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외국인 친구로부터 받은 뜻밖의 러브레터

나보다 더 나를 아껴주는 친구를 만나는 행운

by 건빵진소라

내 인생에 있어 미국 유학은 실패한 축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해외 자체를 기피하게 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학생 때 나는 정부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해외인턴십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또 한 번의 도피를 꿈꾸며 호기롭게 지원서를 제출했다. 커리어나 미래에 대해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 머리를 쥐어뜯던 시기였는데 이참에 타지에 나가 머리를 식히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미국 유학에서의 실패를 만회해 보라는 건지 아니면 치열했던 삶은 좀 내려놓고 즐기다 오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하늘은 어떤 뜻을 가지고 나를 도왔다. 몇 개월 후 나는 다방면에서 나름대로 지원을 받으며 약 4개월 동안 영국에서 만족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누렸다. 이 특별한 기회는 우리 학교에서 막내인 나를 포함해 오빠 한 명과 언니 세 명, 총 다섯 명이 받게 되었다. 영국에 도착해서는 아무래도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보니 우리는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4개월의 시간 동안 언니 셋은 같은 숙소를 썼고 오빠 하나는 그 인근 건물에서 생활했다. 나는 이참에 영어라도 늘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언니 오빠의 보금자리와 거리가 먼 사설 기숙사에 방을 구했다. 뭐, 매일 언니들 숙소에 다 같이 모여 새벽까지 술을 퍼마시다가 영국에서마저 첫차라는 것을 타고 방으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런던에 소재한 대학교 어학원에서의 영어 교육 과정과 그 후 개개인이 어학원을 통해 조금 늘어난 영어 실력으로 직접 면접을 봐서 합격하는 회사에서의 인턴십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일단 각자의 레벨에 따라 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에 참여한 첫날 나는 콜롬비아, 터키, 이탈리아, 일본 등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참여하는 파티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장소는 클럽이었는데 지금에서야 고백해 보자면 나는 태어나서 클럽 근처에 얼씬 거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뜩이나 개방적인 외국인 친구들에게 뭣도 모르는 애송이 취급을 받을까 봐 나는 애써 태연하게 런던에서 클럽을 가보게 되다니 기대된다, 하고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날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몇 없는 선택지 중에 그나마 그럴싸한 옷을 골라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섰다. 사실 런던에 온 지 일주일도 채 안된 시기였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먹잇감이 될지도 몰라, 하며 경계태세였던 나는 어둡고 시끄러운 클럽에 있는 내내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어차피 춤도 못 추는 편이었으니 술이나 깔짝대자는 심산으로 망부석처럼 한 곳에 자리를 틀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흘러가는 상황을 관망하다가 아뿔싸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렀다. 막차를 놓치기 일보 직전인 그때 나는 친구들에게 재빠르게 인사를 하고 후다닥 클럽을 빠져나왔다. 평소에 잘 신지 않는 구두를 신고 나왔더니 뒤꿈치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에잇, 하고 나는 신데렐라처럼 구두를 벗어 손에 덜렁덜렁 들고서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런던 골목골목을 가로질러 뛰었다. 골목에 나앉아있던 노숙자 선생님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나는 전력질주를 했다. 다행히 런던의 청소부 선생님들께서 낮동안 길바닥을 깨끗이 청소해 두었는지 나는 발바닥에 가시하나 박히지 않고 무사히 그날의 마지막 버스에 올라탔다. 뭐, 집에 와서 보니 발바닥이 아스팔트처럼 시커매서 원상복구를 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다음 날 나는 코가 잔뜩 높아져서는 영웅담을 늘어놓듯 친구들에게 이 신데렐라 에피소드를 뽐냈고 친구들은 우리 반에 심상치 않은 놈이 왔다는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중 콜롬비아에서 온 산티라는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달리 반짝반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 입으로 말하기 참으로 민망하지만 산티는 그 이후로 나를 흠모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이후로 수업이 끝나면 산티를 포함해 같은 반 친구들을 우리 기숙사 라운지에 자주 대동했다.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 중인 언니들과 오빠도 그 자리에 자주 함께 했다. 그렇게 술 좋아하고 수다 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기숙사에 자주 모여들었고 서서히 고정멤버가 생겨났다. 콜롬비아에서 온 산티, 태국에서 온 루스, 터키에서 온 에밀, 그리고 나. 세 명의 소년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이 생긴 내가 그들과 몇 개월 동안이나 만나 시간을 보냈고 외국인 친구와 이렇게나 친해질 수 있나, 신기할 정도로 돈독해졌다. 우리는 고정적으로 어울리면서도 객원멤버들을 적극 환영했다. 그렇게 어학원에서 교육 과정을 듣는 동안 나는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주요 인물로 꼽을 수 있는 산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 역대급이었던 긍정왕이었다. 그는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초연하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고 신기하게도 어떤 경우에서든 그 상황이 자신의 인생에 일말의 도움이 되었다는 의미를 잘도 찾아내고 그 의미를 곱씹으며 음미하곤 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한 번은 억지스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그는 허허 웃으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사건 하나가 또 영광스러운 훈장처럼 자신에게 남겨졌다고 말했다. 산티 덕분인지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어느 순간 그 감정의 수레바퀴에 물들어 런던에서 한 긍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와 산티는 각자의 일상에서 얻게 된 훈장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럴 때면 상대의 훈장이 나의 훈장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서로의 훈장을 공유하며 본래 각자가 가지고 있던 긍정 경향성이 더 증폭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추측을 해본다. 우리는 그렇게 인생을 잘 살아내는 레시피를 자주 공유했고 둘 중 누군가 조언이 필요한 순간을 맞이할 때면 서로에게 양념을 쳐줬다.

