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대화하기
‘우주의 다른 모든 사물처럼 우리도 질량이 더 높은 쪽으로 굴러가기 마련이지.’
선택이라는 주제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메시지를 주고받던 어떤 선생님이 이 말을 했다. 같이 읽었던 책에 나온 문장. 당시에는 잊어버렸지만,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주제에 딱맞는 문장을 만나니 감동이기까지 했다. “선택”을 국어사전에 입력해봤다.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 필요한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어디에 무게를 더 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무게에 따라 또 인생은 그 방향으로 구르겠지. 그간 나는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었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선택은 인생에 중요한 순간에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눈을 떠서 잠 잘 때가지 선택을 한다. 오늘 아침을 먹을까? 말까? 먹으면 뭘 먹을까? 오늘 아침에 걸으러 가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 걸으러 갔는데 언제까지 걸을까? 점심은 뭘 먹을까? 메뉴를 세 가지만 시킬 수 있는데 먹고 싶은 메뉴 중 뭘 빼지? 잠을 자고 싶은데 할 일이 있어 뭐부터 할까? 6시까지 가면되는데 좀 일찍 가서 근처에서 책을 읽을까? 아님 그냥 일찍 갈까? 내일 모임인데 글을 오늘까지 쓸까? 아님 내일 쓸까? 쓰면 노트북으로 쓸까? 핸드폰으로 쓸까? 순간의 선택이 모여 큰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 나의 일상을 구성하고, 그 일상들이 모여 입체적인 모습의 인생이 된다. 마치 수학시간에 배운 점, 선, 면의 형성 과정 같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이 순간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생각하지 않고 한 선택이라면 그게 습관이 되어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내 인생도 온갖 선택들로 만들어졌다. 그중 기억에 남는 선택이 있다. 나는 대학교 때까지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내 기분을 속이면서까지 될 수 있으면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했다. 그런 내가 이제는 갈등이 없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갈등이 생기면 웬만하면 바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인생이 보다 현명하게 잘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때는 대학교 학생회를 하던 시절, 함께 학생회를 하던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이 친구들은 학생회도 함께 했고, 기타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같이 활동을 했다. 여러 시간을 함께 보내던 친구들이었다. 아이들은 이른 저녁부터 술을 마셨다. 나도 술은 마시지 않지만 자리를 지키다 졸음이 몰려와 들어갔다. 잠을 청하려고 한참을 누워있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나가볼까 생각했지만 귀찮아져 그냥 누워있었다. 그때, 밖에서 “혜지언니는 진짜 답답해.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라며 나를 좋지 않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에 나를 향한 불평이 이어졌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있어 팀장이 필요했고 내가 팀장이 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 불만이 있었나보다. 성향에 차이가 있어 내가 하는 팀장역할이 성에 차지 않았었나보다. 방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냥 모르는 척 해? 모르는 척 하면 이 친구들과 1년 동안 잘 지낼 수는 있고? 아님 지금 나가? 나가서 뭘 해?’ 결정. 나가기로! “한별아 미안한데. 내가 아직 안자고 있어서 다 들었네? 나 잠깐 얼굴 좀 씻고 올게 이어서 이야기하자!”라고 했다. 그 친구는 약간 당황해 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응! 언니 우리이야기하자!”라고 해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친구가 나랑 완전 끝내고 1년의 프로젝트를 망칠 수 도 있다는 두려움도 이겨내야겠고, 그 장소에 모여 있던 친구들에 대한 원망, 또 그 친구들이 이 상황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라는 부끄러움도 이겨내야 했다.
무서웠지만, 나를 더 상처내지 않기 위해 용기를 냈다. 나는 나를 매우 사랑하니까. 그 당시 나는 나를 사랑하는데 더 무게를 뒀고, 갈등을 피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고, 그 경험은 내가 이후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선택을 하게 도와줬다. 적어도 나를 헤치면서까지 갈등상황을 피하는 슬픈 인생으로 흐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선택을 저울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