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영혼
연휴 내내 비가 내렸다. 그래도 연천추모공원으로 가는 날 이른 새벽부터는 거의 멎어 이슬비처럼 내렸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고 혼잣말을 했다. 북쪽으로 뻗은 자유로는 한산했다.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도로 양쪽에 모내기를 하려고 써레질을 해놓은 논들이 펼쳐졌다. 추모공원 입구부터 철쭉과 영산홍이 한창이었다. 가랑비를 맞아 잔디는 촉촉하게 푸르렀고 그 위에 열 지어 서있는 소나무들은 노란 송화를 품고 함초롬히 빛나고 있었다. 비를 맞아 깨끗하게 씻긴 그의 돌비석을 내려다보다 잔디밭 사이에 빠끔히 솟아오른 잔디 아닌 풀들에 눈길이 가 주저앉아 하나둘 뽑아주었다. 우리 말고 저쪽에 또 한 가족이 보였는데 그들은 아예 커다란 파라솔까지 가지고 와 펼쳐놓고 있었다. 올 때마다 비석이 늘어났었는데 이번엔 아예 빈 소나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2년 사이에 그곳은 저 너머로 간 사람들의 어느 한 마을이 되었다.
정종 한잔씩 부어 그의 돌비석을 적셔주었다. 이번 길에 동행한 현은 술을 붓고 말했다. 해마다 가장 좋은 계절에 형님을 뵈러 온다고,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그곳 세상은 어떠냐고, 아마도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나는 구름이 꽉 찬 하늘을 쳐다보았고 아들은 머리를 돌리고 안경 밑 눈가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그의 소나무 밑동을 잡아보았다. 딱딱한 껍질이 손바닥에 마쳐왔다. 문득 토분에 담겨 이 소나무 밑에 묻혔던 그의 가루들이 이제는 진액이 되어 이 딱딱한 밑동을 지나 푸른 잎을 거쳐 이 세상에 다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아마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참이나 그의 소나무와 함께 앉아있었다. 자리를 접고 내려가기 전 다시 몸을 돌려 두 팔 가득 나뭇가지를 끌어안아 보았다. 함초롬히 맺혀있던 물방울들이 내 옷자락에 후드둑후드둑 떨어졌다. 그가 울고 있는가.
가랑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연휴 내내 내린 비로 임진강은 드넓게 물이 불어나있었다. 오두산전망대를 끼고 달리면서 아들이 말했다. 강 건너 저기 뿌옇게 보이는 산이 이북이라고. 현과 양이 머리를 돌려 그 산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아들은 건너갈 수 없는 땅이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이쪽저쪽 넘나들고 있을 것이다. 차 안에서 현과 양 그리고 아들에게 인간의 의식이 프로그램으로 백업되어서 육체가 죽어도 의식은 영원하게 될 세상이 앞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뜬금없이 말했다. 그런 시대가 오면 영혼과 영원은 같은 의미가 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또 머리를 가로저었다. 육체가 없는 의식의 영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유만 하고 행동이 없는 영원은 그냥 프로그램 일뿐이지. 억겁을 기다린 끝에 자연에 태어나 서로 좋아하고, 미워하며 한 세상 살다가 자연으로 스러지면 다시 억겁을 기다려야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인간의 이 한 세상살이는 찰나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세 사람은 듣기만 하고 나는 혼자 묻고 대답하고 있었다.
이슬비가 차창 밖 유리에 끊임없이 내려앉고, 해가 없어 노을도 볼 수 없었다. 리처드클래이더만의 ‘아나스타샤 킴스키 최후의 날’ 피아노곡이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몇 년을 더 이 세상에 살고 그의 소나무로 갈 수 있을 것인지도 생각했다. 한 20년? 이것은 찰나의 또 찰나의 순간이겠지.
내가 좋아하는 김훈 작가의 장편소설『내 젊은 날의 숲』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 본다.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
2024년 5월 10일 밤 신관복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