이런 좋은 친구가 있었는데도 나는 자주 외로웠고 불안했다. 런던은 낭만적이고 멋진 도시였지만 그 안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단 외국어로 둘러싸인 환경이 주는 묘한 이질감은 내가 이 도시의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자주 떠올리게 만들었다. 건물의 모양, 바닥돌의 질감, 그리고 숨 쉬게 하는 공기까지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환경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에 더 그랬다. 게다가 모든 영국 남성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경우 혼자 다니는 아시아계 여성인 나를 보고 자주 다가와서는 개구진 표정으로 나에게 전화번호를 물었다. 오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불순한 의도가 다분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느 순간 런던이라는 도시에 푹 젖어들지 못하고 그 위를 간신히 떠다니면서 떠나지도 못하는 기름쟁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늘 초조해했다. 어떻게 주어진 기회인데 내가 충분히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자주 되물었다. 본전은 뽑아야 할 텐데,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때였다. 친구들과 마지막 술자리를 가졌다. 친구들은 나중에 한국에 가게 되면 연락하겠다고, 그동안 즐거웠다고 말했다. 시원섭섭한 마음에 나도 술을 진탕 마셨다. 그러곤 다음 날 아침 숙취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던 그때 산티에게서 연락이 왔다. 해장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 어떻냐는 메시지였다. 나는 술에 찌든 몰골을 하고 강변에 있는 카페에서 산티를 만났다. 우리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각자 손에 한 잔씩 들고 강이 훤히 보이는 다리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산티는 그동안 내 덕분에 너무 즐거웠다며, 언젠가 또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전날의 술자리에서 이미 거쳐갔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산티는 나와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 더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던 찰나에 산티가 먼저 연락해 주어서 참 고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앞날에 행운을 빌며 가볍게 포옹을 하고선 헤어졌다. 그날 저녁 짐을 싸고 있는데 산티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 메시지 내용은 대략 이랬다.

“소라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어. 너는 평생 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을 거야. 언젠가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게.“

영어로 된 러브레터를 받는 건 처음인지라 언어가 주는 뉘앙스를 정확하게 다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우정보다는 사랑에 가까운 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하지, 기분이 묘했다.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에게마저 사랑받지 못하고 있던 때에 되려 다른 누군가에게 열렬한 애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이하다고, 있을 수 없다고 여겨졌다. 어쩌면 런던의 한복판에서 한없이 바닥으로 푹 꺼지고 있던 나를 순수한 소년 한 명이 뜬눈으로 지켜보며 내가 가라앉을 즈음이면 뜰채로 건져 올려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산티에게 최대한 멋진 안녕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긴 분량에 너무나도 충실히 반영된 것 같아 조금 민망했지만 어쨌든 진심이 잘 전달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뒤로 산티와는 서로를 약간 잊게 될 즈음이 되면 몇 번 망설이다가 안부 인사를 묻게 되었다. 산티는 여전히 밝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살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이렇게 멋진 삶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에게서 한때 따뜻한 애정을 듬뿍이나 받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면 간질간질한 러브레터는 그런 것이었다. 그 사람이 분명 나의 모든 면을 아는 건 아닐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내면의 면모들을 알알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진가를 누구보다 많이 발견해 주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이 든다. 내가 스스로에게 실망해도 누군가가 나를 좋게 보았으니 아직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마저 든다. 산티라는 사람은 몇 년이 지나 연락을 거의 안 하다시피 하는 지금에서도 나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러브레터가 그 시절의 소년 대신 내 마음에 남아 두고두고 나를 뜰채로 계속 건져 올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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