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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도치 Oct 10. 2022

ep.1 문화인류학과는 뭘 하는 곳일까

무슨 과세요? 문화인류학과요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내 소개를 할 때 나는 항상 긴장한다. 왜냐면 내 전공을 소리 내서 말할 때마다 '그게 뭐예요?', '뭘 배우는 곳이에요?' 등의 꼬리 질문들이 달릴 것이고, 그럼 난 또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질문 감옥에 갇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는 '아니, 그럼 명확하게 대답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거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무엇을 배우는지 정말로 모르겠거든요


정말이다. 물론 내가 문화인류학과를 복수 전공하는 입장이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문화인류학과 전공하는 다른 분들은 아닐 수도 있고. 본인의 학과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엄청 궁금하거든요. 여기 뭐하는 곳인지 


그런데 보통 두 학기째 수업을 듣고 있으면 학과에 대해 윤곽이라도 잡혀야 하는데, 여기는 도무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수업마다 내용이 천차만별이라 어떤 수업은 이론에 충실한데 또 어떤 수업은 교수님이 일부러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들을 실습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물론 이건 교수님의 성향과 인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 어떤 수업은 사학과에 온 것처럼 한 학기 내내 역사를 배우는데 어떤 수업은 '어쩌다 어른'이나 '차이 나는 클래스'같은 인문학 교양 수업 같다. 어떤 수업은 인류학자의 저술을 읽으며 토론하는 전통적인 대학 수업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니까 누가 나에게 문화인류학과가 뭐하는 곳이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이렇게 문화인류학과의 일부만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를 덧붙이면 이해에 도움이 될까 싶어 설명해 본다. 문화인류학은 영어의 'Cultural Anthropology'를 직역한 말이다. 원래 문화학과 인류학이라는 별개의 학문으로 존속하다가 이 두 개가 결합되어서 문화인류학으로 재탄생했다고 알고 있다. 인류학의 원래 이름은 '민속학'이었다고 한다. 민속학은 말 그대로 특정 부족이나 민족의 생활습관, 문화, 관습, 언어,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칙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것의 원형은 서구의 경우에는 식민지 연구였고, 한국의 경우는 일제의 조선 연구였다. 문화인류학은 어원에서 보이듯이 서구에서 생겨난 학문이다. 그래서 양질의 자료를 보고 싶다면 결국 영어로 된 논문을 읽어야 한다. 문화인류학 이론 수업에서 다루는 자료들은 대부분 영어로 된 자료 거나 번역서인 경우가 많다. 영어 못하는 사람은 수업 준비할 때 고통스럽다고 한다. 


내가 문화인류학과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힘든 이유는 학과의 역사가 짧아서이기도 하다. 한국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그마저도 설립된 학교가 많지도 않다. 서울대 문화인류학과가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곳이고, 비수도권은 강원대를 비롯해 전국에 10곳 남짓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알아본 것이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최근의 동향을 아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좋겠다) 내가 재학 중 인 학교의 경우는 문화인류학과가 별개의 학문으로 취급된 지 이제 10년이 막 지났다. 그래서 아직 몇몇 수업은 정체성이 모호해 보이기도 한다. 수업이 별로라는 것은 아니고, 타 학문과의 경계가 모호한 학문은 처음이라 신기해서 그렇다. 


그래서 문화인류학과가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갈 길이 먼 학부생에 불과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내린 정의는 '사람이 몰리는 곳'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거창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가 서로 대립하고 사람 간의 첨예한 갈등이 있는 곳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이유로든 사람이 몰리는 장소, 집단, 현상을 연구하고 그것을 둘러싼 주체들을 파악하며 인간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문화인류학 아닐까 싶다. 문화인류학이 최근 거대 서사가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즉 한 인간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문화인류학이 뭐하는 곳인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틈틈이 문화인류학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아직 배우는 학부생인 만큼 내용 전달에 있어 부족한 부분이 있거나 전달 방식이 서툴 수 있음을 조금만 감안해 주시면 좋겠다. 이 이상한 학문에 대해 알고 싶다면 많관부. 


*궁금한 사항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학부생이 아는 선에서 최대한으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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