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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로사 Feb 08. 2024

설날, 부담 없는 차례상으로 더 큰 것 챙기기!

나는 이런 설날이 좋더라.

설이 다가온다. 나는 결혼하고 24번의 설을 맞이하는 주부이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설레기도 하지만 마음의 부담이 커진다. 특히 차례상 차리기와 손님맞이가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올 설부터 난 진정 주부(主婦)가 된다. 지난 추석에 이번 설부터 가까운 직계 가족만 모여서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집안 어른들이 많이 섭섭해했지만 제사를 맡은 남편이 그렇게 하자고 말씀드렸다.     


주부 (主婦)

1.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

2. 한집안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사람의 아내.     


우리 집은 일 년에 두 번 설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 팔촌까지 모이는 큰집이다. 그동안 명절만 되면 차례를 지내니까 하나보다 하면서 그냥 했다. ‘차례가 뭐지? 차례는 누구를 위해, 왜 지내는 거지? 큰집인 우리 집에서 나 홀로 차례를 준비하는 데 이게 합리적인 일인가?’ 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수동적으로 늘 하던 대로만 했다. 그래서 늘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번 설부터 달라진다. 한집안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사람의 아내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남 눈치 안 보고 간소하게 정성껏 준비하기로 했다. 탕국에 건홍합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트집 잡는 분이 안 오시니 가능하겠죠!     


퇴계 이황 선생 종가의 설 차례상에는 5가지 음식(떡국, 북어포, 전, 과일, 술.)만 올라간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17대 종손 이치억 씨는 “설 차례상은 정성을 들이되 간소하게 차린다”라고 말했다. 이는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반영한 결과다. 퇴계 선생이 제사상에 유밀과(油蜜菓·밀가루를 꿀과 섞어 기름에 지진 과자. 만들기 번거롭고 비싼 음식을 뜻함)를 올리지 말라는 유훈을 남긴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편의 조상 이 씨(李氏)는 이런 훈계를 남기지 않았다. 단지 돌아가신 어머니께 배운 대로 차례상을 차렸다.    

  

전통 제례 문화 지침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설은 간단한 음식을 차려 조상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날이다. 주자가례에는 설 차례상에 술 한 잔과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은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정말 그렇단 말이지? 코로나로 인해 나라 전체가 모임을 지양할 때가 있었다. 추석과 설날 모이는 것도 몸을 사렸다. 이때 식구끼리 간단하게 차례상을 차려 명절을 보냈다. 잔소리하는 어른들이 오시지 않아서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간소하게 차례상을 준비하면 부담이 없다. 내가 만약 이황 선생처럼 당부의 말을 남긴다면 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떡국 한 그릇 정성껏 끓여주면 좋겠다. 나머지는 설날 아침에 너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준비해서 맛있게 먹어라. 너희들도 먹지 않는 제사 음식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엄마가 사랑하는 커피 한 잔, 아빠가 좋아하는 소주 한 잔이면 충분하다.”    

 

옛날 사람이 정해 준 잘 먹지도 않는 음식으로 차례상 차리는 데 힘들어하지 말고, 

현재 가족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찐 차례상. 

누구 하나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만나면 반가운 자리.

서로의 안녕(安寧)을 바라는 자리.

한 해 목표를 말하고, 응원해 주는 설날.

난 이런 설날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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