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여덟 번 술을 마시는 사람의 상담일지

by 건빵진소라

부끄럽지만 나는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매일 술을 마실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뻥 하나 보태지 않고 매일매일 술을 마신다. 전날 마신 술로 토를 대여섯 번 하지 않는 이상 꼭 술을 챙겨 마신다. 챙겨 마신다고 하니 몸에 엄청 좋은 귀한 영양제를 먹는 것 같이 말하는 것 같아 민망도 하지만 아무튼 술을 마시지 않는 예외 상황이 있다면 건강검진 전 날 정도다. 의사 선생님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선생님들이 술 먹지 마세요, 라고 말씀하시면 나는 왠지 모르게 새초롬해진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면 나는 흠흠 노력해볼게요, 라고 할머니한테 혼난 할아버지처럼 머쓱하게 대답한다. 평소에도 이런데 건강검진 전 날 마시면 바로 들킬 게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에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를 사서 듣지 않기 위해 나는 그 하루는 꼭, 꼭, 참는다. 의사 선생님도 싫은 소리 하실 일이 하나 줄었으니 서로서로 좋은 것 아닐까. 이렇게 늘 서로서로 좋은 상황이면 참 좋으련만. 또 한 번 용기 내어 고백하자면 나는 일을 하면서도 술을 곧잘 마신다. 제안서를 정리하거나 아이디어를 펼쳐야 할 때 주로 마신다. 술을 마시면 생각보다 생각이 정말 잘 굴러간다. 내가 좋아하는 반 고흐가 왜 그렇게나 술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든다. 동질감이 느껴져서 괜히 우쭐해진다. 허 참, 취한 주제에.

이렇게나 대책 없는 나도 한때는 달력에 스마일 스티커를 붙이는 루틴이 있었다. 술을 꾹 참고 참고 버티다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할 것 같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오늘은 드디어 마시지 않았다!’ 속으로 환호를 내지르는 날이 아주 드물게 있기는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를 대단히 칭찬해주고 싶어서 그날의 날짜를 가리키는 숫자 위에 훈장처럼 앙증맞은 노란색 스마일 스티커를 하나 붙였다. 나를 대견하게 여겼던 마음의 크기에 비해 별 볼 일 없는 스티커였지만 하루 정도 술 마시지 않았다고 이렇게까지나 스스로를 기특해하는 내 모습이 행여나 남들이 봤을 때 정말 알코올 중독자처럼 느낄까봐 일부러 하찮은 스티커를 골라 붙였던 속사정이 있었다. 이런 루틴이 있었던 걸 보면 나름대로 술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던 시기란 말인데 야속하게도 열두 장의 달력을 넘기는 동안 스마일 스티커는 대체로 숫자에게 둘러싸여 내내 외로워했다. 웃는 표정이 안쓰러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자신들의 쓸모가 겨우 알코올 중독자 하나가 술 하루 안 먹었다고 기뻐하며 붙여대는 용도였다는 걸 알면 가뜩이나 종잇장 같은 마음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지지는 않을까, 지금 와서 위선적 이게도 별 걱정이 다 든다.

이런 음주 습관을 봤을 때 누가 봐도 상태가 영 좋지 않다고 생각하겠다 싶어서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상담 선생님은 명쾌하게 바로바로 답을 내려주시던 평소와 달리 몇 주의 시간을 들여 대화를 이끄셨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뭐든 흘려대며 꺽꺽 울어댔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다양한 소자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이 좋으면서도 싫은 건 그것을 좋아하는 자아와 싫어하는 자아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중인격이라는 말에 경계심을 가지고 거리감을 느끼지만 사실 모든 사람은 다중적인 인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생님께서 내가 술을 마시기 전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셨을 때 나는 언뜻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며 갑자기 머릿속에 하얀 막대기가 생각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다. 한창 감정에 대한 깊이 있고도 진중한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웬 하얀 막대기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귀한 상담을 망치는 것만 같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상담이 깊어지자 나는 하얀 막대기의 충격적인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이미 한창 뚜들겨 맞아서 온몸이 퉁퉁 부어있는데도 계속해서 나를 사정없이 뚜들겨 패는 하얀 막대기. 하얀 막대기는 굳이 표현해 보자면 나를 검열하는 소자아이자 하나의 인격이었던 것 같다.

