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야 Jan 06. 2023

우리, 이마

우정하는 존재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된 ‘은’과는 거의 1년 만의 재회였다.


다시 만났을 때 늘 이마를 보여주고 다니던 너는 시스루뱅을 내렸고, 늘 앞머리를 잔뜩 내리고 다니던 나는 머리를 넘긴 차였다. 절대 이마를 보여주지 않던 나와 이마를 감춘 적 없던 너. 상황이 바뀐 게 참 재밌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은’이 앞머리가 없는 것이 더 좋은 이유는, 정갈하게 넘긴 가르마와 귀에 꽂아 넣은 머리가 그렇게 단아하고 예쁜 사람이 그녀가 유일해서 그렇다. 앞머리는 동글동글한 이마랑 얼굴형을 보는 데 방해가 되어서 왠지 얄밉다. 그래도 네 변화를 눈치챌 수 있고, 앞머리가 있는 것도 마냥 예쁘다는 걸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감사한 일이야.


“오늘 입은 옷이 예쁘다”, 와 “역시 속눈썹이 참 예쁘다”라고 말해준 너.


이 두 문장이 나와 너를 정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오늘의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내 과거의 순간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알아봐 주는 사람. 너는 분명 학생 때 화장기 없는 내 눈썹을 주의 깊게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아름다운지, 너는 그 이유를 현재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남들은 얼핏 봐서는 모르는, 어린 날부터 알고 있었던 나의 특별한 사소함으로부터 가져온다. 우리 관계의 연속성이 너무 사랑스러워. 오 년 뒤에도, 십 년 뒤에도 여전히 내 속눈썹이 예쁜지 네가 봐주었으면 해.


오래전부터 난 너의 이마에, 넌 나의 속눈썹에 나름대로 서로 마음을 주고 의미를 부여해 둔 게 아닐까. 내가 감히 네 머리 스타일에 대한 주관을 세울 수 있는 것도, 네가 나한테서 유독 맘에 드는 부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나는 참 애틋해서, 오늘 하루는 그 감정 하나로 행복할 수 있었던 거야. 그 감정을 기록하는 지금도.

작가의 이전글 Somewhere, over the seou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