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왜 비워야 하는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직장을 다니셨기 때문에 늘 바쁘셨다. 엄마는 퇴근하고 오셔서 부지런히 식구들의 저녁을 챙기셨고, 우리가 하루 종일 놀고 난 흔적을 치우셨다. 지금처럼 살림하기 편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엄마는 늘 총총걸음을 하셨다. 두 살, 세 살 터울의 딸 셋의 취향이 다 다르기에 장난감, 동화책, 입고 벗는 옷이 허물을 벗은 애벌레의 껍질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어지르지 말아라. 제발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말씀은 하셨지만 왜 치워야 하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아이가 자라서 정리를 잘하고 싶은 엄마가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처럼, 정리가 필요한 아이가 우리 집에 있다. 처음에는 딸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그들의 영역을 침범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첫째는 내가 방을 치운 후 일주일 넘게 말하지 않았다. 자기 방은 혼돈 속에 질서가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제일 지저분한 방의 사진과 비슷해 보인다. 취미 부자인 둘째의 작은 방은 각종 수집품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고등학교 때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아 각종 소품을 모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서 베이스 기타, 포크 기타, 키보드를 사더니 동굴 깊숙이 모셔두고 있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엄마이자 인생 선배로서 왜 정리가 필요한지 알려주고 싶다.
언젠가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취향을 유튜브 AI가 자동으로 찾아준 적이 있다. ‘미니멀 유목민’이라는 동영상이 추천되어 보았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하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이들의 모든 짐은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간다. 가볍게 여행할 수 있는 부부의 삶이 부러웠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하는데 전혀 궁핍해 보이지 않고 더 여유 있어 보인다. 지금, 이 순간 미니멀 유목민은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노후 준비를 한다. 나이 들어 경제적으로 편안하게 살려면 어느 정도 부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집을 정리하기 위해 정리업체에서 와서 정리를 도와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돈만 있으면 정리도 다른 사람이 해 준다. 그런데 나의 물건 중에서 추억이 있는 물건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을까? 그 기억을 돈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만 할 수 있다. 나이 들기 전에 체력이 있을 때, 그나마 기억이 온전할 때 나의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 이유이다. 노후 대비를 위해 조금씩 비워야 한다.
『새로운 인생을 사는 마흔 살의 정리법』(사카오카 요코 지음)에서 저자는 말한다. 갖고 있는 물건을 줄인다는 것은 제2의 인생과 그 끝을 맞이할 죽음을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과 추억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되고, 거기에 하나하나 어떤 판단과 의사결정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레 마음이 정리된다. 그래서 기분까지 말끔하게 정리되는 것이다.
우리가 비우는 것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불필요한 것을 버림으로써 공간적인 틈새와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다. 이로써 저절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누구든지 왜 비울 것인지가 자기 안에서 명확해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자기만의 비우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매일 조금씩 비우기 시작하면 알 것이다. 처음에는 가랑비에 옷이 젖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잘 모를 수도 있다.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아와 마주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비울 것이 많다면 중간에 그만하고 싶다는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잠시 쉬어가도 좋다.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하고 잠깐 쉬어보자. 비움을 다이어트와 많이 비교한다. 비워야 할 이유도 알고, 비우면 좋다는 것도 잘 안다. 비움에 관심이 생기면 관련된 책도 찾아 읽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비움도 다이어트도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 본인이 시작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 이제 비워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