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남미 탐험 — 에콰도르, 과야킬
산타 크루즈 섬으로 넘어가서는 2박만 머물고 약 2주 만에 갈라파고스를 빠져나왔다. 육지로 나와 가장 처음 해야 했던 일은 버스 터미널에 가서 페루 리마로 넘어가는 "크루즈 델 수르" 회사의 버스 티켓 사기. 소은 언니가 우리는 택시 탔지만 걸어갈 수 있는 정도라고 말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공항에서 걸어가기로 했다. 가진 돈이 많지 않았고 나는 앞으로 3주를 더 여행해야 했으니까 아낄 수 있는 돈은 아끼고 싶었다. 유심이 없어 지도조차 볼 수 없는 핸드폰을 방수팩에 넣고(내 나름의 복대였다) 옷 안쪽으로 멘 뒤 맨 손으로 거리에 나섰다. 현지인에게 물어물어 힘들게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터미널! 버스!! 크루즈 델 수르! 떼르미날!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그들이 내가 뭘 찾는지 알아들을 수 있게 터미널(때론 떼르미날), 버스, 크루즈델수르 세 단어를 외쳐대며 길을 물었다. 무슨 정신으로 도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간에 '이렇게 헤맬 줄 알았으면 그냥 택시 탈걸'하고 후회를 잠깐 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실제 지도상으로도 공항과 터미널은 바로 옆에 붙어있지만 초행길을 지도 없이 찾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구글맵의 오프라인 지도 저장에 대해 모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소매치기가 겁나서 핸드폰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터미널에 도착해서 어찌어찌 크루즈 델 수르 부스를 찾아갔고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를 우다다 쏟아내는 직원에게 겨우겨우 페루 리마행 티켓을 하나 받아냈다.
버스 티켓을 구했으니 다음 일정은 언니들이 극찬했던 한식당 "다와 레스토랑"에 가는 것.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식당에 도착해 김치찌개를 시켰다. 보름 만에 맛보는 매운맛에 감격하며 뚝배기에 코 박고 먹는데 사장님이 여행 온 거냐고 말을 붙이셨다. 그렇다고 답하자 몇 살이냐고 물으시기에 한국나이론 스물둘, 만으론 스무 살이라고 했더니 사장님과 근처 테이블에서 식사하시던 아저씨들도 모두 놀라셨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떻게 여기까지 혼자 왔냐면서. 그분들은 한국 기업의 에콰도르 주재원이라 과야킬에 거주하고 계신 거였는데, 딱 우리 아빠뻘쯤 되었으니 그분들은 나만한 딸이 있으셨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면 놀라실 법도 했다. 나를 걱정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분들 사이에서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열심히 밥을 밀어 넣었다. 밤 아홉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예약한 호스텔로 가려는 나를 사장님 부부가 배웅해 주러 나오셨다. 삼촌이 직접 택시를 잡아 목적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택시 기사님이 내가 예약한 호스텔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마도 유명하거나 오래 운영한 곳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바로 떠날 예정이었으니 밤 사이 몇 시간만 지낼 곳이 필요해서 적당히 저렴한 곳을 찾은 거였는데, 어딘지 모르겠다는 택시 기사를 앞에 두고 두 분이 우리가 불안해서 안 되겠으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그 숙소는 취소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그렇게 갑자기 신세를 지게 됐다.
식당의 홀을 가로질러 들어가면 사장님 가족들이 지내는 집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와 두 아들이 함께 사는 곳. 식당용 와이파이가 아닌 속도가 더 빠른 가정용 와이파이를 연결해 주시고 평소에도 가족들의 단골이라는 치킨을 사주셨다. 다섯이 앉아 치킨을 뜯다가, "매운 거 너무 먹고 싶었겠네~" 하시는 삼촌에게 다른 것보다도 라면이 정말 먹고 싶었다고 했더니 바로 주방으로 가셔서는 열라면까지 내주셨다. 생전 처음 보는 분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죄송스러운데 이렇게까지 아낌없는 챙김을 받아도 되는 걸까.
이모의 넓은 침대에서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라면까지 또 한 그릇 얻어먹은 뒤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한 번 와봤다고 조금 익숙해진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샀던 크루즈 델 수르 부스를 찾아가 이건 어디 가서 타야 하냐고 물었다.
"이건 내일 티켓이야."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오늘 티켓으로 달라고 했어."라고 했더니 티켓에 내일 날짜로 찍혀있고, 오늘은 오전 버스만 있는 날이라 오늘 탈 수 있는 버스는 더 이상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제 있던 사람은 나한테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말하며 황당해하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저 직원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싶어 일단 빠져나왔다. 전날 있던 직원은 스페인어만 할 수 있어서,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모르는 나와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던 탓이다. 내일 것으로 달라고 했으니 당연히 내일 티켓을 줬겠거니 하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불찰도 있었다. 내일 버스를 타겠다고 말했을 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했던 게 내일 건 없다는 말이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때마침 이모에게 버스는 잘 탔냐는 연락이 왔고, 이 얘길 했더니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여기로 다시 와 선영아."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돌아가게 됐다. 어처구니없이 2박이나 신세 지게 된 것이다.
늦은 점심으로 닭볶음탕에 애호박전을 거하게 얻어먹고, 이모의 아들 둘과 요거트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다녀왔다. 혼자일 땐 무섭기만 했는데 일행이 생겼다고 그 외출은 제법 산책 느낌이 났다. 저녁엔 장 보러 가는 이모가 여기 마트 구경해 보라면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이모한테 마트에서 파는 이것저것들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키커락 투어에서 먹었던 과자 허니브란을 보고 "오! 이거!!" 했더니 "챙겨가!" 라면서 냅다 카트에 담으셨다. "mantequilla"라는 이름을 가진, 직역하면 이름이 "버터"인 버터 과자도 함께. 이모는 내게 그걸 설명해 주면서 "무슨 과자 이름을 버터. 하고 짓냐"며 웃었다. 누구나 애쓰지 않아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만떼끼야"가 내게는 그렇다. 스페인어로 "버터"가 "만떼끼야"라는 걸 그때 알았고 그 뒤로 이 단어는 내 머릿속에 콱 박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처음 만난 분들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한식을 가득 얻어먹고 버스 터미널에 가서야 내가 가진 게 내일 티켓인 걸 알아채서 반강제로 과야킬에 하루를 더 머물게 된 이 상황이, 내가 기대한 우당탕탕 여행길이 맞는 것 같아 잔뜩 신이 났다. 지구 반대편 땅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도움으로 얼렁뚱땅 흘러가는 여행은 책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런 행운이 내게도 있었다. 두 번째 남미 여행에서 얼굴이나 뵐까 싶어 연락드렸을 때 이모네 가족은 에콰도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귀국했다고 하셨었다. 그 후로 카카오톡을 한 번 탈퇴하면서 연락처가 날아가 더 이상 안부를 여쭐 수 없지만, 좋은 분들이었으니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계시길 바라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린 나이고 여자애라 더더욱 눈에 밟힌다는 이유로 친조카 대하듯 마구 퍼주던 이모와 삼촌의 정성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언뜻 세상은 악이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선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따뜻함을 대가 없이 받은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갚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자주 생각한다. 이모와 삼촌에게 이끌려 선의 고리 속에 얽히게 된 나도 누군가에게 그 고리를 내밀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