감싼 뒤에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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