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자아실현하려는 나, 순진한 건가요?

지독한 이상주의자의 복잡한 속사정

by 건빵진소라

“소라 너는 좋겠다. 진로를 빨리 정했잖아. 근데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는 언제부터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나 친구들은 부러우면서도 신기하다는 듯이 내게 자주 이렇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답했다.

“글쎄. 그냥 재밌어 보이던데?”

정말로 그랬다. 물론 나의 진로는 ‘그냥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내가 직접 선택한 것이기도 했지만 실상은 엄마 아빠의 철저한 입김이 가미된 결과이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광고대행업, 그중에서도 광고물 제작업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엄마 아빠에게 일을 주는 거래처, 즉 광고주 아줌마 아저씨들을 종종 보면서 자랐다. 광고주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나와 동생을 자주 인사시킨 엄마 아빠도 신기하고 거래처 대표 내외의 자식들과 마주치는 걸 딱히 마다하지 않았던 광고주들도 신기하다. 뭐, 따지고 보면 광고주 아줌마 아저씨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다기보다는 엄마 아빠 회사가 이사를 할 때마다 아는 지인들을 싹 다 초대하는 파티를 열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파티에서는 늘 어린 나와 동생이 최연소 손님이라는 이유로 어른들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어른들과 노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니 엄마 아빠 회사가 또 이사를 간다고 하면 곧 있을 파티에서 무슨 원피스를 입어야 하려나, 고민하느라 며칠이나 밤을 지새웠던 것이겠지.

아무튼 나는 어려서부터 광고나 광고주라는 말을 “밥 먹었어?”라는 말만큼이나 자주 듣고 자랐다. 거의 매일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나름대로 진로 결정권이 생겼다 할 만한 나이가 되자 엄마 아빠는 친한 광고주 아저씨 한 분께 어느 날 한두 시간만 시간을 내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를 만나 가볍게 진로 상담을 해달라고 말이다. 그 광고주 아저씨는 엄마 아빠가 입 밖으로 굳이 내뱉지 않아도 본인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단번에 파악한 것 같았다. 엄마 아빠는 광고대행업이 업종 특성상 지니고 있는 치열한 역학관계에서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당신들이 자처해 온 을보다는 갑이 되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니 광고주 아저씨와의 만남을 주선한 거겠지. 아저씨와 티타임을 하며 나는 마케팅에 대해 그동안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아저씨는 친절하게 하나하나 정성껏 대답해 주셨다. 아저씨가 워낙 젠틀해 보이는 사람이라 그런 건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케팅이 꽤나 흥미로운 학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저씨와 만난 이후로 나는 경영학과에 가서 마케팅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그 뒤로는 다소 뻔한 전개다. 경영학과에 가서 마케팅 강의를 들어보니 예상대로 내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주제였고 나는 관련된 대외활동들을 닥치는 대로 지원했다. 그리고 운 좋게 몇 곳에서 의미 있는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 진로는 아주 미세하게 조정되었다. 마케팅의 범위 안에서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직업으로 나는 광고기획자를 꼽았고 결과적으로 광고주가 아닌 대행사, 즉 을의 입장이 되었다. 엄마 아빠는 당신들의 을로서의 숙명을 안타까워하며 살아왔음에도 나의 결정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내가 진로에 있어서만큼은 확고한 무언가가 있었던 만큼 나의 선택을 묵묵히 지켜보신 것 같다.

광고기획자는 업계에서 AE라고 부른다. AE는 Account Executive의 약자인데 이 직업이 이렇게 불리게 된 데에는 여러 유래가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광고주의 계좌(Account), 즉 마케팅 예산을 집행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 제일 공감이 된다. AE는 광고주의 마케팅 예산,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돈은 브랜드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해 어떤 메시지를 어떤 형태로 타깃 소비자들에게 전해야 하는지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에 사용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캠페인이라고 부른다. AE의 역할은 쉽게 말하면 캠페인 하나가 작은 태동을 보이고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총괄하는 사람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우고 전략을 기반으로 제작팀을 설득하고 제작팀이 설득하는 크리에이티브를 가지고 광고주를 설득하며 궁극적으로는 광고주가 설득된 크리에이티브를 가지고 소비자들을 설득한다. 그리고 이 지독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굴레가 나를 미치게 한다. 좋게 말하면 정복욕을 자극한달까.