하얀 막대기의 실체를 마주하고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나 스스로를 이렇게나 채찍질하는 자아가 존재하고 있었다니. 처음엔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생각해 보면 놀랄 것도 없는 일이었다. 말하기엔 여전히 참 민망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부분 부분을 못마땅해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이 정도 나이 먹고 이것밖에 못 해, 대표인데도 이 정도 능력 밖에 없어, 이것도 부족해 저것도 부족해, 지금까지 뭘 하고 산 거야, 난 사랑받을 자격도 없어, 저 사람이 날 버려도 할 말 없는 거야. 내 안의 하얀 막대기는 나의 다른 자아들에게 이렇게나 잔인한 말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부어댔다. 이 정도면 거의 저주였다. 그럴 때면 내 안의 자아들은 대체로 귀를 막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화도 못 내고 슬퍼만 했는데 그때 눈을 희번득 뜨는 자아가 있었던 것이다. 저놈의 하얀 막대기가 뭐라고 씨부리나, 벼르면서. 그렇게 하얀 막대기를 잠재우기 위해 나에게 술을 먹이는 자아가 탄생했다. 술을 먹이는 자아는 내가 스스로를 깎아내리면서 슬퍼할 때, 누군가에게 쉽게 버려질까 봐 두려울 때,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를 안쓰럽게 느낄 때 주변의 다른 자아들에게 깨어나기 쉽지 않은 마취총을 쏘아대고선 내 마음의 무대를 장악해 버린다. 그러곤 나의 핵심 자아에게 크게 소리친다, 그냥 술 먹고 잊어버려! 문제는 이성적인 축에 속하는 자아들이 모두 마취총에 맞고 부재 중일 때 발생한다. 내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술이 나를 먹는 상황까지 마셔버리는 거다. 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하얀 막대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무대 위로 올라와 마취총 자아를 밀쳐낸다. 너 이 정도 나이 먹고 또 이렇게 술 먹고 나자빠졌니, 대표인데 이렇게나 자기 관리를 못해서야 쯧! 그렇게 하얀 막대기와 마취총 자아 사이에서 충동과 자책의 무한굴레에서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원리를 깨닫고 상담실에 있는 미용티슈를 삼분의 일 정도 쓸 정도로 울어 제꼈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놀라워서 잠시 몰래 경악했던 것 같다.

“소라 씨, 그런데 말이에요. 술 먹고 싶게 만드는 자아에게 감사해야 해요. 소라 씨의 아픔과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어서 노력한 거니까요.”

알코올 중독일지도 모르는 내가 나에게 술을 먹게 하는 마음에게 감사해야 한다니.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가 서서히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고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다. 내 마취총 자아는 내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닌자처럼 순식간에 나타나서 주변의 자아들을 다 처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나.

부끄럽지만 나는 여전히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다. 매일 혼자 와인 한 병 아니면 맥주를 큰 캔으로 네 캔 이상 마신다. 네 캔 묶음 할인을 상시로 하는 편의점 브랜드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매일 마시다 보니 사람들과 마실 때에도 퍽 잘 마시는 편이다. 해장술 같은 메커니즘이랄까. 소주를 마시든 맥주를 마시든 사케를 마시든 막걸리를 마시든 위스키를 마시든 고량주를 마시든 와인을 마시든 뭐가 됐든 술이면 나는 다 좋다. 술은 맛도 좋고 마셨을 때의 기분도 좋다.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가라앉고 있던 나에게 뜨끈한 공기를 불어넣어 수면 위로 둥실둥실 떠오르게 만드는 것만 같다. 아주 침잠해 있던 나라도 술을 마시면 금세 날아갈 것만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여전히 하얀 막대기도 술을 마셔대는 이유에 포함되어 있냐고 묻는다면 아주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다.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는 하얀 막대기가 아직도 틈만 나면 나를 흠씬 두들겨 패버리니 말이다. 내 인생은 하얀 막대기를 있는 그대로 품었을 때 비로소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가 예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일을 잘 마친 게 뿌듯해서,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일을 잠시 잊고 싶어서, 내 스스로가 대견해 상을 주고 싶어서, 낭만을 즐기고 싶어서 등등. 어떤 이유를 대든 알코올 의존, 심각하게는 중독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고 전부 술 마시려는 핑계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술을 마시게 하는 내 마음에게 오늘도 고맙다. 나를 지키려고 제 딴에는 엄청 노력 중인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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