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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도치 Sep 04. 2022

검은 머리 소라게가 있다고?

글쓰기의 본질은 거짓말이다

‘소라게’라는 생물체에 대해서는 아마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열대 기후라면 어디서든 서식하나 한국에서는 강원도나 제주도에도 산다고 알려져 있다. 이 생물은 아주 부드러워서 공격당하기 쉬운 복부를 보호하기 위해 고둥 껍질 안에 몸을 반쯤 숨겨서 이동한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강타한 대한민국에서 그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검은 머리 소라게’가 나타났다.


이 개체는 기존의 소라게와 몇 가지 다른 특성을 보인다. 우선 그들이 선택한 등껍질은 고둥 껍질이 아닌 콘크리트와 철근이 합성된 견고하고 커다란 물질이다. 이것은 1년 반에서 2년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거의 영구적으로 안전하다. 또 그들의 눈이 껍질 바깥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침입자를 발견하기도 쉽다. 껍질 안에서 나가지만 않는다면 목숨을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다.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이유는 또 있는데, 그것은 껍질 안에 먹을 것과 잠잘 곳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장 완벽한 껍질이어서 그들이 이것을 버리고 새 껍질을 찾아 떠날 필요 또한 없다.


검은 머리 소라게는 바이러스가 득실대는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등껍질에 반쯤 몸을 걸치는 소라게와는 달리 아주 오랜 시간 등껍질을 비우기도 한다. 등껍질 안에서 그들이 필요한 것들과 교환할 청동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등껍질 안에 모든 것이 있다면서 왜 하필 청동만 제외되었는지는 그들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키고 소라게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사교활동을 하러 밖으로 기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라게에 한정된 자유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공동체는 철저하게 자유시장 경제체제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 고도로 발달된 활동이 가능한 이유는 집게가 퇴화해 열 개의 촉수로 변화했고 두 발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촉수에 만족하지 못해 집게를 대신하는 쇠붙이를 껍질 안에 들이기도 한다. 그것은 평소에는 그들이 입에 먹이를 넣을 때 사용되나 유사시에는 무기로도 쓰인다. 


한편 껍질 안에서 자신만의 사교활동을 하는 개체도 있다.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동료(mate)를 만드는 것이다. 그 동료는 자기보다 나약하고 온몸이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늑대의 후예부터 귀가 긴 귀여운 동물, 이 세상에는 실재하지 않는 미지의 존재까지 다양하다. 그 존재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주장하는 소라게도 있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는 어느 날 그 목소리를 듣고 이제부터라도 이 공동체의 모든 소라게들을 사랑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위에서 목격된 사항들만 놓고 보면 검은 머리 소라게는 나약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점이 있는데, 이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가 바로 지구상 가장 잔인한 최상위 포식자라는 것이다. 이 존재는 맛있는 먹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닥치는 대로 잡고 본다. 그것이 몸집이 크건 공격적이건 치명적인 독을 가졌건 상관하지 않는다. 그 크고 위압적인 콘크리트 껍질 안에서는 모두 맛있는 먹이로 느껴질 뿐이다. ‘마파람에 게눈 감춘 듯한다’라는 말은 이들에게 내려진 칭호일 수도 있겠다.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을 동시에 일으키는 이 해로운 개체에 대해 지금껏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지만 이들의 미스터리한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중간쯤부터 눈치챘겠지만, 사실 검은 머리 소라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당신은 물을 것이다. 왜 있지도 않은 생명체를 만들면서까지 거짓말을 하냐? 


그것이 글쓰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글이란 것은 본디 현실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 역설적으로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글이라는 예술이 예술이 아닌 것들(과학, 기술, 역사 등)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며 살고, 그것은 타인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허용된다. 어느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을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다 거짓말쟁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창작의 기본은 거짓을 지어내고 허황된 것을 창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글쓰기는 거짓이라는 거울을 사용해 진실을 비추는 행위이다. 글을 쓰고 싶은 당신, 거짓말을 지어낼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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