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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20. 2024

마음껏 기뻐하는 법

오늘은 왠지 시큰둥한 거 있지. 자기감정도 읽지 못하는 바보처럼 말이야. 

계획대로 착착되어가고 있는데, 좋은 일만 소록소록 쌓이는데, 난 지금 엉뚱하게도 뚱하니 있어.


마음껏 기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마지막으로 티 없이 기뻐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기뻐할 일이 생겼는데도 왠지 입을 삐죽 내밀게 되는 거 있잖아. 넌 잘 모르려나? 난 종종 그렇거든. 

너와 함께 합격소식을 들었던 날, 그날은 참 기뻤던 것 같아. 합격소식도 기뻤지만 네가 함께 기뻐해줘서. 진심으로 축하해 줘서, 난 그날 참 기뻤어. 눈물날만큼.


알아,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지도 못하면서, 현재 일어난 일들을 자축하지도 못하면서, 과거의 기뻤던 일 때문에 회상이나 하고 앉아있는 꼴이라니. 정말 구제불능이야.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 같아. 그때의 따뜻한 기억이 아직은 세상이 살만한 곳이구나, 가끔 날 일깨워 주거든. 그리고 반성하게 돼. 난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기뻐한 적이 있었나 하고 말이야. 


자랑하고 싶은 일들이 천지인데, 자꾸만 시야가 흐릿해.  

어디에서 자꾸만 연무가 생기는지 알 수가 없어. 무대 위의 드라이아이스처럼 자꾸만 연무가 생겨. 행복해야 할 일들이 그저 그런 일들로 퇴색돼. 그냥 막 자랑하고 동동 발을 굴렀으면 좋겠는데, 막상 그게 안돼. 


그래서 말이야.

내일의 내 숙제는 '세명에게 내게 생긴 좋은 일을 꼭 자랑하기'야. 그것도 아주 요목조목 자랑하기. 

까짓 거 상대방이 같이 기뻐해주지 않으면 어때? 

자꾸 연습하다 보면 연무도 솜사탕이 되어 손에 잡힐 줄 누가 알겠어. 그렇게 손에 잡힌 안개솜사탕을 와구와구 먹어치워 버리고, 불안도, 걱정도, 한쪽에 잠깐 발로 치워놓고, 오롯이 기뻐하기. 그게 내 숙제야. 


오늘은 유난히 해가 길더라. 8시가 되었는데도 환한 거 있지.

오늘보다 내일 해가 더 길대. 해지기 전까지 숙제를 마칠 수 있겠지? 내일은 해가 가장 긴 하지니까. 


뭘 그런 게 숙제냐고? 자랑하고 기뻐하기. 그거 은근히 어려워. 너에겐 별것 아닐지 모르겠지만.

있잖아, 해 질 녘에 연락할게. 내 자랑하기 미션이 잘 끝났는지 네가 꼭 확인해 줄래?

다시 마음껏 기뻐하는 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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