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일, 152km의 기다림
전화벨이 울렸다.
동아리 MT가 끝나고 귀가한 뒤, 난 오전 11시에야 잠에 들었고, K군은 당직이라 12시쯤 휴대폰이 잠시 분출되면 전화를 걸겠다 예고했었다. 너겠구나. 커튼을 쳐 깜깜한 방 안, 난 벨소리에 반쯤 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H야, 엠티는 잘 다녀왔어?
잠에 취해 질문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목소리는 잠긴 채였다. 너는 그런 내게 전화기 너머로 덤덤하게 하소연했다. 나 너무 힘들어.. 눈물 날 것 같아. 오늘 당직이고.. 어제는 말번 불침번이었어. 피곤해. 힘들다는 말을 먼저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아, 오늘은 견디기 힘든 날이구나, 의연한 척 하지만 네 목소리에서는 짙은 피로가 느껴졌다. 안쓰럽고 가여웠다. 너를 떠올리며 자꾸만 감겨 오는 눈꺼풀에 힘을 주려고 애썼다. 비몽사몽 뭉개지는 발음으로 위로를 전했다.
K군이 웃었다. H야, 왜 옹알이를 해..! 미안 너무 피곤해서..
그거 알아? 천사의 말에 제일 가까운 언어가 옹알이래. 너 천사야? 몽롱한 정신 너머로 들려온 너의 다정한 말에 퍽 행복해졌다. 어 그럼 넌 천사를 가진 거네. 수호천사 말야. 오늘 네가 긴 밤을 홀로 버틸 때 내가 같이 있을게. 힘들 때 내가 지켜 줄게. 보이진 않아도.. 맞아. 원래 천사는 눈에 안 보이지. 나 힘낼게.
아 살짝 눈 빨개진 것 같아. 너는 이제 소리 내 웃었다.
뭐야 왜 웃는 거야… 나도 따라 피식 웃었다.
웃음이 나네. 행복해서 웃음이 나고, 눈물을 막으려고 웃음이 나.
기운 없던 너의 목소리에 잠시 생기가 맴돌았다. 피로해 지친 우리는 20분가량 전파에 올라 마음을 기댔다. 뺨에 닿아 있는 휴대폰 액정으로 따스함이 번져 왔다. 너와 조근조근 목소리로 사랑을 전하는 짧은 시간 동안, 긴장했던 몸 구석구석으로 애틋한 언어들이 나른하게 스몄다. 네가 가고,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늦은 낮잠에 들었다.
좋은 꿈을 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