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보호자가 되는 시간
엄마는 자의에 의해서인 건지 타의에 의해서인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독립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딸인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내가 보기에 엄마는 어떤 난관을 마주쳐도 길을 새로 뚫어내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목적지에 가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불도저 같은 사람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지 엄마와 함께 같은 길 위에 나란히 서서 다가오는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머리를 맞댄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머리가 살짝 돌았는지 내 돈 주고 엄마와 머리를 맞대며 순간순간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여행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뿔싸, 머릿속에만 있던 말이 방정맞게도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흔히들 말하는 모녀여행을 가자고 엄마에게 제안한 것이다.
나는 엄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대접받았다고 느낄만한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국내든 해외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늘 누군가를 챙기는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이었다. 언니들과의 모임에서는 총무라는 이름으로, 동년배들과의 모임에서는 회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 사이에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엄마는 늘 당신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인 여행을 해왔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엄마가 여행 준비를 하며 설레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여행을 자주 가지도 않거니와 가게 되더라도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이슈가 터질지 예측하고 그 이슈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모녀여행의 행선지를 도쿄로 정했다. 사실 나는 도쿄에 가본 적이 열 번도 더 넘었다. 내 처지만 놓고 생각해 보면 지겹지도 않나, 싶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본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엄마에게 나름대로 노련해 보이는 여행 가이드가 될 수 있는 도시가 도쿄라고 생각했기에 흔쾌히 도쿄를 여행지로 정했다.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나는 이른바 아주 만족스러운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엄마에 대해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귀찮아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던 것 같다.
“엄마, 음식 뭐 좋아해? 그럼 뭐 싫어해? 못 먹는 건? 걷는 건 어느 정도가 괜찮아? 전시 같은 것도 봐도 괜찮겠어? 식당에서 담배냄새 날 수 있는데 괜찮아?”
이미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걸 나에게 삼십 년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들켜왔던 사람이 당황스럽게도 무슨 질문에든 엄마는 다 좋아, 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엄마의 인생에서 당신의 취향이 무엇이냐고 나처럼 집요하게 물어본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또 하나의 합리적인 추측을 해보자면 지금까지 운영진 역할을 하며 당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행들을 많이 상대했었다 보니 취향을 낱낱이 고백했을 때 당신이 힘들었던 것처럼 내가 힘들어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생각 많은 엄마 덕분에 엄마의 취향 탐색전에서 나는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내가 집요하게 엄마의 취향을 파고 들려하면 엄마는 다 좋아, 라는 말을 방패 삼고 더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 냉큼 숨어버린 것이다. 마치 갯벌에 구멍을 내고 숨어버리는 맛조개처럼. 나는 맛조개를 유혹하듯이 엄마가 숨어 들어간 땅굴 주변에 맛 좋은 소금을 솔솔 뿌렸다. 그리고 마침내 출발하는 날짜가 다가오자 엄마는 그동안의 내 노력에 화답하듯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꼬치구이 파는 이자카야 가보고 싶어."
“아 맞다 엄마 장어덮밥 별로 안 땡겨.”
“음 너무 까다롭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엄마 못 먹는 회도 많아. 그래서 비싼 스시 안 먹어도 돼."
그렇게 지상 위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맛조개를 낚아채듯 나는 여행 계획을 짜는 동안 엄마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마구 낚아챘다. 어느새 엄마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이 내 바구니에 수북하게 쌓였다. 난생처음 한 사람으로서의 우리 엄마를 알게 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드디어 출발일이 다가왔고 엄마는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별생각 없는 태평한 마음을 안고, 딸인 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복잡한 머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혹시나 엄마가 힘들면 어쩌지, 불편해하면 어쩌지, 싫어하면 어쩌지, 하고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결론적으로 엄마가 진심으로 여행을 즐겼던 건지 아니면 가이드하느라 고생하는 내 모습을 봐서 장단을 맞춰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나와 여행하는 내내 해맑은 아이 같은 얼굴을 했다. 나는 엄마의 아이 같은 모습을 보고 기쁘면서도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평소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없었으면 이제야 이런 얼굴을 보여주는 걸까 싶어서 이제야 여행을 하자고 말한 게 내심 미안해졌다. 엄마는 작은 것에도 크게 기뻐하고 감동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런 점에선 엄마를 닮았구나, 싶어서 엄마 몰래 조금 기뻐했던 것도 같다.
그런 훈훈한 광경도 잠시, 나는 엄마에게 이거 조심해! 저거 하지 마! 이러면 안 되는 거야!라고 애기 엄마들이 아이를 타이르듯 엄마에게 자주 말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가 애냐, 라며 날 선 목소리와 함께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나를 째려보았다. 엄마는 생전 처음으로 보호자 노릇을 하는 이런 나를 보며 무척이나 어이없어했고 너무 웃기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조금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엄마보다 더 큰 당혹감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였다. 내가 엄마를 애취급 하고 있다는 게 내 스스로도 생경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엄마의 무지막지하고도 무조건적인 보호를 받았던 내가 엄마를 보호한답시고 잔소리를 하는 꼴이란 참 스스로 보기에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정말 재밌는 건 내가 해외에서나마 야트막하게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름대로 조금 뿌듯해하고 또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엄마는 독립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나머지 늘 혼자 많은 것을 떠안고 살았다. 하지만 사실 엄마는 태생부터 여린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종종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아니 고민을 나눌 사람이라도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말을 나에게 자주 했다. 나만큼 안쓰러운 엄마에게 나는 여태 아무것도 못해주다가 모녀여행을 하는 순간 비로소 엄마가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여행이 끝난 후에도 잠시 우쭐했던 것 같다.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걸 상기시켜보면 그리 우쭐할 만한 것도 아니지만. 항상 모래 안으로 쑥 들어가 숨고선 어떻게 하면 남들이 더 빛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우리 엄마. 그런 엄마에게 지난 여행이 기억 속에 두고두고 남아 당신을 조금 편히 숨 쉬게 해주는 한 줌의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