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는 마음을 찾아서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기. 공공장소에서는 조금 더 조용히 행동하기. 곤란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기.
우리는 사실 이런 마음들의 덕분에 살아간다. 누구에게 배워서 그럴 수도 있고, 타고날 때부터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살면서 누군가에게 우연찮게 먼저 받은 마음에 “아,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마음들 덕분에 겨울 같은 세상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온기를 느끼며 산다.
나는 그런 이미 있는 마음을 발견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선한 마음이 분명히 있지만(그렇다고 믿고) 각자의 상황 때문에, 형편 때문에, 그런 경험이 낯설어서 그 마음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 마음을 꺼내달라고 억지로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 안에 있는 선함을 각자에게 맞게 찾아보는 일. 그게 나의 역할이다.
마음이라는 건 원래 길이 있어서 한 번 길이 트이면 다음에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간다.
나는 그 첫 길을 살짝 ‘툭’ 내어주는 일을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제안을 드리는 일은 여전히 조금 떨린다.
예전에는 일정에 쫓겨 준비도 없이 부딪히듯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사장님들께 어떤 방식이 가장 부담이 덜할까, 취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오해가 없을까, 미리 고민하면서 준비하니 마음이 더 편안했다.
가게 사장님들을 떠올리면서 “이 사장님께는 어떤 부탁이 어울릴까?” 하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이분들께 이런 부탁을 드릴 만큼 관계를 잘 쌓아왔는지도 되돌아보게 됐다.
세탁소는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던 곳. 카페는 마을신문을 전하면서 꾸준히 얼굴을 비추던 곳.
돌아보니, 오랜 시간 이어온 작은 인사들이 이번 제안의 바탕이 돼준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확실히 느꼈다. 인사는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그건 관계의 시작이자, 쌓여가는 마음의 기록이다.
이번에는 이 일을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쓰이는 기술을 직접 배워보는 활동,
'별에 별걸 다 가르쳐주는 우리동네 별별학교'
여기서 선생님은 유명한 강사도 아니고, 특별한 자격증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동네에서 아이들이 자주 마주치는 그 사장님들이다.
세탁소 사장님고 커피숍 사장님이 떠올랐다.
제안하는 입장도 사실 편하진 않다. 거절당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나를 불편하게 느끼실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평소에도 우리 제안을 기쁘게 받아주시는 커피숍 사장님께는 무조건 들르기로 하고, 그 전에 세탁소 사장님을 먼저 찾아뵙기로 했다.
혹시 거절당하면… 그때 가서 커피숍에서 마음을 회복하면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진심을 전달해보고 싶어서 사장님께 드릴 편지도 썼다.
딱딱한 안내문보다 내가 직접 쓴 편지가 더 설득력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지퍼가 고장난 청바지가 있어서 그걸 들고 갔다.(내가 일부러 고장낸거 아님 주의, 타이밍 좋았다 청바지)
사장님은 익숙한 듯 청바지를 살펴보셨고 나는 자연스럽게 별별학교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쳐주실 수 있을지, 단추 달기 정도면 좋겠다는 이야기, 가능하다면 가게 안에서 알려주면 더 좋겠다는 이야기까지.
사장님은 생각보다 쉽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단추 다는 거야 뭐 일도 아니지. 양말 꼬매기는 애들이 좀 어려울 듯하고, 단추 달기는 가능해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생각하는 듯 세탁소 바늘을 꺼내 보여주셨다.
고맙다고 인사드리자 사장님은 예전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 옛날에 여기 사는 어려운 아이들 교복이랑 옷도 무료로 해준 적 있어요. 복지관이랑 얘기해서…”
그 말을 듣는데 이 마음은 오늘 갑자기 생긴 마음이 아니라 사장님 안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마음이라는 게 느껴졌다.
커피숍은 들어가자마자
“어머,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사장님 특유의 반가움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사람 대하는 걸 어려워한다는 이야기, 전화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그래서 손님 응대가 좋은 연습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장님은 금세 이해하시고 웃으셨다.
“알바네? 완전 알바 쓰는 거네요~ 너무 좋죠! 2시 이후는 손님 별로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엔
“추우니까 따뜻한 거 하나 드세요.” 하시며 커피까지 내려주셨다.
어쩜 이렇게 내내 친절하실 수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오늘 세탁소와 커피숍을 다녀오며 사람들 마음속 선함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걸 다시 느꼈다.
새로운 마음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이미 각자 안에 있던 마음들이 적당한 자리와 때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나는 그 작은 마음들이 머뭇거리지 않도록
조금 더 천천히 사람을 바라보고, 인사하고,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도 해보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 앞에서 서두르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열릴 때까지 조용히 문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이다.
오늘 사람들 마음속에 항상 있던 그 마음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