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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지 Apr 26. 2023

낯가림

나랑 대화하기


낯가림 :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싫고 두려움을 갖는 현상


  낯을 가린다. 사람들이 도통 믿어주진 않는데 하여튼 낯을 가린다. 여기서 낯가림은 사회적 기준이 아니고 철저히 내 기준이다.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겐 오히려 낯을 안 가린다. 하지만 여러 번 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낯을 가린다. 내 기준 낯을 가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봤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말과 행동을 가린다. 그래서 아무 행동도, 아무 말도 잘 하지 않는 상태이다.


  특유의 낯가림 덕분에 나는 새 학기가 매번 힘들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은 대단히 아팠다. 왜 신학기에 아픈지 깨달은 건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6개월간 평소 외향적인 성향과 다르게 '말 없고 존재감 없는 애'로 살았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 적응해야 할 때마다 자아 성찰을 했다.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한 나를 보며, 이따금 먼저 친해진 아이들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 할 때 무서워진다. 억지로 친해지려고 마음이 맞지 않는 무리와 대화를 하면 어색함에 뚝딱거렸다. 그리고 그 어색한 내 모습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능숙하게 친구와 선배들과 관계를 맺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웠다. 쟤는 얼굴이 예뻐서 그런가? 농담을 잘해서 그런가? 귀여워서 그런가? 비교하며 혼자 비참함에 빠졌다. 제일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처음 간 캠프에서 같이 간 친구들과 다 찢어져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별 활동을 할 때. 심지어 그 조에서 조장을 해야 할 때’다. 하. 생각만 해도 기 빨려.


  그런 불편한 낯가림을 가만히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부터 마치 평생 친구인 양 죽고 못 살 듯 서로를 챙기던 동기들이 1학기 방학 때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퉜다. 그 이후로 서로를 계속 보고는 못 살겠다는 듯 헐뜯었다. 그 파벌 싸움에 나도 끌어들이려 했으나 나는 6개월 동안 낯가리며 멀리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어떤 파벌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가 어디에 있든 그 친구들은 상관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6개월간 까다로운 낯가림을 통해서 안전한 친구들과 관계를 맺었다. 아주 친절하고 착하고 파벌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 싸움에 휩싸이지 않는 친구들과 선배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불편해하고 싫어하던 낯가림이 나를 자유롭게 해줬다. 그때 난 처음으로 낯가림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낯가림이 좋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급히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 그냥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을 천천히 바라본다. 볼 수 있는 만큼만.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구나!’하고. 천천히 익숙해지려 한다. 누군가와 금세 친해진다는 건 어쩐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틀에 그 사람을 끼워 맞춰 익숙한 것으로 생각하려는 내 욕심이 묻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낯가림 덕분에 나는 조금은 안전하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같다. 이제는 그 낯가림이 그다니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좋다. 이 6개월의 낯가림을 통과하면 큰일이 없는 한 그 사람과는 오래 볼 것이니까 말이다. 혹 나의 낯가림을 발견하신 분들은 기다려 주시라 이 과정을 통과하면 당신과 저는 거의 평생을 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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