이상한 데에서 정복욕을 느끼는 나의 성향을 보면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광고기획자로 일하면서 대체로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경주마 같이 일한다”거나 “뼛 속까지 계획형 인간이다”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 편이다. 특히 첫 회사의 사수와 우리만의 광고대행사를 차린 이후에 그런 피드백을 더 많이 듣게 되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에 빠지면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업을 시작하고 많이 느꼈다. 여느 때처럼 캠페인 론칭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동업하는 선배가 같이 앉아있는 책상을 가볍게 똑똑 쳤다. 나는 몇 시간 만에 충혈된 눈을 모니터에서 떼어내고 선배를 바라보았다. 선배는 말했다.

“야, 너 화장실 좀 갔다 와. 너 몇 시간째 화장실도 안 갔어.”

나는 순간 이해를 못 하다가 퍼뜩 일어나서 고장 난 로봇처럼 어버버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다. 한번 앉아서 일을 시작하면 나는 끝장을 보고 싶어서 화장실도 꾹 참고 일을 한다. 그러다 방광염에게 혼쭐이 난 이후로 자제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즐겁다. 즐거운데 잘하는 것 같다며 인정도 받는다. 아, 인정을 받아서 즐거운 건가? 선후관계는 알 수 없지만 남들의 인정과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빛 좋게 어우러지며 이 일에 대해 애착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좋아하는 일이 취미가 아닌 돈을 벌어야 하는 본업이라는 점에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프로젝트, 회사의 좋은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는 프로젝트, 돈도 안되고 포트폴리오도 안되지만 그냥 끌리는 프로젝트가 보인다. 내 스스로 순진한 사람이라는 걸 고백하는 것 같아 망설여지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돈이나 포트폴리오보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끌리는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사업 초반에는 동업하는 선배와 의견 대립이 좀 있었다. 선배는 어느 날 나한테 말했다.

“우리가 자아실현하려고 사업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속이 턱 막혔다. 나는 자아실현하려고 사업한 건데, 속으로 궁시렁거리면서. 며칠 후 나는 반격을 가했다.

“저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서 회사 나와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 근데 그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하자, 라고 선배도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휴,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로 자아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미련해 보인다는 식으로 사회는 종종 말한다. 일은 단순히 돈 버는 수단일 뿐인데, 왜 이걸로 그렇게 성취감을 느끼려고 하는 거지? 하면서. 일에서 쓸모 있는 인간이 된듯한 감각을 느끼고 일에 조금 미쳐있는 나를 아무래도 작아지게 만드는 말이다. 그렇다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 거지?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고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계급에 따라 일의 목적이 달랐다고 한다. 일은 노예들에게는 돈을 벌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었고 장인들에게는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 표현의 수단이었으며 귀족들에게는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네트워킹의 수단이었다. 어쩌면 사람이 태어나서 매겨지는 계급에 따라 일은 하나의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계급 사회가 붕괴되었고 평등해진 사람들에게 일은 세 가지의 목적을 동시에 가진 복합적인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는 추측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지만 일을 통해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하고 싶어 했고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어떤 가치에 더 높은 중요도를 두는지는 다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책으로 접했을 때 나는 내가 지금껏 내가 왜 이렇게나 일에 대해 고민을 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광고기획자라는 일을 앞서 말한 일의 세 가지 주요 목적 중 굳이 꼽자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많지도 않을 기량을 조금이나마 뽐내보려고 이런저런 선택을 하는데 자꾸 돈 버는 수단이라는 본질적 의미가 내 마음에 걸렸을 테다. 태어날 때부터 지독한 이상주의자였던 나는 돈이라는 현실적 제약 앞에서 내 일을 좌절시키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성향 상 돈을 따라다니는 게 사람들의 눈에 비굴해 보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여전히 일의 목적별 중요도를 어느 정도로 분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우연히 어떤 감독님을 만났다. 수염이 그득한 해적 같은 남자분이었는데 예상 밖이라고 해야할지 예상대로라고 해야할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는 일을 통해 저를 증명하고 싶어요. 그게 저한테는 너무 중요해요.“

나와 비슷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을 만나다니! 반가운 마음에서 나도 말했다.

“어머, 저희 너무 비슷하네요! 저희 매일 그러거든요. 우리 이름 내걸고 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진짜 잘해내자고요.“

돈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말하는 지극히 계산적이고 건조한 이 행성에서 나는 무모하리만치 자신의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미련하다기보다 그저 귀하게 보인다. 이 행성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고 겉도는 나 같은 외계인이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같은 지향점을 가진 또 다른 외계인을 만났을 때의 안도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사는 삶도 있을 수 있는거야, 라고 생각하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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