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온점을 찍으면
결혼 적령기에 만나서 1년, 2년 뒤 가족이 되는 연인들이 샘이 나고 부러워지는 요즘이다. 이십 대 초반에 만난 우리가 이십 대 중반에 들어섰다. 영원히 함께하자 약속하는 사랑스러운 순간을 맞기까지의 시간은 참 두꺼운 소설 같아서, 너무나 궁금해도 펼쳐 보기엔 겁이 나는 건 아닌가. 한눈에 반해 집어 올린 책이 생각보다 무겁다는 걸 깨닫는 괴리감. 1페이지와 500페이지 그 사이 278페이지 즈음, 종잇장 사이에 끼인 갑갑함. 혹은 방대한 숫자에 압도당하는 순간. 그건 너의 모든 청춘을 가지는 대가인지. 실은 먼 훗날 돌아봤을 때 추억할 장면들이 무수할, 그런 축복인지.
다시 읽고 싶어 아끼는 책갈피를 꽂아 둔 짤막한 장면들, 맘에 드는 문장들을 옮겨 둔 필사 노트처럼만 꼭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예쁘게 요약된 시간으로 그 책을 다 이해할 수 있다면. 긴 시간을 버티기에는 너무나 나약하고 부족한 날 어떡할까. 언젠가 너와 창밖의 새벽안개, 둘이서 키울 화분 모든 것들을 빈틈없이 함께 누릴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내겐 그곳에 닿을 힘과 능력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어 슬퍼진다. 그러면 다시 너의 웃는 얼굴을 상상하고 또 잠깐 행복해지고. 내 불안한 손끝에 입 맞추는 네 입술의 온기가 알려준다. 적어도 책장에 베어 아프다고 덮어 버릴 책은 아니다. 핏자국이 묻었대도 난 여전히 우리 결말이 기대되거든.
하루하루 꾹꾹 밟아 가며 읽는 수밖에. 그렇게 열심히 읽다가 숨이 차는 때에는 문득 너에 대한 사랑을 자각하도록. 그 찰나의 공백에 널 애틋하게 여기는 내 마음의 깊이를 실감하고 놀라기도 하며. 다시 독서에 몰두할 힘을 얻기로 한다. 종잇장 위 찍힌 지문들이 우리 집에 놓을 접시도 되고, 마침내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질 꽃잎도 되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